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충남급 호위구축함
루데로급, 수송선단 호위 위해 건조
1969년 美 해군으로부터 무상 대여
기존 호위구축함보다 더 크고 빨라
APD급과 동일한 선체…주포 5인치
우리 해군은 미 해군으로부터 3척의 DE(Destroyer Escort)급 호위구축함을 양도받아 운영했다. 그중 경기함(DE-71)과 강원함(DE-72)은 캐논(Cannon)급이었고, 충남함(DE-73)은 루데로(Rudderow)급이었다. 루데로급은 캐논급과 마찬가지로 제2차 세계대전 중 수송선단을 호위하기 위해 대량 건조됐다. 20여 척은 DE급으로, 50여 척은 개조·개장을 거쳐 고속수송함(APD: High Speed Transports)으로 전환됐다.
한국 해군은 5척의 루데로급을 도입했다. 충남함만 호위구축함이었으며, 나머지 4척은 고속수송함이었다.
충남함은 1943년 미시간 주(州) 베이시티(Bay City)의 데포(Defoe) 조선소에서 진수됐다. 1944년 홀트(USS Holt)함으로 명명돼 임무를 시작했다. 2년여 동안 활동하다 1946년 임무가 해제돼 대기상태로 전환됐다.
이후 1963년 6월 19일 한국 해군에 무상으로 대여됐다. 한국 해군은 DE급 구축함에 도(道) 이름을 붙인다는 원칙에 따라 ‘충남’을 함명으로 부여했다.
루데로급 충남함은 경기함과 강원함보다 더 크고, 더 강한 무장을 탑재했다. APD급과 거의 동일한 선체를 사용해 주포는 5인치였으며, 최대 속력도 24노트(시속 44.4㎞)에 달했다. 이를 바탕으로 1984년 1월 31일 퇴역할 때까지 대한민국의 바다를 수호하는 데 일생을 바쳤다.
1970년 10월 10일 충남함은 속초 북동쪽 해역에서 경비 임무를 수행하고 있었다. 밤 10시를 조금 넘긴 시각. 인근에서 해상 기동 중이던 PCE(Patrol Craft Escort)급 호위초계함 한산함에서 통신이 왔다. 북서쪽으로 고속 기동하는 의아선박이 있다는 것. 이에 충남함은 의아선박을 추적하며 조명탄을 발사했다.
의아선박은 충남함의 정선 명령을 무시하고 도주했다. 충남함은 지그재그로 회피기동을 하는 의아선박을 전속 추격하면서 격파사격을 가했다. 1시간여가 흐른 뒤 의아선박에서 화염이 치솟았으며, 충남함 레이더에서 소실됐다. 격침된 것이다.
어쩔 수 없이 의아선박을 놓친 경우도 있다. 1978년 10월 30일 충남함은 욕지도 남쪽 해상에서 대잠수함 훈련을 마치고 경비구역으로 향했다. 그날 저녁 7시쯤 서북쪽으로 고속 기동하는 의아선박이 충남함 레이더에 잡혔다.
충남함은 의아선박에 접근해 탐조등을 비추며 정지하라고 명령했다. 의아선박은 이에 불응하고 속도를 높였다. 충남함은 고속정 편대에 긴급 출항을 지시하고, 항공기를 요청했다. 의아선박은 도주하면서 두미도로 접근했다. 섬 가까이 접근하는 바람에 충남함은 격파사격을 할 수 없었다. 의아선박은 두미도 해안에 바짝 붙은 채 북쪽으로 달아났다. 충남함은 고속정편대, 해·공군 항공기와 함께 인근 해역을 샅샅이 수색했지만 의아선박을 발견할 수 없었다.
1964년에 충남함은 소련 잠수함을 강제 부상(浮上)시키는 전과를 올려 주변국을 놀라게 했다. 그해 10월 13일 동해에서 훈련 중이던 충남함의 음향탐지기(SONAR·소나)에 미식별 물체가 잡혔다. 잠수함이라는 것을 직감한 충남함은 추격하기 시작했다. 쫓고 쫓기는 수상함과 잠수함의 추격전은 7시간이나 계속됐다. 충남함의 끈질긴 추격에 잠수함이 백기를 들었다. 수면 위로 올라온 잠수함 마스트에는 소련 국기가 걸려 있었다. 안타까운 사연도 있다. 1967년 1월 14일 밤 10시쯤 충남함은 가덕도 근해를 항해하던 중 여객선 한일호와 충돌했다. 이 사고로 한일호 승객 133명 중 96명이 사망했다. /사진=해군본부 제공\
전문가 해설
무장·속력 뛰어나…해군 작전·훈련서 중추적 역할
우리 해군은 정부 수립 이후 PC(Patrol Craft)급 구잠함을 미국에서 구매할 때 PF(Patrol Frigate)급 호위함도 같이 구매하기를 원했다. 그러나 미국 정부의 반대로 무산됐다.
그러던 중 6·25전쟁이 발발하자 미국은 원활한 해상작전 수행을 위해 우리 해군에 PF급을 무상 양도했다. 이로 인해 전력 증강이 획기적으로 이뤄졌다.
우리 해군은 6·25전쟁을 겪으며 미 해군 전투함의 우수성을 확인했다. 이에 따라 정전협정 체결 이후 1954년 11월 17일 한미상호방위조약 발효와 한미합의의사록을 근거로 전투함 양도를 꾸준히 요청했다.
이 중에는 DD(Destroyer)급 구축함과 잠수함(Submarine)이 포함됐다. 미국은 구축함과 잠수함을 제외하고, DE급 호위구축함을 포함한 29척의 함정을 양도해 주겠다고 약속했다.
그 결과 1956년 2월 2일 경기함(DE-71)과 강원함(DE-72)이, 1963년 6월 19일 충남함(DE-73)이 한국 해군에 들어왔다.
PF급은 무상으로, DE급은 대여 형식으로 인수했다. 두 함형은 건조 시기, 톤수, 전장, 전폭, 무장, 속력, 임무 등이 비슷했다. 그러나 충남함은 고속수송함에 더 가까웠다.
경기함과 강원함은 PC·PF급과 마찬가지로 3인치 함포가 장착됐다. 최고 속력은 18~20노트였다. 충남함에는 5인치 함포가 장착됐다. 무장과 속력이 뛰어난 충남함은 해군 작전·훈련에서 중추적 역할을 수행했다.
충남함은 고속수송함과 같은 선체를 사용했기 때문에 1978년 선체 번호를 ‘821’로 변경했다.
해당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
이 기사를 스크랩 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