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륙작전 훈련 중 좌초한 수영함
구조함 도착 후 1개월여 만에 구조
폐어망 수거 대민지원 최초로 전개
이순신 해전 유물 탐사작전 투입도
좌초한 호위구축함 구조한 용문함·도봉함
적진에 전력을 투사하는 상륙작전은 항상 위험이 따른다. 특히 상륙함이 해안에 접안할 때 기상 악화로 함미가 해안 정방향에서 오른쪽이나 왼쪽 어느 한쪽으로 돌아가면 좌초할 수 있다. 실제 사례도 있다. 그럴 때마다 ATA(Auxiliary Fleet Tug)급 구조함은 현장에서 상륙함들을 구조했다.
화산함(LST-816)은 1964년 1월 20일 강릉 인근 해안에서 좌초했다. 한미 연합 상륙훈련 디데이(D-day) 당일 상륙 해안에 접안하려다 강한 파도를 이기지 못한 것이다. 이에 해군은 다른 상륙함정들로 구조를 시도했으나 실패했다. 그때 투입된 함정이 용문함과 도봉함이다.
1월 20일 용문함과 도봉함은 해난구조대 심해잠수사를 태우고 긴급 출동해 21일 현장에 도착했다. 도봉함과 현장에 대기하고 있던 다른 상륙함이 각각 예인 와이어를 화산함 함수에 고정했고, 용문함도 와이어를 도봉함 함수에 연결했다.
22일 3척의 함정이 동시에 끌어당기자 화산함의 함수가 돌아가기 시작했다. 이어 화산함이 밸러스트와 청수 탱크를 조절하고, 함수 앵커를 활용하면서 좌초 후 59시간 만에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화산함은 도봉함에 예인돼 24일 오전 9시쯤 진해 군항에 입항했다.
수리 중 침수된 해경함 바로 세우기 성공
수영함(LST)도 1983년 3월 13일 상륙훈련을 위해 경북 포항시 독석리 해안에 접안을 시도하다 좌초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당일 야간에 수영함을 구조하려던 구미함(ARS-26)마저 암초에 얹히는 곤경에 처하게 됐다.
해군은 용문함과 창원함(ARS-25), 해난구조대 심해잠수사를 현장에 급파하는 동시에 미 해군 구조함에도 지원을 요청했다.
구조 전력이 현장에 곧 도착했지만 덩치가 크고 무거운 함정을 곤경에서 구해내는 일은 쉽지도 않고 시간이 많이 걸린다. 구미함과 수영함 구조에는 1개월여가 걸렸다.
이렇듯 바다 위를 항해하는 함정은 언제든지 좌초할 수 있다. 1975년 10월 8일 흑산도 북송도 근해에서 경비 중이던 시흥함(LSMR-311)이 수중 암초에 걸려 함 밑바닥에 큰 손상을 입으면서 좌초했다.
시흥함은 사고 직후 비상 투묘를 했지만 기관실이 완전 침수되고 함미가 우현으로 기울어 조난 신호를 타전했다.
이에 해군은 용문함과 심해잠수사들을 투입했다. 용문함은 시흥함의 적재 장비와 물건 등을 이동시키면서 배수 작업을 진행해 함정의 균형을 회복시켰다. 그 결과 10월 9일 시흥함을 예인할 수 있었고, 이틀 뒤인 11일 진해로 복귀했다.
함정 수리 중에 사고가 발생한 예도 있었다. 1977년 11월 4일 해군정비창 건선거(Dry Dock)에 들어와 수리 중이던 해경 701함이 전복됐다.
당시 수리를 마친 해경 701함을 도크에서 바다로 내보내기 위해 건선거 안에 바닷물을 채우던 중 선체가 급속히 복원력을 상실한 것이다.
이 사고로 해경 701함의 마스트 중간부가 건선거 벽에 걸려 부서졌고, 내부로 물이 들어와 장비가 침수됐다. 해군은 용문함과 도봉함, 미 해군 구조함을 동원해 해경 701함을 바로 세우는 데 성공했다.
