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CE급 호위초계함(下)

입력 2018. 09. 26   12:48
업데이트 2018. 11. 22   1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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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PC급보다 강한 ‘펀치력’…바다 위 ‘저승사자’


한산함·명량함·벽파함·율포함 등

당포함 1967년 어선보호 중 북한 집중포화로 침몰

 

해상 대침투작전에서 큰 공 적을 세운 한산함이 기동하는 모습.
해상 대침투작전에서 큰 공 적을 세운 한산함이 기동하는 모습.

 해상 대침투작전에서 큰 공 적을 세운 한산함이 기동하는 모습.


PC(Patrol Craft)급 초계함과 비교해 ‘펀치력’을 강화한 PCE(Patrol Craft Escort)급 호위초계함은 적에게 저승사자 같은 존재였다. 해상 대침투작전에서 거둔 전과가 이를 증명한다. 그중에서도 한산함의 공적이 가장 화려하다.


한산함, 북한경비정 격퇴 등 화려한 공적


한산함은 1958년 9월 8일 울릉도 서쪽 13마일 해상에서 남하하는 미식별 선박을 발견하고 추격했다. 그러자 미식별 선박이 전속력으로 접근해 수류탄을 던졌다. 미식별 선박은 북한의 무장 간첩선이었다. 한산함은 즉각 응사해 무장 간첩선(길성호)을 격파했다. 또 간첩 2명을 사살하고, 4명을 생포했다.

1959년 7월 19일 인천을 출항한 한산함은 옹도 남서쪽 7마일 해상에서 남하하는 미식별 선박을 포착했다. 한산함은 정선을 명령했다. 그러나 미식별 선박은 사격을 하며 도주했다. 한산함이 응사하자 무장 간첩선은 도주를 포기하고 정선(停船)했다. 한산함은 무장 간첩선(심창호)을 나포하고, 간첩 4명을 생포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1961년 4월 7일 동해 거진 동북쪽 해상에서 임무를 수행하던 한산함은 북방한계선(NLL)을 넘어 남쪽으로 내려오는 북한 경비정을 발견했다. 한산함은 묘향산함과 협공작전을 벌여 북한 경비정을 격퇴했다.

1970년 10월 10일 묵호에서 유류를 수급받고 경비 구역으로 향하던 한산함은 속초 동북쪽 7마일 해상에서 미식별 선박을 발견했다. 한산함은 인근 해상에서 경비 중이던 충남함(DE-73)과 함께 추격을 시작했다. 어느 정도 거리가 좁혀지자 한산함은 미식별 선박의 식별을 위해 조명탄을 발사했다. 그 순간 미식별 선박에서 총탄이 날아왔다. 한산함과 충남함은 적성선포를 하고 격파사격에 돌입했다. 그 결과 무장 간첩선은 대파돼 침몰했다.


1959년 7월 19일 PCE-53 한산함이 옹도 근해에서 나포한 무장 간첩선.
1959년 7월 19일 PCE-53 한산함이 옹도 근해에서 나포한 무장 간첩선.

▶ 1959년 7월 19일 PCE-53 한산함이 옹도 근해에서 나포한 무장 간첩선.


경비 임무 투입…해상 대침투작전서 활약

명량함의 활약도 빼놓을 수 없다. 서해 경비 임무에 투입된 명량함은 1967년 4월 17일 격렬비열도 서남쪽 12마일 해상에서 미식별 선박을 발견했다. 미식별 선박은 명량함이 추격해오자 속도를 높였다. 명량함은 대동함(PF-63)에 상황을 통보해 도주로를 차단하도록 했다. 이와 동시에 공군 전투기의 출격을 요청했다. 


무장 간첩선(복덕호)은 공군 전투기가 접근하자 사격을 하며 저항했다. 적이 쏜 기관총 1발이 전투기 속도 제동장치에 명중했다. 전투기도 응사했다. 명량함과 대동함은 전투기의 폭격으로 화염에 휩싸인 무장 간첩선에 최후의 일격을 가해 격침시켰다. 이 작전에서 아군은 간첩 10명을 사살하고, 4명을 생포했다.

