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기 종교와삶] 순수와 낭만의 자리

입력 2020. 02. 18   15:40
업데이트 2020. 02. 18   1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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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기 해군교육사령부·대위·신부
이슬기 해군교육사령부·대위·신부

제가 살아가는 이곳 해군교육사령부. 아침에 들리는 교육생들의 힘찬 군가 소리와 패기 넘치는 훈련생들의 목소리가 마음의 새로움을 느끼게 해주는 살아있는 자리입니다.

생동감 넘치는 이곳에서 어김없이 하루를 시작하려고 준비하노라면, 가끔 반가운 전화들과 마주하게 됩니다. 전화를 걸어준 이들은 평균 나이 35세 전후의 우리 대한민국을 이끌어가고 있는 청년들입니다.

통화의 주된 내용은 해군에 입대했을 때 자신이 의지했던 종교를 다시 찾고 싶다는 내용입니다. 이제는 그런 내용의 전화를 많이 받아 익숙해질 때도 되었지만, 아직도 기쁨과 더불어 마음 한구석이 아파져 옵니다. 세상 속 그들의 삶의 자리가 그리 편하지는 않은 것 같아 그런 것 같습니다.

사실 군에서 보는 친구들의 얼굴은 누구보다 아름다워 보입니다. 왜냐하면, 힘든 훈련 속에서도 순수함과 동료들과 함께하는 것에 대한 낭만이 묻어나오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어린 시절 순수함으로 친구들과 뛰어놀던 그때의 기분을 다시금 걱정 없이 누릴 수 있어서 그런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런 생각들을 하면서 느끼는 군대는 저에게 마지막 남은 순수의 공간이자 낭만의 공간입니다. 그렇기에 교육사령부에서 우리 장병들과 함께하는 이 시간이 어느 시간보다 저에게는 행복한 시간이며, 함께하는 이 공간이 어린 시절로 돌아가는 체험을 하게 해주는 아름다운 삶의 자리입니다.

이 글을 함께 나누고 있을 우리 장병들에게는 ‘지금 이 사람이 무슨 헛소리를 하고 있는가?’라는 의문이 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정신없이 경쟁 속에서 진학을 준비하고 미래를 위해 달려왔던 친구들이라면 제 말에 조금은 공감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제 말에 공감한 친구들은 나라를 위해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 모여 있는 지금 이 순간이 너무나 소중하게 느껴질 것입니다. 함께 땀 흘리고, 함께 잠자며, 함께 하나의 지향점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이 시간의 소중함입니다. 그 소중함 안에는 결코 경쟁도 없으며 치열함도 없습니다. 서로에 대한 의지와 신뢰만이 있는 자리입니다.

치열한 경쟁 속에서 자신의 순수함을 잃어버리고 살지는 않았습니까? 지금 함께 있는 이 공간에서도 혹시나 다른 사람보다 자신이 잘나 보이기를 바라며 혼자 경쟁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지금이라도 늦지 않습니다. 우리가 함께 있는 이곳은 우리의 마지막 순수함의 자리이며, 먼 훗날 소주 한잔 기울이며 추억할 수 있는 낭만의 장소입니다. 오늘도 함께 일어나 침상을 정리하는 전우와 함께 하루를 마무리하며 전투화를 손질하고 있는 전우와 함께 순수와 낭만을 나누었으면 좋겠습니다.

그 순수와 낭만이 여러분의 삶에 작은 힘이 될 것이라고 믿어 의심하지 않습니다. 오늘 같은 날은 최백호의 ‘낭만에 대하여’를 한 곡 들으며 잠을 청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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