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군함이야기
<40> 올빼미급·독수리급·백구급 고속함정
우리 해군은 1960년대 후반부터 1970년대까지 미국 해군과 해안경비대에서 고속 기동이 가능한 소형 함정을 다수 도입했다. 올빼미급 연안경비정(PB·Patrol Boat)과 독수리급 고속정(FB·Fast Boat), 백구급 유도탄고속함(PGM·Patrol Ship Guided Missile Medium)이 주인공이다. 이 함정들은 작지만 빠른 속력을 자랑해 조류 이름을 함명으로 부여받았다. 특히 국산 건조 함정이 등장하기 전까지 해군의 유일한 연안 전력으로 한반도 전 해역에서 활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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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신형함정 대응 위해 인수…연안 전력으로 활약
작지만 빠른 속력 자랑…함명으로 조류 이름 부여
北 간첩선 대응 위해 ‘날쌘’ 함정 필요
북한은 1960년대 후반부터 간첩선을 대형화하고, 디젤엔진 4대를 탑재해 속력을 40노트까지 끌어올렸다. 고사총과 무반동총을 장착해 ‘펀치력’을 키웠을 뿐만 아니라 소형 선박도 탑재했다. 이를 바탕으로 원거리에서 모선(母船)이 대기하고, 자선(子船)을 활용해 침투하는 전술을 사용했다.
우리 해군은 이에 대응하기 위해 연안 전력 강화에 심혈을 기울였다. 미국 해군과 해안경비대에서 경비정을 인수하고, 유도탄고속함을 미국 조선소와 계약·건조했다. 연안경비정도 이때 전력화했다. 해군은 1967년부터 1969년까지 미국 해안경비대가 사용하던 경비정 11척을 양도받아 ‘올빼미’로 명명했다. 독수리급은 올빼미급보다 더 작은 고속정이다. 국외 도입(A)과 국내 건조(B) 두 가지 형태가 있다. 해군은 1967~1968년 독수리급 고속정 9척을 인수했다.
북한 해군은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 한국 해군을 직접 공격하고, 수많은 고속 간첩선을 남파했다. 한국 해군이 보유 중인 함정으로는 수백 척의 북한 고속정을 상대하기 벅찼다. 해군은 강력한 연안 전력이 필요했다. 이에 따라 장비 현대화 계획인 ‘옥포계획’을 수립했다. 이 계획에는 유도탄정을 외국에서 도입하는 동시에 국내에서 고속정을 건조하겠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우리 해군 최초의 유도탄고속함 탄생
해군은 미국과 협의 끝에 베니시아함(USS Benicia, PG-96)을 도입하고, 이 함정을 설계한 타코마 조선소에서 1차 사업분 3척을 건조하기로 했다. 2차 사업분 5척도 추가 건조했다. 이 함정은 다목적 초계정(PSMM·Patrol Ship Multi Mission)으로 건조됐다. 우리 해군은 이 함정에 유도탄을 장착했다. 우리 해군 최초의 유도탄고속함은 이렇게 탄생했다.
한국 해군은 이 함정의 함명으로 하얀색 비둘기라는 뜻의 ‘백구’를 부여했다. 1차 사업 3척은 1971년 11월부터 1975년 9월 사이, 2차 사업 5척은 1977년 8월부터 1979년 12월까지 인수했다. 그런데 1번함과 나머지 함정은 형태가 달랐다. 1번함은 미국 해군이 운영하던 함정에 유도탄 2기를 새로 탑재했으며, 추진체계로 가스터빈과 디젤엔진을 함께 운영했다. 2번함부터는 가스터빈만 장착했다. 무장도 차이가 있다. 2차 사업으로 들어온 5척은 함수 주포가 76㎜ 자동 속사포로 바뀌고, 함미에 스탠더드 ARM 미사일 대신 30㎜ 2연장포와 하푼(Harpoon) 미사일 4기를 장착했다.
특이한 점은 1차 사업은 1번함을 제외하면 미국의 타코마 조선소에서 건조·도입했고, 2차 사업은 타코마 조선소와 합작으로 설립한 코리아타코마가 담당했다는 것이다. 선진 함정 건조 기술을 습득하기 위해서다. 이로 인해 2차 사업의 일부 함정은 국내 조선소에서 건조됐고, 이는 국산 건조 함정 시대의 디딤돌 역할을 했다.
단독·합동작전 간첩선 격침 ‘종횡무진’
올빼미·독수리·백구급 함정은 한반도 전 해역의 연안을 누볐다. 작고 빨라 간첩선 차단·추적에 용이했다. 단독으로 간첩선을 격침하기도 했지만, 주로 여러 척의 함정이 함께 활동했다.
올빼미정과 독수리정이 대표적인 사례다. 1970년 6월 29일 자정을 조금 넘긴 시각 인천 인근의 전탐기지 레이더에 의아선박이 잡혔다. 의아선박은 오이도 남쪽으로 접근하다 육상부대의 위협사격을 받고 외해로 도주했다. 부근에 있던 올빼미 12호정이 추격에 나섰다. 올빼미 12호정이 다가오자 의아선박이 기습사격했다. 올빼미 12호정은 추가 파견된 올빼미 3호정, 독수리 10호정과 협동작전을 펼쳤다. 2시간에 가까운 추격전이 벌어졌다. 새벽 2시 무렵 간첩선에 200야드 거리로 접근한 올빼미 12호정이 포탄을 발사해 명중시켰다. 올빼미 12호정은 간첩선을 예인해 인천 기지에 인계했다. 당시 올빼미 3호정 정장은 윤두호 대위였다. 그는 이 작전의 공로로 인헌무공훈장을 받았다. 그리고 그의 아들 고(故) 윤영하 소령은 정확히 32년 뒤 같은 날 제2연평해전에서 적 경비정과 맞서 싸우다 장렬히 전사했다.
독수리 9호정은 부산 앞바다를 지켰다. 1974년 7월 2일 부산을 출항한 독수리 9호정이 영도 등대 남쪽 해역에 이르렀을 때 의아선박을 식별했다. 독수리 9호정은 정선을 명령했다. 의아선박은 이에 응하는 척하다가 일제 사격을 하며 도주했다. 적의 기습공격으로 독수리 9호정 부장이 전사하고, 정장을 포함한 3명이 부상했다. 독수리 9호정은 전의를 불태우며 간첩선을 추격해 격침했다.
백구함도 간첩선을 격침했다. 백구 58함은 1980년 12월 1일 새벽 4시 경남 남해도 인근에서 의아선박을 발견했다. 백구 58함은 의아선박을 추격하며 인근 함정에 정보를 전파했다. 전북함과 백구 61함이 속속 현장에 도착했다. 두 함정은 위협사격을 가했다. 의아선박이 응사하며 속력을 높였다. 그러나 예상 도주로를 지키고 있던 백구 58함의 사정권을 벗어날 수는 없었다. 백구 58함은 격파사격을 가해 거문도 동남쪽 해상에서 간첩선을 격침했다. 사진=해군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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