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C버전보기

국방일보

2021.04.17(토)

속보 보러가기
오피니언  < 문화산책

[신수진 문화산책] 눈부시게 아름다운 우연

기사입력 2018. 09. 06   15:27 입력 수정

페이스북 바로가기 트위터 바로가기 카카오톡 바로가기




인간의 시간에 대한 감각은 정확하지 않다. 시계처럼 일정하게 시간을 맞추지도 못하고, 아주 짧거나 긴 시간을 감지하는 능력도 떨어진다. 시간이 지나도 늘 같은 모습인 것들은 대부분 그대로라기보다는 그저 그대로인 것처럼 보일 뿐이다. 매일의 일상이 반복되는 것 같아도 모든 것은 변하고 있고 우리가 살아가는 매 순간은 다시 반복될 수 없다. 하지만 그 시간을 귀하게 여기지 못하는 것이 평범한 우리의 모습이다.

사진은 시간을 사각형 틀에 담아서 박제로 만든다. 그리고 하찮은 우연을 아름다운 필연으로 바꾸어 놓는다. 절대 영원할 수 없는 것을 잡아채서 영원한 것으로 붙들어 놓는 것이다. 사진에 찍히는 순간은 더는 특별하지 않다. 온 세상 사람들의 손에 성능 좋은 카메라가 탑재된 전화기가 들려 있고 그들이 찍어내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순간으로 인해 사진은 흔하고 흔한 것이 됐다. 어린 시절 안방 장롱 한구석에 모셔져 있던 카메라는 잊힌 지 오래다. 필름 한 통을 아껴가며 찍고 현상소에 맡겨 인화하고 나면 고르고 골라서 앨범에 끼워 소중하게 보관하던 이야기는 옛날 사람들의 기억 속에만 남았다. 사람들은 더 이상 사진을 인화하지도, 앨범에 넣어 들춰보지도 않는다. 그런데도 사진은 지금도 변치 않는 시간을 끌어안고 하드디스크 어딘가에서 잠자고 있다.

어떤 사람이나 물건 또는 자연은 시간에 대한 감각을 일깨운다. 잠자는 사진을 깨우면 시간에 대한 감각이 같이 깨어난다. 시간 감각은 변화를 감지하는 것과 관련이 있는데, 변화에 대한 체감은 속도와 거리의 문제다. 대상과의 거리가 가까울수록 변화는 더 빠르게 감지된다. 쉽게 변하지 않는 것들은 아주 천천히 변하고 있거나 너무 멀리 있어서 변화를 알아채기 어려운 것이다. 박물관에 소장된 고대 유물, 하루가 다르게 쑥쑥 자라나는 아이, 비 온 뒤 반짝 갠 하늘처럼 시간이 참 길거나 짧다고 느끼게 되는 장면들을 묵은 사진에서 재발견하게 되면 시간의 힘은 분명하게 감지된다. 사진은 무심하게 흐르는 시간 속에 반짝이는 순간들을 심어주는 것이다.

이 세상에 영원한 건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늘 그 자리에 있을 것만 같은 듬직함이나 변치 말았으면 하는 기대를 가지고 무언가를 바라볼 때가 있다. 우연히 살게 된 이 세상에서 필연의 이야기를 만들면서 살아가는 인간이 지니는 기대다. 영국의 신경과학자 올리버 색스는 그의 마지막 저서 『의식의 강(The River of Consciousness』(2015)에서 인간이 취약하고 불완전한 기억을 가지고 있어 오류를 범하기도 하지만, 같은 이유로 유연하고 창의적이라고 강조했다. 시간 앞에서 우리는 어쩔 수 없이 나약한 존재다. 하지만 그의 말처럼 어쩌면 인간은 모두 눈부시게 아름다운 우연의 결과물이고, 그리하여 그 삶은 더욱 소중하고 경이로운 현재진행형일 수 있다. 한순간의 짧은 빛을 입고 사진 속에서 영원히 빛나는 모든 것은 말한다. 생명은 우연이고 세계가 곧 필연이다.



< 저작권자 ⓒ 국방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기사에 대한 의견 0

의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