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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수진 문화산책]가벼움과 무거움 사이

기사입력 2018. 11. 01   16:22 입력 2018. 11. 01   16:39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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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수진




신 수 진
한국외국어대 초빙교수·예술기획자


가을이 깊다. 땅은 무겁고 하늘은 높다. 그 사이의 투명한 공기를 바라보다 어디론가 가볍게 부유하듯 떠나고 싶지만, 막상 실행에 옮기긴 거의 불가능하단 걸 이미 알고 있다. 무성한 가지에 걸린 연처럼, 해야 할 일들이 펄럭이며 벌써 뒤통수를 잡아당긴다. 떠날 수 있는 용기는 어디에서 나올까? 아마도 돌아올 곳이 굳건하거나 다시는 돌아오고 싶지 않거나 둘 중 하나일 게다. 어느 쪽이든 확신이 필요하다. 둘 중 어디에도 속할 수 없는 게 문제다.
훌쩍 떠났다가 돌아와도 모든 것이 문제없이 제자리에 잘 정돈돼 있을 거라는 확신이 드는 삶이 갖춰야 할 조건들을 생각해 본다. 든든한 가족, 탄탄한 일자리, 뭐 이런 것들을 꼽아봐도 쉬 가닥이 잡히지 않는다. 변인(變因)이 너무 많은 생활에 익숙하니 생각이 많아지는 건 어쩔 수 없다. 그렇다면 반대의 경우엔 좀 더 쉬울지도 모르겠다. 아무도 나를 기다리거나 기억해줄 사람이 없다면 돌아올 마음이 들지 않을 수도 있겠다. 아, 그런데 이건 너무 슬프다.
세상에 이렇게 극단적인 조건을 갖추고 훌쩍 떠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아마도 거의 없을 거다. 평범한 사람들은 대개 완전히 안정되어 있거나 완전히 자유로운 상태의 사이, 그 어느 지점을 살아간다. 무겁거나 혹은 가볍거나, 성스럽거나 세속적이거나, 고귀하거나 평범하거나, 영원하거나 일시적이거나, 절대적이거나 상대적이거나, 힘 있거나 자유롭거나, 그 사이 어딘가에서 우리는 적당히 안주하고 조금은 부유한다. 그것은 현실적인 타협일 수도 혹은 이상적인 균형일 수도 있다.
70대에 접어든 프랑스의 철학자 질 리포베츠키는 그의 근작 『가벼움의 시대』에서 클라우드 컴퓨팅과 바이오테크놀로지가 이끄는 현재를 두고 만인이 가벼움을 꿈꾸는 시대라고 진단한다. 더 이상 젖과 꿀이 흐르는 세상을 기다리지도 않고 혁명과 해방을 외치지도 않는 우리가 바라는 것은 더 작고 가벼운 것들이 의미와 가치를 지니는 유토피아라는 것이다. 체제의 규범과 중압감에서 벗어나는 휴식에 대한 욕구, 쿨한 관계를 외치는 지조 없는 애정, 두려움과 정념을 떠나 영혼의 무게를 덜어내는 명상적 평온함 등이 현대인을 사로잡고 있다. ‘워라밸’과 ‘소확행’으로 대변되는 ‘가벼운 것들이 삶을 더 행복하게 할 것이라는 기대’는 우리 생활 깊숙이 스며들어 있다.
인류의 문명과 과학기술은 무거운 것들을 가볍게 만들어 왔다. 무거운 돌을 쌓아 올려 만들었던 고대 건축물에 비해 경량 소재로 지어진 오늘날의 공간은 텅 빈 중앙부를 확보해서 훨씬 더 넓은 공간으로 우리에게 자유를 안겨주었다. 하지만 문제는 여전히 남아있다. 가벼운 것만으로 온전히 채워지지 않는 마음 때문이다. 자유롭고 쿨할수록, 불안한 미래를 홀로 감당해야 하므로 다가올 시간에 대한 불안은 조금씩 커진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도 가벼움과 무거움 사이를 방황할 수밖에 없는 운명인가 보다. 아니, 그 사이를 오갈 수 있는 유연함이야말로 우리 시대의 미덕일 것이다.



송현숙 기자 < rokaw@dema.mil.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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