벽파함도 공적을 세웠다. 1975년 2월 15일 육군 전탐기지는 거진 동북쪽 해상에서 남하하는 의아 선박을 포착한 뒤 인근 해상의 벽파함에 통보했다. 벽파함은 의아 선박을 차단하기 위해 전속으로 기동했다. 발광·기적 신호로 정선을 명령했지만 의아 선박은 이를 무시했다. 벽파함이 위협사격을 하자 의아 선박도 응사하며 도주했다. 벽파함은 격파사격으로 무장 간첩선을 격침했다. 간첩 7명을 사살하고, 1명을 생포하는 전과도 거뒀다.

율포함도 무장 간첩선 격침에 공적이 있다. 1978년 5월 19일 해군 전탐기지가 거진 남동쪽 28마일 해상에서 북상하는 선박을 발견하고, 제1해역사령부에 보고했다. 사령부는 고속정(제비) 편대의 긴급 출항을 지시하고, 북방한계선 근해에 있던 율포함도 현장으로 향하도록 명령했다. 


율포함은 거진 동쪽 12마일 해상에서 북상하는 의아 선박을 포착한 뒤 추격했다. 의아 선박에는 ‘전격전, ○○○ 동지’라는 글이 걸려 있었다. 무장 간첩선은 사격을 하며 도주했지만 율포함과 고속정 편대의 격파사격에 침몰했다. 이 작전에서 율포함은 간첩 8명을 생포했다.

PCE급 호위초계함의 1번함인 노량함.
PCE급 호위초계함의 1번함인 노량함.

▶ PCE급 호위초계함의 1번함인 노량함.


당포함 승조원들 어민 생명 구하고 전사

안타까운 사연의 주인공도 있다. 당포함은 1967년 1월 19일 동해안에서 북한 해안포에 맞아 침몰했다. 승조원 79명 가운데 장교 2명과 병사 37명이 전사했다. 14명은 중경상을 입었다.

당시 당포함은 동해 어로 저지선 인근에서 보호작전을 펼치고 있었다. 어선들은 그날따라 고기 떼를 쫓아 어로 저지선을 넘나들었다. 이에 당포함은 수차례 경고방송을 했다. 이날 오후 1시30분. 갑자기 나타난 북한 경비정이 우리 어선을 나포하려고 했다. 당포함은 어선들의 남하를 독려했다.

그러던 중 북한이 해안포를 발사했다. 당포함은 어선을 보호하기 위해 스스로 방벽(防壁)이 됐다. 지그재그 기동을 하며 적 해안포대에 응사했지만 집중 포화를 피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함정 곳곳이 피격된 당포함은 아수라장이 됐다. 함교는 피로 물들었고, 갑판에는 전사자와 부상자들이 즐비했다. 후부 타기실과 기관실이 피격돼 항해 불능 상태가 됐다. 주포 기능도 마비됐다.

그러나 승조원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장교들은 “위치를 사수하라! 쏴라! 뭐건 다 쏴라”고 외쳤다. 전탐병은 극비 서류인 전탐일지를 몸에 묶고 바다로 뛰어들었다. 암호관은 해군 공용 암호 문건을 마지막 순간까지 품고 있다가 함정과 수장시켰다. 


당포함은 우측으로 기울며 침몰했다. 승조원들은 지원작전에 투입된 한산함으로 옮겨 탔다. 당포함 함장은 부상자와 생존자 전원이 이함(離艦)한 것을 확인하고 마지막으로 함정을 떠났다.

해군은 어민의 생명을 구하고, 장렬히 전사한 승조원들의 넋을 기리기 위해 1970년 1월 19일 강원도 고성군 거진읍에 당포함 전몰장병 충혼탑을 건립했다. 이후 충혼탑 앞에서 매년 추모식을 거행하고 있다. 


글 = 윤병노 기자

사진 = 해군본부 제공


■ 기사 원문 

    국방일보 ‘대한민국 군함이야기’, 윤병노 기자

    2018년 9월 27일자 12면

☞ PDF 보기 : PC급보다 강한 ‘펀치력’…바다 위 ‘저승사자’

윤병노 기자 < trylover@dema.mil.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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