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탁근 독자마당] 보이지 않는 사단(Invisible Division)

입력 2020. 01. 06   15:48
업데이트 2020. 01. 06   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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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탁 근 
육군1군수지원여단 군수계획처·군무주무관
오 탁 근 육군1군수지원여단 군수계획처·군무주무관
1941년 6월 22일, 나치는 선전포고도 없이 소련을 침공했다. 파죽지세로 소련 곳곳을 점령하고, 침공 수일 내 10여 개의 소련군 사단을 격멸하는 등 더없이 만족스러운 성과를 내고 있었다.

그러나 전쟁이 진행되면서 나치의 대(對)소련 정보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소련군 사단이 전멸해도 다음 날 그곳에 또 소련군의 그 부대가 전투하고 있었다. 마치 처음부터 그곳에 있었던 것처럼.

이 같은 상황에 나치는 상당한 혼란에 빠졌고, 일선에서는 마치 유령과 싸우는 것 같은 공포를 느꼈다. 훗날 ‘보이지 않는 사단(Invisible Division)’이라고 불리는 소련군의 제2 편성제도(Second Formation System)의 시행이었다.

소련군의 제2 편성제도는 소련의 비밀 동원제도로 사단장은 평시 2명의 부사단장을 통제하고, 이 중 한 명은 전시 제2편성 사단장이라는 비밀 보직을 부여받게 된다. 예하 연대~중대의 주요 지휘관·참모 역시 제2편성 사단의 뼈대를 편제하고 동원된 예비군을 흡수하면서 이른바 보이지 않는 사단을 창설하게 된다.

이러한 제2편성 사단은 낮은 전투력과 부족한 전투준비, 구식 장비를 가지고 있다곤 하나 이들도 하나의 사단이었으며 나치의 소련 침공에 관한 작전과 정보에 중대한 오판을 하게 하기에는 충분했다. 이러한 제2편성 사단의 평시 비밀 보직을 통한 전쟁준비는 제도의 가장 중요한 성공요소 중 하나로 평가되고 있다.

이처럼 전시 창설 부대의 원활한 임무수행을 위해 우리 육군도 이와 유사한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바로 ‘평시복무 예비군제도’다.

평시 편성률이 낮은 부대의 전시 임무수행을 위해 예비군 간부를 평시부터 복무하게 하는 이 제도는 2014년부터 동원사단을 중심으로 비상근 복무제도를 우선 시행하고 있다. 동원훈련 포함 연 15일의 훈련을 하는 예비군 간부의 비상근 복무는 전시 중요 임무를 수행하지만, 편성률이 낮은 동원 위주 부대의 지휘관과 참모를 선발해 작전계획 확인과 동원물자 관리, 훈련 준비·통제 등을 할 수 있도록 평시부터 훈련과 부대 관리를 하고 있으며 부대원과의 유대관계를 통해 동원예비군과 현역부대원의 가교 구실을 해내고 있다.

예비군 간부의 비상근 복무제도를 시행한 결과 동원사단 등 평시 편성률이 낮은 부대의 전시 임무 수행능력이 크게 향상됐다. 실무적 측면에서도 매우 긍정적으로 평가되어 올해부터는 민사·군수부대 등으로 운용범위가 확대되는 등 예비역 간부의 비상근 복무제도 필요성이 그 어느 때보다 커지고 있다.

현재 우리는 급격한 인구구조의 변화, 주변국의 불확실성 증대 등 이전과 다른 안보위협에 직면해 있다. 이와 같은 변화에서의 생존은 평시복무 예비군제도와 같은 예비전력의 역할과 기능 변화가 필수적이다. 초기 단계인 평시복무 예비군제도와 같은 변화가 우리 군의 예비전력을 시대의 파도를 넘어 강군으로 거듭나게 하는 마중물이 되기를 기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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