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빠른 속력·뛰어난 명중률…주력 전투함으로 ‘맹위’
손원일 제독, 국방장관 취임 후 전력 강화 심혈
美 해군 제2차 세계대전 때 건조한 DE급 2척 무상 양도
▶ 호위구축함 강원함.
한국 해군은 정전협정 체결 이후 ‘해군력 증강 5개년 계획(1954~1958)’을 수립하고, 해상 경비 능력 보강을 위한 전력 강화에 심혈을 기울였다. 그 결과 1955년부터 1956년까지 미국에서 31척의 함정을 인수했다. 호위구축함(DE·Destroyer Escort)도 그중 하나다.
아이젠하워 대통령 편지 DE급 도입 ‘단초’
이러한 성과는 1953년 10월 1일 조인되고, 1954년 11월 18일 발효된 한미상호방위조약과 1955년 1월 29일 미국이 제정한 함정대여법이 밑거름 역할을 했다.
보이지 않는 노력도 있었다.
손원일 제독은 1953년 6월 30일부로 제5대 국방부 장관에 임명됐다. 손원일 장관은 취임식에서 “우리 국군을 질적으로나 양적으로나 세계 최강의 명예스러운 군대로 건설하는 데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손 장관은 이 다짐을 지키기 위해 전력투구했다. 기회는 1년 뒤에 찾아왔다. 1954년 정전협정 후속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제네바회담이 추진됐다. 이승만 대통령은 이 회담이 정전을 고착화하려는 공산 측의 음모에 불과하다며 회담 자체를 반대했다.
미국은 한국의 회담 참가를 위해 다방면으로 노력했다. 제네바회담 예정일을 10여 일 앞둔 1954년 4월 16일 손원일 장관은 이승만 대통령을 단독 면담하고, 제네바에 우리 측 대표를 반드시 보내야 한다고 건의했다. 그러면서 회담 참가 조건으로 미국 측에 군사원조를 요구하면 된다고 이승만 대통령을 설득했다.
그로부터 나흘 후 이승만 대통령은 손원일 장관을 불러 아이젠하워 미국 대통령의 편지를 보여줬다.
편지에는 호위구축함 등 29척의 함정을 해군에 인도한다는 내용을 포함해 육·해·공군의 대규모 군사원조 약속이 적혀 있었다. 이는 한국 해군이 호위구축함을 도입하는 단초가 됐다.
대잠작전·수송선단·상륙부대 등 호위 임무
한국 해군은 6·25전쟁 이전부터 호위구축함을 보유하고 싶어 했다. 1949년 1월 13일 작성된 미국의 ‘한국의 군사력 증강 프로그램(Korean Military Expansion Program)’ 문서에서 한국 정부는 1948년 11월 5일과 12월 2일 두 차례 미국에 함정 원조를 요청했다.
이 문서의 긴급소요함정목록(List of Vessels which are needed Promptly)을 보면 한국 해군은 11월에는 3척, 12월에는 8척의 호위구축함을 요구했다. 당시 해군은 전투함 확보를 위해 PC(Patrol Craft)급 구잠함을 비롯해 호위구축함도 지원을 요청했지만 미국 정부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일반적으로 구축함은 대함·대잠수함 공격을 주 임무로 하는 중·대형 함정이다. 어뢰를 이용해 적의 대함(大艦)을 물리친다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1893년 영국에서 처음 건조됐다. 어뢰정 구축함(Torpedo-boat Destroyer)으로 불리다 나중에 구축함(Destroyer)으로 분류됐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선단을 호위하기 위해 기존 구축함보다 작은 호위구축함을 만들었다. 미 해군이 운용한 호위구축함도 대부분 1200톤에서 1600톤 정도로 같은 시기 구축함보다 작았다. 지금의 초계함·호위함과 비슷한 위치라 할 수 있다. 주된 임무는 대잠작전과 수송선단·상륙부대 등을 호위하는 것이었다. 이 때문에 무장은 대부분 어뢰와 폭뢰에 집중됐다.
▶ 미 해군으로부터 무상 양도받은 호위구축함 경기함.
경기함·강원함 1977년까지 활동 후 퇴역
한국 해군은 각고의 노력 끝에 1956년 2척의 호위구축함을 무상으로 양도받았다. 이 함정들은 미 해군이 제2차 세계대전 때 건조·운용한 캐논(Cannon)급 호위구축함이다. 한국 해군은 두 척의 함정에 우리나라 도(都) 이름인 경기(DE-71)와 강원(DE-72)을 함명으로 부여했다.
경기함과 강원함은 1943년 미국 플로리다주 조선소에서 진수됐다. 1944년부터 뮤어(USS Muir)함과 서튼(USS Sutton)함으로 명명돼 3년여 동안 임무를 수행했다. 1947년과 1948년에 임무가 해제돼 대기 상태로 전환됐다.
경기함과 강원함의 최대 속력은 20노트(시속 37㎞)였다. 특히 사격통제레이더가 함포에 연동돼 뛰어난 명중률을 자랑했다. 경기함과 강원함의 도입은 한국 해군의 주력 전투함이 PF(Patrol Frigate)급 호위함에서 DE급 호위구축함으로 격상되는 계기가 됐다.
경기함과 강원함은 1960년 중반 DD급 구축함이 도입되기 전까지 한국 해군의 주력 전투함으로서 바다를 누볐다. 두 함정은 1977년 함정 노후화로 퇴역했다.
글 = 윤병노 기자
사진 = 해군본부 제공
■ 기사 원문
국방일보 ‘대한민국 군함이야기’ 윤병노 기자
2018년 10월 18일자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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