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함이야기] 충북급 구축함, 30여년 함대 기함 활약… 동·서·남해서 대간첩작전 큰 공

입력 2019. 02. 22   15:47
업데이트 2019. 02. 28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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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군함 이야기 <37> 충북급 구축함


‘기어링급’ 동급 최강.. 5인치 양장포·40㎜ 대공포 12문 탑재

충북·전북·대전·광주·경기함 등 7척...강원함은 간첩선 모선 최초 격침


우리 해군은 1972년부터 1981년까지 미국 해군의 기어링(Gearing)급 구축함(DD: Destroyer) 7척을 도입했다. 기어링급은 플레처(Fletcher)급 구축함의 최종 개량 버전으로 동급 최강으로 손꼽혔다.


우리 해군은 도입한 기어링급 1번 함정에 ‘충북’을 함명으로 부여했다. 충북·전북·대전·광주·강원·경기·전주함 등 7척의 구축함은 함대의 기함으로 동·서·남해를 누볐으며, 대간첩작전에서 큰 전공을 거뒀다.


해상 기동 중인 DD-923 경기함.사진 = 대한민국 해군
해상 기동 중인 DD-923 경기함.사진 = 대한민국 해군

美 해군 기어링급 구축함 7척 전력화


미국은 플레처급의 무장을 강화해 섬너(Allen M. Sumner)급을 만들었다. 그러나 플레처급보다 항속거리가 짧아 대양에서 작전을 펼치는 데 제한이 있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기어링급을 건조했다. 전장을 연장해 연료 적재함을 넓히고, 밸런스를 개선한 기어링급은 15노트(시속 27.8㎞)로 항해하면 1만1000㎞를 이동할 수 있었다.


무장은 섬너급과 큰 차이가 없었다. 5인치 양장포(2연장) 3기(6문), 40㎜ 대공포 12문, 20㎜ 단장기관포 11문, 어뢰, 폭뢰 등을 탑재했다.


기어링급은 1944년 8월부터 1945년 12월까지 98척이 진수됐다. 대부분 함정이 제2차 세계대전 말기 태평양 전선에 투입됐다. 일본의 가미카제(kamikaze) 공격으로 2척이 침몰했고, 8척이 손상을 입었다. 기어링급은 1950년대 후반부터 1960년대 초까지 함대 개조 및 현대화(FRAM: Fleet Rehabilitation and Modernization) 프로그램에 따라 새로운 구조물을 설치하고, 무장·레이더·소나 등의 장비를 업그레이드했다.


미국 해군의 전술 변화로 일부 함정은 함포와 어뢰발사관을 제거하고, 대공 방어용 기관포를 추가했다. 이로 인해 우리 해군이 인수한 7척의 기어링급도 무장의 차이가 있다. 또 우리 해군이 개조한 경우도 있다. 충북함과 전북함은 5인치 양장포를 3기 모두 보유했지만 대전함은 2번 포탑 자리에 40㎜ 대공포를 장착했다.


우리 해군은 1972년부터 1981년까지 기어링급 7척을 전력화했으며, 이 함정들은 3200톤급 한국형 구축함(DDH-Ⅰ)이 취역하기 전까지 30여 년 동안 각 함대의 기함으로 활약했다.


광주함. 사진 = 대한민국 해군
광주함. 사진 = 대한민국 해군


전북함, 합동작전으로 간첩선 수장시켜


충무급(플레처급)·대구급(섬너급)과 비교해 항속거리가 대폭 늘어난 충북급(기어링급)은 언제나 한반도 전(全) 해역에 떠 있었다. 그런 만큼 많은 전과를 올렸다.


강원함은 최초로 간첩선 모선(母船)을 격침했다. 1980년 8월 13일 특별기동탐색단대 전력으로 독도 외곽을 탐색하던 강원함 레이더에 남하 중인 의아선박이 잡혔다. 강원함은 선박검색을 위해 속도를 높였고, 경북함(APD-826)과 제주함(APD-828)에 차단기동을 지시했다.


의아선박에 가까이 접근한 강원함은 검색을 위해 정선을 명령했다. 그러나 의아선박은 이에 불응했다. 강원함은 알루엣(ALT-Ⅲ) 헬기를 띄우고, 도주하는 의아선박에 위협사격을 가했다. 의아선박도 응사했다. 간첩선이 분명했다.


간첩선은 알루엣 헬기에도 총격을 가했다. 알루엣 헬기가 유도탄 2발을 발사했고, 간첩선에서 화염이 치솟았다. 강원함과 탑재 헬기의 효과적인 해·공 협동작전은 간첩선 모선을 격침하는 열매를 수확했다.


전북함은 합동작전으로 간첩선을 수장시켰다. 1975년 10월 5일 전북함은 함대사령관 지시에 따라 간첩선 침투가 예상되는 취약 해역에서 탐색기동작전을 벌였다.


전북함이 소흑산도 서북쪽 해역에서 외해로 고속 기동하는 의아선박을 포착했다. 전북함은 침로를 변경해 의아선박을 추적했다. 의아선박은 속력을 늦추지 않았다. 전북함의 5인치 포탄이 불을 뿜으며 날아가 의아선박 인근에 떨어졌다. 의아선박도 응사했다.


전북함은 적성(敵性)을 선포하고, 합동작전을 위해 항공기 출격을 요청했다. 간첩선은 지그재그 기동을 하는 등 빠져나가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자정이 가까운 시간. 아군 항공기가 간첩선 전방에 조명탄을 투하했다. 전북함은 전포를 동원해 격파사격을 했다. 간첩선은 버텨낼 재간이 없었다. 포탄에 피격된 간첩선은 바다 깊은 곳으로 가라앉았다.  사진=해군 제공


■ 전문가 해설 ■


    충북급, 해군사관생도 순항훈련 주력함으로도 운용 


우리 해군은 창설 초기부터 구축함 확보를 숙원사업으로 지정·관리했다. 그러나 당시 우리나라 경제력과 국방비로는 구축함 운용을 엄두도 내지 못할 상황이었다. 미국도 한국 해군이 구축함을 운용할 능력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양도해 주지 않았다.

구축함 도입을 위한 본격적인 시도는 해군 증강 4개년 계획(새싹계획·1959~1962) 수립과 함께 시작됐다. 1959년 1척, 1962년 1척을 미국으로부터 인수한다고 목표를 세웠지만 여러 사정으로 1963년 5월 16일 첫 번째 구축함인 충무함(DD-91)을 인수했다. 이로써 우리 해군이 창설기부터 염원해 왔던 구축함 시대로 진입했다.

우리 해군은 충무급에 이어 충북급·대구급을 순차적으로 총 12척 도입했다. 5인치 함포와 연결된 자동사격시스템을 갖춘 구축함은 해상 대침투작전은 물론 대잠·대공·대함작전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했다. 구축함 함장은 선망의 대상이었다.

충북급은 해군사관생도 순항훈련 주력함으로도 활약했다. 1970년대부터 1980년 중반까지 한국형 호위함이 등장하기 이전 세계를 누비며 군사외교 활동을 활발히 펼쳤다.


임성채

해군역사기록관리단 군사편찬과장


윤병노 기자 < trylover@dema.mil.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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