전 세계 공용 기술명으로 닉네임 등극시킨 첫 선수

입력 2020. 11. 19   16:43
업데이트 2020. 11. 19   1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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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인섹 최인석 선수와 인섹 킥의 유래


축구에 지단의 ‘마르세유 턴’이 있고 

체조에 양학선의 ‘양1’이 있다면… 

e스포츠엔 최인석의 ‘인섹 킥’이 있다 

 
초창기 경기 불참으로 팀 몰수패
인섹=‘자리 비움’ 유행어 자리 잡기도
한동안 불성실 아이콘으로 조롱 당해 

 
2013년 올스타 경기 명장면 연출
Q-Q-와드-W-R의 연계기
최후방 적 딜러 아군 코앞으로 배달
전 세계 ‘인섹 킥’이라고 부르기 시작 

 

‘리 신’의 핵심 콤보는 전 세계적으로 자연스럽게 ‘인섹 킥’으로 불린다. ‘리 신’ 그 자체가 되기도 한 최인석의 드라마틱한 플레이는 이제 보통명사가 되어 e스포츠 전반에 널리 쓰이고 있다. 사진=유튜브 theScore esports
‘리 신’의 핵심 콤보는 전 세계적으로 자연스럽게 ‘인섹 킥’으로 불린다. ‘리 신’ 그 자체가 되기도 한 최인석의 드라마틱한 플레이는 이제 보통명사가 되어 e스포츠 전반에 널리 쓰이고 있다. 사진=유튜브 theScore esports
최인석의 오너캐릭터라고 불릴 수 있을 챔피언 ‘리 신’. 스킬 하나하나가 유용하지만 그만큼 사용하기 또한 까다로워 프로급에서야 빛이 나는 캐릭터로 통용된다.  이미지=리그오브레전드 홈페이지
최인석의 오너캐릭터라고 불릴 수 있을 챔피언 ‘리 신’. 스킬 하나하나가 유용하지만 그만큼 사용하기 또한 까다로워 프로급에서야 빛이 나는 캐릭터로 통용된다. 이미지=리그오브레전드 홈페이지

스포츠 경기에 등장하는 화려한 기술 중에는 기술을 창시했거나 혹은 그 기술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선수의 이름이 붙은 경우가 있다. 축구에서 드리블 중에 몸을 한 바퀴 돌리며 상대를 피하는 ‘마르세유 턴’은 이 기술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지네딘 지단의 고향 이름이 붙은 경우고, 체조 레전드 양학선이 구사하는 기술은 아예 기술 이름 자체가 ‘양1’처럼 선수 이름으로 붙어버린 사례다. 그리고 e스포츠에도 이런 식으로 특정한 기술에 자기 이름이 붙어버린 선수가 있다.


정글러 ‘인섹’, 멸칭(蔑稱)의 대명사가 되다

최인석. 포지션은 정글러. 소환사명(ID)은 ‘Insec’으로 쓰고 인섹이라 읽는다. 1993년생의 ‘리그 오브 레전드’ 1세대 프로게이머인 그가 자신의 이름을 변형해 만든 ‘인섹’이라는 닉네임은 ‘리그 오브 레전드’ e스포츠 초창기에는 다른 의미로 쓰였다.

정식 스폰서가 없던 시절 ‘거품게임단’이라는 팀 소속으로 리그에 참가한 최인석은 메인 리그 참가를 위한 시드권 쟁탈전에 출전하기 위해 대구에서 서울로 올라와야 했다. 그러나 경기 당일 최인석은 대구역에 오후 4시에 도착, KTX 좌석표가 이미 매진되었다는 소식을 뒤늦게 전해 듣는다. 고속버스를 탔지만 막히는 도로 상황을 뚫고 6시30분에 서울에서 열리는 경기에 참석하는 것은 불가능했고, 팀은 그대로 몰수패를 당했다.

이 사건으로 최인석의 ‘인섹’은 초기 ‘리그 오브 레전드’ e스포츠에서 ‘자리 비움’이라는 의미의 유행어로 자리 잡았다. 최인석이 출전하는 날에는 “오늘은 정글러가 없네요?” 같은 댓글들이 줄을 이었고, 인터넷에는 ‘인섹 사진’이라고 제목을 달아놓고 빈칸만 덩그러니 남겨놓는 놀이가 속출했다. 프로 선수가 시간에 늦어 몰수패를 당했다는 사실은 여러모로 준비되어 있지 않은 모습을 보여준 결과였고, 오랫동안 최인석은 몰수패의 경험을 조롱하는 ‘인섹’이라는 유행어로 고통받아야 했다.

‘인섹’이라는 이름은 그렇게 불성실의 아이콘, 경멸과 조롱을 담은 비하의 의미로 e스포츠 판 전체에 퍼져나갔다. 당사자인 최인석은 프로 선수들 사이에서도 돋보이는 실력을 뽑아내며 당대의 1티어 선수로 자리매김했지만, 그런데도 ‘인섹’이라는 이름에 따라다니는 조롱을 피할 방법은 없었다. 후원이 있는 프로팀인 CJ엔투스에 입단하면서부터는 본인은 뛰어난 활약을 펼쳤지만, 팀이 매번 패배하는 상황을 계속 맞으면서 ‘영원히 고통받는 인섹’ 같은 유행어까지 만들어질 정도로 최인석의 나날은 고통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오늘날 ‘리그 오브 레전드’ e스포츠에서 ‘인섹’이라는 이름은 초창기의 그 의미로 쓰이지 않는다. 이제 인섹이라는 이름은 한국 안에서만이 아니라 전 세계에서 통용되는 이름이 되었고, 과거와는 달리 한 선수에 대한 경외가 담긴 헌정의 의미로 쓰인다. ‘인섹 킥’이 그 이유다.


