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의락 독자마당] 대나무에 관한 소고

입력 2020. 01. 16   15:33
업데이트 2020. 01. 16   1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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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의락 육군정보학교 실험분석담당·군무사무관
김의락 육군정보학교 실험분석담당·군무사무관

대나무는 참으로 쓸모가 많은 나무다. 인터넷에서 ‘대나무의 용도’를 검색하면 나열하기 힘들 정도로 많이 나오는데, 족히 천 가지는 넘는 듯하다.

역사적으로 임진왜란 때는 의병들의 죽창이 되어 나라를 지켰고, 댓잎은 서민들의 동치미에 감칠맛을 더해줬으며, 죽순은 귀한 손님의 접대 음식으로 변신했다.

또 대나무로 만든 대금의 청아한 소리는 속세의 시름을 잊게 해주었다. 오줌싸개에게는 대나무 키를 씌워 동네 한 바퀴를 돌게 했고, 아낙들은 대나무 조리로 쌀 속의 돌을 귀신같이 골라냈으며, 어르신들은 대청마루에 앉아 대나무 담뱃대에 세월을 태웠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대나무가 흔한 동남아시아에서는 그 쓰임이 더욱 다양한데, 밥그릇부터 집까지 대나무로 만든다. 이동수단인 배도 전부 대나무로 만든다.

내가 어렸을 때는 댓살로 만든 방패연을 하늘에 날렸고, 대나무를 반으로 쪼개 만든 스키로 설원을 누볐으며, 냇가에서는 대나무 통발이나 대낚싯대로 고기를 잡았다. 옛 선비들의 사군자에도 대나무가 빠지지 않으며, 군(軍)의 허리인 영관장교의 계급장도 댓잎으로 이루어져 있다.

나는 22년간의 군 생활을 접고 2년간의 구직활동 중 마음이 답답하고 심란하면 집 근처 국립대전현충원을 찾았다. 현충원에는 여러 종류의 나무와 테마로 구성된 10.04㎞의 둘레길(일명 1004길)이 있는데, 나는 특히 대나무 숲길을 좋아한다. 송곳도 꽂을 수 없이 빽빽한 대나무숲 속의 벤치에 앉아있으면 내가 대나무인지 대나무가 나인지 모를 정도다. 바람이 불면 대나무숲 전체가 요동친다. 다른 나무에 비해 가늘고 긴 대나무는 작은 바람에도 강렬하게 반응한다. 칼날 같은 댓잎은 서로 부딪치며 요란한 쇳소리를 내는데, 가만히 듣고 있으면 야구 경기장에서 몇만의 관중이 타자인 나를 향해 응원하는 소리 같기도 하다. 그렇게 나는 대나무숲에서 다시 힘을 얻어 처진 어깨에 잔뜩 힘을 넣고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대나무는 다른 나무보다 가늘지만 더 길고 곧게 자라며, 어떤 바람에도 절대 부러지지 않는다. 그 이유는 중간중간 있는 대나무의 마디 때문이다. 나는 군 생활이나 전역 후 힘들고 어려울 때는 내 인생에 마디가 하나 늘어났다고 생각했다. 지금 당장은 그 마디가 나를 지치고 힘들게 하지만 결국 내가 더 곧고 길게 자라고, 힘든 일이 닥쳤을 때 절대 부러지지 않게 한다는 것을 가슴에 새겼다.

사회에서 군에 들어온 병사들은 모든 것이 낯설어 누구나 힘든 군 생활을 한다. 두려워하지 말자! 제대 후 탄탄한 미래를 위한 마디가 생기는 것이다.

진급 발표 때 비선됐다고 고개를 떨구지 말자! 이 또한 마디가 생기는 것이다. 언젠가는 당신의 능력을 반드시 인정받을 것이다. 전역 후 취직이 안 됐다고 포기하지 말자! 더 먼 길을 가기 위한 마디가 생기는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대나무의 마디를 가슴에 품고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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