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 운봉급 상륙함
제2차 세계대전 중 英 개발, 美와 양산… 초기 상륙함 6·25전쟁서 대동맥 역할
1950년대 후반 도입 운봉함 등 8척 2000년대 중반까지 해군 상륙 전력 활약
북한함·계봉함 적 위협 악조건에도 베트남 거주 교민 철수 ‘십자성 작전’ 수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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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후 상륙함 퇴역, 미 해군서 추가 도입
우리 해군이 처음 도입한 상륙함은 ‘천안함’이다. 해군은 1949년 7월 1일 교통부로부터 천안호를 인수해 LST-701 천안함으로 명명했다. 1950년 4월 20일에는 함정 번호를 801로, 1951년 7월 17일에는 용화함으로 함명을 변경했다.
1950년 7월 1일 우리 해군은 군수물자 수송을 위해 교통부로부터 상륙함 4척(울산호·안동호·조치원호·삼랑진호)을 추가 인수했다. 이 함정들을 철옹함·안동함·천보함·용비함으로 명명했다.
전쟁 이후에는 노후한 상륙함을 퇴역시키고, 미국 해군의 함정을 추가 도입했다. 운봉함·덕봉함·비봉함·계봉함·장수함·위봉함·수영함·북한함·화산함이 주인공이다. 장수함은 상륙함 초창기 모델로 1950년대 후반 퇴역했고, 나머지 8척은 1990년대 말에서 2000년대 중반까지 운용됐다.
이들 함정은 미국에서 구분하던 클래스가 모두 달랐지만 우리 해군은 첫 번째 함정 명칭을 활용해 운봉급으로 분류했다. 운봉급은 거의 동일한 형태였으며, 일부 함정은 1990년대 해병대가 운용하는 K1 전차를 탑재하기 위해 함수 문을 개조했다.
‘백구부대’ 일원으로 베트남전쟁 참전
초창기 도입한 상륙함은 6·25전쟁에서 대활약을 펼쳤다. 용화함은 1950년 6월 26일 옹진지구에서 고군분투하던 육군17연대 병력 1050명을 인천으로 수송했다. 17연대가 위치한 옹진반도는 38도선으로 인해 육지와 분리된 섬이나 마찬가지였다. 전쟁이 발발한 날에도 17연대는 북한군에 맞서 용감히 싸웠으나 중과부적이었다. 인천으로 퇴각이 필요했다. 만약 해군의 구출작전이 없었다면 17연대는 어떤 불행을 맞이했을지 모른다. 다행히 인천으로 퇴각한 17연대는 인천상륙작전과 서울탈환작전에서 큰 역할을 했다.
상륙함은 6·25전쟁에서 우리 해군의 대동맥 역할을 했다. 교통부에서 징발한 상륙함도 힘을 보탰다. 문산호가 대표적이다. 문산호는 1950년 6월 25일 묵호경비부를 포항으로, 7월 27일에는 육군 병력을 여수에서 부산으로 철수시켰다. 9월 14일에는 장사상륙작전에 참가했다.
전쟁 이후 도입한 운봉급 상륙함들은 한반도 전 해역을 60여 년간 누볐다. 베트남전쟁에는 ‘백구부대’의 일원으로 참전했다. 상륙함들은 적의 기습 위협과 낙후된 항만시설의 악조건을 극복하고 우리 군의 후방작전을 지원했다.
가장 유명한 작전은 베트남이 전쟁에서 패한 후 현지에 거주하던 우리 교민을 철수시킨 ‘십자성 작전’이다. 이 작전에는 북한함과 계봉함이 참가했다. 두 함정은 1975년 4월 22일 사이공 뉴포트 항에 기항한 뒤 26일 2500여 명의 교민을 승선시켰다. 이날 저녁 출항한 두 함정은 적의 위협에 아랑곳하지 않고 50마일에 이르는 메콩강을 따라 바다로 나갔다.
이뿐만이 아니다. 상륙함들은 각종 훈련과 수많은 수송작전에 참여해 해양에서 우리 국익을 보장하는 역할을 수행했다.
글=윤병노 기자/사진=해군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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