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종열 견장일기] 틀림과 다름의 익숙함

입력 2020. 01. 02   16:18
업데이트 2020. 01. 02   1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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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 종 열 육군학생군사학교 1교육단 3교육대장·소령
강 종 열 육군학생군사학교 1교육단 3교육대장·소령

퇴근해 집에 들어서니 아이들 고성이 오간다. “누나가 틀렸어!” “아니야. 네가 틀렸어!” 내용을 들여다보니, 똑같은 만화 캐릭터를 보고 따라 그린 그림을 두고 서로 틀렸다고 말한다. 내가 보기에는 둘 다 엉망이다. 그래서 나는 당당히 말했다. “둘 다 틀렸네!”라고. 어른들 수준에서는 아주 단순한 일이 어린아이들에게는 심각한 문제였나 보다.

하지만 이를 유심히 보던 큰딸이 한마디 한다. “아빠 어디가 틀렸어요?” “여기저기 다.” “어?! 아닌데, 얘는 이렇게 다르게 그리고, 얘는 요렇게 다르게 그린 건데요? 그냥 살짝 다르긴 한데 틀리게 그린 건 아닌데….” 아차차, 내가 아이들 앞에서 무슨 말을 한 건지. 순간 부끄러움이 교차한다.

그렇다. 그냥 봐도 그 만화 캐릭터가 떠오르게는 그렸다. 약간 표현이 다를 뿐. 그래서 다시 교육한다. “얘들아, 이는 큰누나(언니) 말이 맞아! 둘 다 맞게 그린 것이고, 단지 각자 약간 다르게 그렸을 뿐이네”라고. 다시금 다짐했다. 틀림의 익숙함보다는 다름의 익숙함을 생활화하자고.

두 단어를 다시 살펴봤다. 사전적 의미로 ‘틀리다’는 동사로서 ‘셈이나 사실 따위가 그르게 되거나 어긋나다’라는 뜻이며, 형용사인 ‘다르다’는 ‘비교가 되는 두 대상이 서로 같지 아니하다’라고 설명돼 있다. 분명 어원이나 그 쓰임이 다른 단어인데, 막연히 사용하고 이를 당연시해 버린 습관과 익숙함이 있었던 것이다.

여기서 두 번의 놀라움을 발견한다. 첫째는 어린아이들이 벌써 틀림에 익숙해지는 것이다. 이러한 아이들이 성인이 되어 희망에 따라 직업군인도 되고 사회에서 각자 다양한 활동을 할 것이다.

둘째 놀라움은 나 자신에게 있었다. 필자는 올해 육군학생군사학교 1교육단 3교육대장으로 임무를 수행하면서 학사사관 64기 160여 명을 훈육과 교육을 통해 대한민국 육군 장교로 임관시켰다. 훈육 분야에서 지도한 사항이 ‘나와의 다름을 인정하라!’는 것, 올바른 인성을 갖춘 장교가 되기를 강조했다. 하지만 지금의 내 모습을 보니 한심하기 짝이 없다. 그래서 필자는 다시 이 글을 쓰며 ‘다름의 익숙함’을 위해 노력하려고 한다.

군대는 다양한 계층과 구성원들의 상호작용을 통해 운영되는 유기적인 집단이다. 또 간부들이나 용사들에게는 사회생활을 하기 전에 거쳐 가는 작은 학교다. 과연 무엇을 배우고 나가게 해야 할까 고민하던 중 ‘다름의 익숙함’을 떠올린다. 유년 시절부터 틀림에 익숙해진 구성원들에게 ‘다름의 익숙함’을 같이 하려고 한다. “그건 틀렸잖아!”가 아니라 “그래, 이렇게 다르게 한 것이구나”라고. 매일 아침 출근 시 아이들 그림 사건을 떠올리며 새로운 하루를 시작한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다름의 익숙함’을 떠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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