세상을 뒤집어 놓은 한 방의 콤보, ‘인섹 킥’


‘리그 오브 레전드’의 챔피언인 ‘리 신’은 주로 정글러로 사용되는 캐릭터다. 프로 리그에서도 등장하지 않는 시즌이 드물 정도로 올타임 강캐에 속한다. 빠른 기동성과 강력한 공격력은 라인전 단계에서의 갱킹에서 특히 빛나 게임 초-중반 맵 전반의 운영을 지배하며, 한타에서도 특유의 기동성을 살려 최후방에 있는 적의 주요 공격수를 빠르게 잘라낼 수 있어 기댓값이 높은 챔피언이다.

다만 ‘리 신’ 캐릭터 특유의 난도가 많은 플레이어의 발목을 잡는다. ‘리 신’의 기술들은 하나같이 쓰기 쉽지 않은 난도를 자랑한다. Q 키로 발동하는 ‘음파-공명의 일격’은 적의 이동 경로를 예측해서 날려야 맞힐 수 있고, W 키 기술인 ‘방호’는 빠르게 대상으로 이동하며 방어막을 씌워 주지만 그 타이밍이 정확하지 않으면 낭비하기 쉬운 기술이다. 궁극기(窮極技)인 R 키 기술 ‘용의 분노’는 맞히면 대상에게 큰 피해를 주며 날려버리지만, 적 최후방 딜러에게 함부로 썼다간 들어간 리 신도 살아나오지 못하는 위험도 함께 갖고 있다. 각각의 기술도 어려운 데다 이를 콤보로 섞어 써야 시너지가 나오기 때문에 ‘리 신’은 그 잠재력에도 불구하고 상위급 플레이어들이 잡을 때여야만 빛을 발하는 캐릭터이기도 하다.

최인석은 바로 이 ‘리 신’의 장인이었다. 그가 잡는 ‘리 신’은 이 캐릭터가 극한까지 능력을 발휘했을 때 무엇이 되는지를 보여주곤 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장면이 2013년 올스타 경기에서 작렬하며 전 세계적 명성을 부른 계기가 되었다.

최인석이 올스타전에서 구현한 기술은 말로 설명하는 것조차도 길 정도로 복잡하다. 먼저 적 원거리 딜러에게 Q 기술을 날려 맞힌 뒤, 한 번 더 Q를 눌러 대상을 향해 날아가기 시작한다. 최종적으로 대상에 도달하기 전의 짧은 찰나에 최인석은 적 캐릭터 후방으로 시야용 와드를 던지고, 그 와드를 향해 W 기술을 눌러 다시 한 번 재도약해 적 딜러의 후방으로 날아간다. 그렇게 순식간에 적 딜러의 뒤에 있는 ‘리 신’은 대상을 향해 R 궁극기를 날린다. 이렇게 되면 적 딜러는 궁극기를 맞고 날아가며 아군이 위치한 한복판으로 들어오게 돼 순식간에 사망한다.

이 구구절절한 기술 콤보를 최인석은 올스타전 현장에서 눈 깜짝할 사이에 완벽하게 박아넣으며 최후방의 적 딜러를 아군 코앞으로 배달하는 명장면을 뽑아내 전 세계를 환호케 했다. 이때 사용된 콤보, Q-Q-와드-W-R의 연계기를 이때부터 전 세계가 ‘인섹 킥’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기술명으로 영원히 남을, 인섹의 명장면


오래도록 조롱과 무시의 대명사였던 ‘인섹’이라는 이름은 이제 공공연히 한 캐릭터의 유연하고 완벽한 콤보가 정확하게 들어간 순간을 가리키는 기술 용어로 변모했다. 단지 한국 안에서뿐 아니라 ‘인섹 킥’이라는 이름은 전 세계에서 ‘리그 오브 레전드’ 플레이어나 시청자라면 누구를 붙잡고 물어봐도 그 의미를 알 정도로 보편화할 만큼의 인지도까지 달성했다.

최인석이 은퇴한 뒤인 지금도 사람들은 다른 선수에 의해 같은 콤보가 방송에서 터져 나오면 다 함께 ‘인섹 킥!’을 외치며 열광하는 모습을 보인다. 은퇴했지만 아마도 이 게임의 수명이 다할 때까지 ‘리 신’의 주력 콤보로 자신의 닉네임이 남게 될 것 같은 최인석의 사례는 e스포츠가 사람들로 하여금 어떤 점에서 열광을 이끌어내는지를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가 될 것이다. 마이클 조던이 은퇴한 뒤에도 훌륭한 페이드 어웨이를 보며 그를 떠올리고, 지단이 없는 축구장에서도 멋진 마르세유 턴을 보며 그를 상상하는 것처럼, 이후의 어느 게임에서도 ‘리 신’의 멋진 콤보가 작렬하는 순간을 본다면 시청자들은 ‘인섹’ 최인석을 떠올릴 것이다.

<이경혁 게임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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