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길을 걷다

입력 2020. 03. 10   15:55
업데이트 2020. 03. 10   1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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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은 진  소령 공군8전투비행단 공병대대
이 은 진 소령 공군8전투비행단 공병대대


설렘과 두려움 그리고 책임감에 쉽게 잠을 청하지 못했던 지난해 12월 초. 아직도 그날의 기억이 생생하다. 참모총장님의 직인이 찍힌 장교 인사명령서를 받고 나서야 비로소 실감이 났다. 소령 이은진, 공군 전투비행단의 최초 여성 공병대대장! 인사명령서를 보면서 만감이 교차했다. ‘최초’라는 단어는 ‘과연 내가 잘 해낼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과 ‘남성 대대장들보다 충분히 잘 해낼 수 있어!’라는 자신감을 동시에 주었다.

처음에는 자신감보다 두려움이 앞섰다. 제8전투비행단은 중북부 영공방위의 최선봉에 있기에 공병대대장의 책임이 막중했다. 특히 겨울철에는 전투기가 안전하게 이륙할 수 있도록 활주로 제설작전이 중요한데, 최상의 활주로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바로 공병대대장인 내게 주어진 임무였다. 두려움을 제쳐놓고 ‘초기 대응전력인 전투기가 출격하지 못하는 상황은 절대로 없어야 한다. 군사대비태세 완비의 중심에 내가 있다’라는 다짐을 수없이 되뇌었다.

최초 여성 공병대대장의 당당한 포부가 하늘에도 들렸나 보다. 하늘은 그 포부를 시험하려는 듯, 공군기지 중 원주기지에 가장 많은 눈을 내렸다. 덕분에 올겨울 내내 한순간도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럴수록 ‘군사대비태세 완비의 중심에 내가 있다’는 다짐을 끊임없이 떠올리며, 대대원들을 이끌고 묵묵히 제설작전을 수행했다. 그 결과 ‘최초’라는 단어가 무색할 만큼 제설작전을 성공적으로 완수했다.

제설작전의 성공적인 완수는 짧은 시간 내에 공병대대원들과 하나가 되는 계기도 됐다. 현장 임무가 많은 공병대대 업무의 특성상, 지휘관인 대대장의 인상은 대개 강하고 엄격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나는 그런 편견을 깨고 싶었다. 손자병법 1편 ‘시계’에는 장수가 갖추어야 할 덕목 5가지로 ‘지신인용엄(知信仁勇嚴)’을 제시하는데, 그중 ‘인(仁)’은 늘 어질고 따뜻한 마음으로 부하를 대하라는 뜻이다. 나는 현장에서 ‘인(仁)’의 덕목을 늘 떠올렸다. 올겨울 다수의 제설작전을 수행하면서도 추운 날씨에 밤늦게 눈과 씨름하는 대대원들의 마음을 녹여주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그러자 제설차량 SE-88로도 녹이지 못한 대대원들의 마음이 녹아내렸고, 공병대대는 어느새 한마음 한뜻이 됐다.

이제 겨우 첫발을 내디뎠다. 제설작전은 첫 임무였을 뿐, 공병대대장으로서 부여받은 앞으로의 임무는 더 방대하고 막중하다. 이제 보임 당시 느꼈던 두려움은 남아있지 않다. 오히려 한마음 한뜻이 된 대대원들과 함께 무엇이든 해낼 수 있을 것만 같다. 3군 중 가장 먼저 여군에게 전 병과를 개방하고, 내게 최초 여성 공병대대장이라는 중책을 맡겨준 공군에 감사한다. 공병 분야의 탄탄한 초석을 닦아준 수많은 선배와 지금도 밤낮없이 현장에서 고생하는 공병대대원들에게도 감사한다. 어깨가 무겁지만, ‘공군 최초 여성 공병대대장’으로서 후회 없는 한발 한발을 내디디며 전진하겠다. 훗날 내 발자국이 뒷사람의 길잡이가 되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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