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를 도울 사람은 우리 자신밖에 없다

입력 2017. 12. 19   17:25
업데이트 2017. 12. 19   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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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 호텔 르완다(Hotel Rwanda), 2004 감독: 테리 조지/출연: 돈 치들, 소피 오코네도, 호아킨 피닉스


 


1994년에 발생한 르완다 내전은 르완다의 토착 부족인 후투족과 소수민족인 투치족 간의 종족 전쟁이다. 14세기 이후 르완다는 소수 투치족(14%)이 왕국을 세워 토착 부족인 후투족(85%)을 지배했다. 그러다가 1916년부터 벨기에의 식민통치가 시작된 뒤 투치족에 대한 벨기에의 종족 차별 정책으로 두 종족 간 갈등은 더 심화돼 내전까지 치닫게 됐다.


100일간 1300여 명 지켜낸 감동 실화

영화 ‘호텔 르완다’는 르완다 내전 당시 100일 동안 1300여 명의 목숨을 지켜낸 한 호텔 지배인의 실화다. 영화는 자신의 국민을 구한 실제 호텔 지배인 폴 루세사바기나의 휴먼 드라마이지만, 두 종족 간의 해묵은 대립과 폭력성을 사실적으로 보여준다. 영화는 감동적인 실화이면서 참혹한 인종학살을 보여주는 전쟁 보고서다. 전 세계도 외면한 학살 속에서 가족과 1300여 명의 이웃을 지키기 위해 홀로 힘겨운 싸움을 하는 평범한 시민의 고군분투기다.



르완다 내전… 후투족·투치족의 갈등

1994년, 벨기에 지배에서 막 벗어난 혼란스러운 르완다 수도 키갈리. 그동안 억압받아왔던 후투족과 벨기에 편에 섰던 투치족 사이의 갈등이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르완다 대통령이 암살되면서 후투족은 투치족에 대한 인종청소를 시작한다.

이런 혼란의 와중에 르완다의 최고급 호텔 밀 콜린스의 지배인을 맡고 있는 폴 루세사바기나(돈 치들)는 외부에서 밀려드는 취재진과 외교관을 맞기에 바쁘다. 그는 그런 가운데도 위기에 몰린 투치족 주민들을 호텔에 숨겨준다. 점차 후투족의 광기가 심해지고, 취재진과 외교관들로부터도 고립되면서 폴은 자신의 아내를 포함한 투치족이 죽어가는 것을 그냥 보고만 있을 수는 없다고 결심한다. 설상가상으로 호텔로 수천 명의 피난민이 모여들기 시작한다.



투치족 주민을 호텔로 숨겨준 지배인

영화 속 호텔의 안과 밖은 천지 차이다. 안은 천국이고 밖은 지옥이다. 벨기에가 세운 4성급 호텔의 사장은 벨기에인이고, 지배인 이하는 르완다 현지인이다. 이곳은 특별하다. 전 세계 최빈국 중 하나이며, 물 부족 국가이지만 양주·담배·음식이 넘쳐나고 수영장까지 있다. 유엔평화유지군과 외신기자들을 비롯한 외국인들과 투치족 부자들이 장기투숙하고 있다.

반면에 호텔 밖은 전쟁터다. 독이 오른 후투족은 남녀노소 구분 없이 닥치는 대로 인간사냥을 한다. 마치 나치 히틀러가 유대인을 학살하듯 한다. 영화 도입부, 라디오 방송을 통해 후투족은 “투치족은 벨기에 식민지배자들의 동조자였다. 그들은 우리 후투족의 영토를 빼앗고 약탈했다. 그들은 바퀴벌레이며, 살인자들이다. 르완다는 우리의 영토이며 우리가 다수 민족이다. 우리는 그 침략자들을 물리칠 것이며 투치 반군을 쓸어버릴 것”이라고 선동한다. 하지만 이 영화가 19세기 서구 제국주의의 침략성과 르완다 사태의 뿌리를 간과한 채 기계적으로 가해자 후투족 대 피해자 투치족으로 구분했다는 평가도 있다.



동포를 살려야겠다는 절박함이 만든 영웅

주인공 폴은 벨기에인 소유 호텔의 지배인이다. 그는 항상 넥타이를 맨 정장 차림으로 손님들에게 친절하게 웃고 답한다. 그는 르완다 사회 내에서 나름 상위 계층으로 시종일관 품위를 유지한다. 적어도 인종학살 현장을 보기 전까지는. 그런 그가 “우리를 구해줄 사람도, 우리를 위해 나서줄 사람도 없다. 우리를 도와줄 사람은 우리 자신밖에 없다”며 죽음을 각오하고 나선다. 미국식의 영웅주의라기보다는 가족과 동포를 살려야 한다는 절박함이 그를 전사로, 영웅으로 만든 것이다.

주인공 폴을 연기한 돈 치들은 그동안 할리우드 영화 ‘어벤저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 등에서 보여준 전형적인 미국 흑인의 이미지에서 벗어나, 어색한 영어 억양을 구사하는 미국인이 아닌 아프리카인으로서의 모습을 보여준다. 혼란과 긴장이 끊이지 않는 전쟁터에서 감정을 절제하며 과장하지 않는 사실적인 연기를 선사한다. 투치인으로서 불안에 떨며 살아야 했던 아내 타티아나 역을 맡은 소피 오코네도의 연기도 인상적이다.



세계 사회의 무관심…100만 희생자 만들어

르완다 내전은 100만여 명의 희생자를 내며 1994년 7월 종식됐다. 불과 100여 일의 짧은 기간에 이렇게 많은 사람이 죽은 것은 말할 것도 없이 후투족의 집단적인 광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게 다일까? 세계 사회의 철저한 무관심과 소극적인 대응이 이 같은 참사를 불러왔다고 볼 수 있다. 강대국과 국제 기구들이 그저 팔짱만 끼고 수수방관하는 사이 아프리카 약소국 르완다의 국민은 종족이 다르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죽임을 당했다. 세계질서 속에서 약소국의 아픔과 비애가 어떤 끔찍한 결과를 초래하는지를 일깨워주는 대목이다.

<김병재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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