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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수진 문화산책] 사랑을 했다

기사입력 2018. 12. 27   15:25 입력 2018. 12. 27   15:33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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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수 진 예술기획자·한국외국어대 초빙교수


 
출근길에 올해 초등학생에게 가장 인기 있었던 노래로 아이콘(iKON)의 ‘사랑을 했다’가 선정됐다는 뉴스를 들었다. 아이들이 하굣길에 ‘떼창’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었다고 하니 가히 인기 절정이었던가 보다. 기사를 찾아보니 아이들에게 먼저 인기를 끌고 이후에 세대 간 전파가 성공적으로 이루어진 특이 사례로도 꼽힌다.

일부러 찾아 듣지 않았어도 여름 내내 여기저기서 들리던 노래를 흥얼흥얼 지금도 기억해 부를 수 있을 정도니 나도 수긍이 간다. 대중가요 전문가들은 인기 비결을 단순한 멜로디와 비트의 반복, 기교 없이 꽂히는 발성에서 찾는다. 비교적 느린 박자로 함께 부르기 쉬운 노래라는 뜻일 게다. 이 노래는 지난 1년 동안 국내 음원사이트 통합 집계에서 누적 스트리밍 1억 회를 넘기면서 2018년에 가장 많이 선택받은 가요가 됐다.

“사랑을 했다, 우리가 만나, 지우지 못할 추억이 됐다, 볼만한 멜로드라마, 괜찮은 결말, 그거면 됐다, 널 사랑했다.” 이것이 노래 전반에 걸쳐 여러 번 반복되는 핵심 가사인데, 그 자체로 극적인 완결성이 있다. 각 구절이 사랑의 전개를 단순하게 대변하고 있어서 공감을 불러오기 좋다. 아이들이 뭘 알아서 이런 노래를 그렇게 좋아했을까 싶다가도 뭐든 아직 몰라도 되는 게 아이들이라는 생각으로 접었다. 한 번이라도 사랑의 시작과 끝을 경험해본 사람이라면 마음에 울림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후회 없이 사랑했지만 결국 추억으로 남은 사랑에 대한 기억은 그만하면 됐다고 스스로 다독이며 돌아서던 허탈감을 상기시킨다. 이 노래의 화자는 ‘우리’와 ‘나’ 사이를 오가며 ‘사랑’과 ‘사랑 이후’를 말한다. 마치 멜로 영화의 극본·제작·주연을 모두 맡은 주인공처럼 당당하게 사랑의 종언을 고한다. 전지전능하고 다재다능하나 아쉽게도 사랑을 놓쳐버린 순정만화의 주인공처럼 “이 정도면 됐어”라고 선언한다. 내 사랑 속에서 내가 주인공인 건 당연하니까 낯부끄러울 이유도 없다. 사랑은 그렇게 우리를 단박에 특별한 주인공으로 만들어주는 강력한 경험이다.

이 노래를 들을 때마다 경쾌한 멜로디인데도 씁쓸한 비애감이 든다. 사랑하는 아도니스의 죽음 앞에서 비너스가 토해낸 저주의 예언과 같이 결국 사랑의 결말은 ‘슬픔’일 뿐인지도 모른다. 마법이 사라지고 주인공에게 비추던 스포트라이트가 거둬지면 그저 평범하기 짝이 없는 통속소설의 지나가는 행인1처럼 초라한 내가 남는다. ‘사랑을 했다’, 즉 완료형 혹은 과거형의 사랑은 가장 특별한 것과 가장 평범한 것이 교차하는 지점을 담담하게 드러낸다.

한 해를 마무리하며 지난 사계절 동안 내가 정말 사랑해서 특별하고 귀하게 여긴 것과 이미 그 마음이 식어서 밋밋하고 성가시게 느껴지는 것들을 떠올려 본다. 전자는 나를 설레게 하지만, 후자는 나를 슬프게 한다. 반복되는 사랑의 경험이 우리에게 남기는 교훈은 둘 중 어느 편이 더 귀하다고 잘라 말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이 있고, 떠나보내는 것이 있으면 맞이하는 것이 있다. 결국, 삶은 설레는 기쁨과 무기력한 슬픔이 중첩되면서 조금씩 풍성해지는 것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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