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지현 한 주를 열며] ‘이견을 존중하는 경청’의 미학

입력 2020. 11. 13   16:53
업데이트 2020. 11. 13   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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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 지 현 
유 크리에이티브 커뮤니케이션즈연구소 대표
류 지 현 유 크리에이티브 커뮤니케이션즈연구소 대표


소신 있게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것과 다른 사람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다는 것은 사뭇 다른 일이다. 다른 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인다는 것은 ‘존중’이라는 매우 책임감 있는 태도가 전제된다.

얼마 전 한 고등학생과 바이올린 수리점에 갔다. 악기 전문가는 본래 수리할 부분 외에, 정확한 음정과 편리한 활 움직임에 도움이 된다고 본인이 고안한 부분을 추가로 제안했다. 연주자에게 솔깃한 제안이라 적지 않은 비용을 들여 추가 부분 보완을 맡겼다. 일주일 후 재방문했을 때, 악기 전문가는 바꾼 부분이 어떤지 물었고 학생은 솔직히 큰 차이를 느끼지 못한다며 정확히 어떤 점이 좋은 건지 질문했다. 그러자 악기 전문가는 국내외 내로라하는 연주자들이 와서 같은 조치를 했고 모두들 현격히 달라졌다며 좋다고 하는데 어떻게 차이를 못 느낄 수 있냐고 격하게 화를 냈다. 심지어 자신을 믿지 못하거나 무시하느냐며 학생을 윽박지를 만큼 흥분이 과해졌다.

당황한 학생을 위해 정당한 설명이라도 대신해 주고 싶은 마음이었지만 학생 스스로 대응할 기회를 주기 위해 조용히 지켜봤다. 잠시 후 학생이 “그런 의도가 전혀 없었는데 혹시 마음을 불편하게 했다면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다시 악기를 들고 “이제 보니 다르긴 하네요. 느낄 수 있어요”라고 ‘듣기 좋은’ 답변까지 덧붙였다. 학생이 뜻밖에 “잘못했다”고 하자 악기 전문가가 무색했는지 흥분을 가라앉히고 궁색한 변명을 늘어놓았다.

다행히 상황은 부드럽게 종료됐지만 짧은 순간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했다. 우선, ‘웃는 낯에 침 뱉을 수 없다’라는 우리 속담이 틀리지 않다. 분명 학생 잘못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먼저 자신의 탓으로 돌리고 사과하니 상대가 한풀 꺾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나그네의 옷을 벗게 한 해와 바람’ 우화가 시사하듯, 자신이 옳다고 억울함을 주장하며 맞섰다면 바람처럼 상대와의 벽을 더 쌓았을 텐데 먼저 고개를 숙이자 해처럼 상대의 마음을 녹인 것이다. 자신을 알아달라고 성내고 목소리를 높인 악기 전문가보다 어린 학생의 성숙한 커뮤니케이션 지혜가 돋보였다. 모두가 좋다고 하니 ‘너도 같은 반응을 해야 한다’는, 그래서 결국 학생에게 ‘강요된 수긍’을 얻어내고야 마는 악기 전문가의 사고와 태도가 같은 어른으로서 학생에게 많이 부끄럽고 미안했다.

사실 이렇게 ‘강요되는 다수의 진리’는 우리 주변에서 종종 당연한 듯 일어나고 있는지 모른다. 모두가 같은 목소리를 내라고 억압해 오지는 않았는지. 소수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는지. 자칫 군(軍)에서는 ‘단체’라는 조직의 특성상 ‘같은 목소리’를 강요받을 수도 있고, 절대적으로 필요한 경우도 있다. 군 생활은 조직과 일치, 다양함이 하나로 통합돼야 하는 곳, 단일성과 일관성 등이 필요한 곳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필요한 때 자신의 목소리를 당당하게 내기 어려울 수 있음을 이해한다.

그러다 보면 자칫 개성과 소신을 잃을 수 있고 자유로운 사고의 표출을 접는 것이 당연해질 수 있다. 그렇다고 반기를 들거나 반발하라는 의미는 아니다. 다만, 999명이 좋아도 1명은 같은 생각과 느낌을 갖지 않을 수 있다는 다름의 인식은 수용해야 하지 않을까? 소수의 목소리가 다수라는 억압으로 타협이 강요되지는 않는지 염두에 둘 일이다.

커뮤니케이션에서는 타이밍의 전략도 고려된다. 옳은 얘기도 적절한 시점에 전해야 필요한 목소리가 된다. 상대가 과열돼 있을 땐 한 발 물러서 한 템포 늦추는 요령은 조직에서 특히 필요한 지혜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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