침몰한 무장 간첩선 인양 작전에도 투입
ATA급 구조함은 한국 해군이 격침한 북한 간첩선도 인양했다. 1975년 2월 15일 벽파함(PCE-57)이 동해 북방한계선에서 가까운 거진 동북쪽 해상에서 남하하던 무장 간첩선을 격침했다.
해군은 간첩선을 인양할 필요성이 있다고 판단, 3개월 후인 1975년 5월 30일 용문함과 덕수함(ARL-1), 심해잠수사를 파견키로 했다. 용문함과 덕수함은 5월 31일 묵호 외항에 머물며 제1해역사령부(현재 1함대) 사령관 주재로 열린 회의를 통해 인양 방법을 검토했다.
이어 6월 1일, 용문함이 격침 현장에 도착해 침몰 간첩선의 위치를 확인하고 심해잠수사를 투입했다. 심해잠수사들이 수압과 조류를 이겨내며 수중에 가라앉은 무장 간첩선에 와이어를 연결하자 용문함은 무장 간첩선을 수면까지 끌어올릴 수 있었다. 용문함은 간첩선을 속초로 예인해 6월 2일 속초 외항에서 덕수함에 인계했다.
도봉함도 거문도 근해에서 격침된 간첩선 인양 작전에 참가했다. 1978년 5월 1일 해군은 간첩선 침몰 현장에 도봉함과 덕수함, 삼척함(MSC-528), 심해잠수사를 투입했다. 구조 전력은 5월 14일 간첩선 선체를 인양했다. 이어 다음 날까지 무기류 등을 추가 수거함으로써 16일간의 간첩선 인양 작전을 마무리했다.
ATA급 구조함은 해양환경 정화 및 어민 소득 확대에도 일조했다. 바다 밑바닥에 가라앉은 폐어망들은 해양환경을 악화시켜 수산자원의 생장을 해칠 뿐만 아니라 선박 운항에도 악영향을 줄 수 있다.
해군은 1962년 10월 4일 가덕도 해상 일대에 구조함을 투입, 바다에 버려진 어망을 수거하는 대민지원을 최초로 전개했다. 이후 구조함들은 매년 동·서·남해에서 폐어망 수거 작업을 펼치고 있다.
ATA급 구조함은 이순신 제독의 해전 유물 탐사 작전에 투입되기도 했다. 1973년 7월 5일부터 1977년까지 남해 칠천량 등지에서 활동하며 수많은 유물을 인양하는 성과를 올렸다.
글=윤병노 기자/사진=해군본부 제공
전문가 해설
ATA급 구조함 2척 美 해군 도움 없이 단독으로 구조작전
우리 해군 창설 초기는 전투함도 없었던 때인지라 조난 또는 좌초한 함정을 구조하는 구조함을 보유한다는 것은 어찌 보면 사치스러운 일이었다. 그래서 6·25전쟁 발발 이전인 1948년 2월 21일 YMS-515정(경산)이 제주도 비양도 근해에서, 1949년 2월 24일 YMS-511정(가야산)이 거문도 근해에서 좌초했지만 구조할 능력이 없어 현장에서 그대로 해체하는 안타까운 일이 있었다.
6·25전쟁이 발발하자 해군은 1950년 7월 5일 우리 정부 교통부에서 운용하던 LT급(600톤) 구조함 1척을 인수해 LT-1함(인왕)으로 명명·운용했다. 인왕함은 제2차 세계대전 중 미국 육군에 의해 LT-134함으로 운용됐다가 종전 후 우리 정부에 양도됐다.
해군은 인왕함을 ATA-1함(인왕)으로 개칭했다. 6·25전쟁 당시 좌초 또는 침몰한 함정을 구조하기 위해 작전에 투입됐지만 대부분 미 해군 구조함에 의해 구조되는 실정이었다.
이후 1962년 미국으로부터 ATA급 구조함 2척을 도입함으로써 우리 해군은 구조작전 능력을 어느 정도 갖추게 됐다. 이때부터 우리 해군 구조함들이 미 해군의 도움 없이 구조작전에 단독으로 참가했다. 더불어 대함 사격훈련 때 표적을 예인하는 등 다양한 임무를 수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