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유공자 후손 장병 릴레이 인터뷰]<3> 박수찬 선생 고손자 공군19전투비행단 박병준 대위
고조부는 항일 의병…조부는 6·25전쟁 참전용사
‘나라에 보탬이 되는 삶을 살자’ 가훈도 애국 강조
5월 다국적 연합공군훈련 ‘레드플래그…’ 참여
공중급유 받으면서 알래스카까지 논스톱 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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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어느 상황에서도 출격할 수 있고 또 출격하면 반드시 임무를 완수한 뒤 복귀한다는 각오로 조종간을 잡는 박 대위의 강한 의지는 애국심을 강조하는 가풍에서 비롯됐다. 가훈도 ‘나라에 보탬이 되는 삶을 살자’다.
국가에 헌신한다는 가풍은 박 대위의 조부의 삶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그의 조부는 6·25전쟁 참전용사다. 강원지역 병참부대에서 근무하며 전투에 참가했고 조국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헌신했다. 박 대위는 조부께서 최근 몸이 많이 약해지셨다는 걱정과 함께 조부에 대한 자랑스러움도 당당히 드러냈다.
“고조부께서 의병활동을 하시며 대한독립에 이바지했다는 것에 어려서부터 자부심이 컸습니다. 또 조부께서는 6·25전쟁에서 활약하셨죠. 조국을 위해 희생한 그분들의 숭고한 정신을 본받고자 합니다.”
박 대위는 오는 5월 미국 알래스카주 아일슨 공군기지에서 진행되는 다국적 연합공군훈련 ‘2019 레드플래그 알래스카(Red Flag Alaska)’ 참여를 앞두고 있다. 기지를 이륙해 미국 알래스카까지 공중급유를 받으며 멈춤 없이 이동해야 하기에 강한 정신력이 요구된다. 또 대한민국 공군을 대표해 세계 각국의 공군 조종사들과 기량을 겨룬다는 점에서 막중한 책임감도 뒤따른다. 하지만 박 대위의 마음은 한 치의 흔들림이 없다.
“제게 조국은 자부심입니다. 독립운동을 펼친 고조부와 6·25에 참전하신 조부의 깊은 뜻을 따르고자 합니다. 군인으로서 그 가치를 잇는 길은 제게 주어진 임무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기혼인 박 대위는 훗날 자신의 뜻이 아이들에게도 전해지기를 기대한다. 고조부와 조부의 희생, 그리고 지금 자신의 노력이 결코 헛되지 않다는 점을 알려주려 한다. 독립운동 유공자들의 헌신에 대해 우리는 어떤 마음가짐을 가져야 할지 박 대위에게 물었다. 박 대위라면 그 누구보다 진실한 이야기를 해줄 것 같았다.
“독립운동을 하신 모든 분께서는 그 신분이나 지위, 재력 등에 관계없이 모든 것을 내걸고 독립을 위해 희생하셨습니다. 지금 우리가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자부심을 가질 수 있는 이유 역시 그분들의 헌신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결코 그분들의 숭고함을 잊지 않고 감사하며 자신의 역할을 다하시기 바랍니다.” 서현우 기자 lgiant61@dema.mil.kr
■ 박수찬 선생은?
경상북도 청송에서 태어난 박수찬(朴壽燦·1867~1922) 선생은 항일 의병운동을 펼치며 평생을 독립에 헌신했다.
국가보훈처가 발간한 『독립유공자공훈록』에 따르면 선생은 1906년 3월 13일 경북 영덕에서 일어난 신돌석 의진에서 참모장으로 의병활동을 펼쳤다. 특히 선생은 신돌석 의병장의 매부(妹夫)로서 그와 평생을 함께하며 일월산, 백암산, 동대산, 대둔산 등지에서 기민한 유격전을 전개해 일본군을 위협했다.
1907년 대한제국 군대 해산 이후에는 군대와 힘을 모아 경북 청송·경주·영양 등지에서 일본군을 격파했다. 또 1908년에는 전국 각지에서 모인 의병들이 ‘13도창의군’을 결성해 한성을 탈환하고자 했던 ‘서울 진공작전’에 참여했다. 그러던 중 체포돼 옥고를 치렀고 석방된 뒤에도 의병활동을 계속 이어가다가 1922년 영면에 들었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0년 건국포장을 추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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