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인우 한주를열며] 여름의 길, 여름의 하늘

입력 2020. 07. 31   16:24
업데이트 2020. 08. 02   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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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인우 한국천문연구원 책임연구원
한인우 한국천문연구원 책임연구원

중국의 옛 병서 무경칠서(武經七書) 중에는 육도(六韜)와 삼략(三略)이 있다. 육도와 삼략은 별개의 병서이지만 대개 하나로 묶어 육도삼략으로 불린다. 육도는 다른 병서와는 달리 구체적 전술, 전략 등 군사 부문 외에 큰 스케일에서 경세치국의 도리를 논한다. 정치·경제·사회 등 여러 측면에서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도 많은 시사점을 주고 있다.

육도 제1권 문도(文韜) 중 8편 ‘수국(守國)-나라를 지키는 법’에서는 자연의 운행 원리에 따라 나라를 다스려 지키면 천지와 더불어 빛을 함께 하리라고 했다. 현대적으로 해석하면 자연 생태계와 불화하지 말고 조화를 이뤄야 한다는 가르침이다.

수국 편은 ‘하늘이 사계절을 낳고(天生四時), 땅이 만물을 낳는다(地生萬物)’로 시작한다. 이어서 사계절의 이치를 펼치는데 여름에 관해서는 ‘여름의 길은 기르는 것이니(夏道長), 만물이 성장한다(萬物成)’ 했다. 매우 평범한 것 같지만 여름의 이치를 적확하게 꿰뚫은 말이다.

여름이 만물을 기르는 원천은 태양의 뜨거운 열기와 강렬한 빛 그리고 풍성하게 내리는 비다. 황도를 따라 움직이는 태양은 하지에 가장 북쪽으로 올라온다. 북반구에서는 이때 태양의 고도가 가장 높아져서 태양의 위력이 가장 왕성한 여름이 된다. 물론 태양이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지구가 공전하고, 지구의 자전축이 공전축에 대해 23.5도 기울어 있기에 태양이 황도를 따라 남북으로 이동하는 것처럼 보인다. 지구에 서식하는 모든 생물체가 살아가는 에너지의 근원은 태양이니, 여름에 만물이 자라고 성장한다.

태양 에너지를 아무리 많이 받아도 물이 없으면 생명은 자랄 수 없다. 동아시아의 여름은 장마가 있어 물이 풍부하다. 장마는 북쪽 오호츠크해 기단과 남쪽 북태평양 기단이 서로 맞서 정체전선이 형성되면서 많은 비가 내리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장마는 물론 대기권 내에서 생기는 현상이지만, 육도에 ‘하늘이 사계절을 낳았다’고 하였으니, 여름에 내리는 비가 혹 멀리 하늘에 관련이 있는지 생각해 보자.

여름밤 위를 올려다 보면 하늘을 가로지르는 은하수가 인상적이다. 도심에서는 밤하늘이 밝아 은하수를 볼 수 없지만 외딴 바닷가나 깊은 산중에서는 쉽게 은하수를 볼 수 있다. 은하수는 우리말로는 ‘미리(용)내’다. 옛사람들이 은하수를 하늘에 있는 강으로 상상했음을 알 수 있다.

서양에서는 은하수를 ‘젖의 길(Milky Way)’이라 부른다. 그리스 신화에 의하면 여신 헤라가 헤라클레스에게 젖을 주다 떼어낼 때 헤라의 젖이 하늘에 흩뿌려진 것이 은하가 됐다고 한다. 은하의 강물, 젖의 길 모두 만물을 기르는 생명의 원천이다. 정녕 여름의 길은 만물을 기른다.

유난히 긴 장마도 끝물이고 매미울음 소리가 한창이다. 여름 한복판을 지나 저기 가을이 오고 있다. 이 여름이 다 가기 전에 여름의 길을 따라 여름 하늘을 올려다보며 저마다의 꿈을 길러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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