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 지휘부의 ‘집단이기주의·의무의 방기’ 질타

입력 2017. 07. 24   16:03
업데이트 2017. 07. 24   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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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 H. R. 맥매스터의『의무의 방기』


현 미국 국가안보수석이 바라본 군 지휘부의 의무

베트남에 대한 존슨 행정부의 의사결정 과정 분석

 

 


 

 

 

 

 

 


전쟁 수행에 관련한 정부의 의사결정에 있어 군 지휘부는 어떤 역할을 담당해야 하는 것일까? 전쟁 역시 국가 정책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이라는 점에서 대통령의 결정에 순응해야 하는 것일까? 아니면 전문성을 바탕으로 적극적인 의견 개진을 통해 주도적으로 참여해야 하는 것인가?



이 책의 저자 맥매스터(1962년생) 장군은 베트남에 대한 존슨 행정부의 의사결정 과정에 대한 분석을 통해 이러한 질문에 답하려 한다. 그의 문제의식은 “베트남 전쟁에 미국이 왜, 어떻게 개입하게 되었는지 여전히 불확실하다”는 것. 특히 “베트남 관련 의사결정에 군이 어떤 역할을 수행했는지 제대로 이해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그가 책에서 다루는 시기는 케네디 대통령이 국방부 장관으로 맥나마라를 임명한 1961년부터 미군이 베트남에 본격적으로 투입되는 1965년 7월까지다. 이때 이루어진 정부의 결정이 이후 베트남 정책의 방향과 승패를 가름했다는 것이 저자의 판단이다.

존슨 대통령과 맥나마라 국방장관, 안보 관련 보좌진, 그리고 미국 합동참모부(이하 ‘합참’)를 구성하고 있는 합참의장과 각 총장들의 발언과 태도, 그들에 의해 이루어진 의사결정이 주요 분석 대상이다. 이들의 정치적 욕망과 충성심, 집단이기주의와 전략적 판단 등이 상호작용해서 정부정책이 결정됐기 때문이다.

43살의 젊은 나이로 취임한 케네디 대통령을 바라보는 국민들의 시선에는 새로운 기대가 가득 차 있었다. 그러나 전통적 군부와 케네디 행정부는 처음부터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지 못했다.

쿠바 전복을 목표로 한 피그만 공격이 실패로 끝나자 책임 문제를 놓고 백악관과 군부 사이의 감정이 악화됐다. 케네디는 통계학자 출신의 맥나마라 국방장관을 앞세워 구닥다리 군대를 몰아붙였다.

케네디 암살 후 승계한 존슨 대통령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오랜 경험의 군 지휘부보다 자신들의 정치적 이해에 충실한 민간인 출신 보좌진을 더 신뢰했다. 대통령은 합참을 통해 그들이 필요한 조언을 구하도록 되어 있지만, 그들은 자신들이 듣고 싶은 것만 들으려 했다. 그리고 그렇지 않은 얘기들은 무시했다.

정치적 이해 vs 군사적 타당성

정치인으로서 존슨 대통령의 문제는 무엇보다 선거에 이기는 것이고, 자신의 프로젝트를 가능하게 할 법률이나 예산안을 통과시키는 것이었다. 대통령 주변에 있는 보좌진들의 일차적인 목표 역시 이러한 대통령의 정치적 바람을 실현하는 것이다. 이에 비해 군부를 대표하는 합참은 군사적 목표의 설정과 달성 방법의 타당성에 더 방점을 두게 마련이다. 1964년에 통킹만 사건이 터졌을 때 합참이 제시했던 대응방안은 군사적 효과를 염두에 둔 것이었다. 그러나 선거를 앞둔 존슨 대통령의 입장에서 더 중요한 것은 베트남 문제를 ‘가능한 한 조용하게’ 처리하는 것이었다. 존슨은 한편으로는 공산주의를 봉쇄하는 일에 단호한 결의를 보여주어야 하지만, 동시에 미국의 직접 개입과 같은 논란을 일으키지 않아야 하는 상황에 처해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애매한 입장을 군부로서는 납득하기 어렵다. 단호한 입장을 과시해야 하지만 직접 개입은 회피하는 전략적 애매함은 군사적으로 효과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군으로서는 확실하고 직접적인 개입(5년간 50만 명 이상 투입)을 통해 베트콩과 이를 지원한 북베트남의 의지와 능력을 완전히 무력화시키는 것을 선호했다. 그렇지 못할 경우 불필요한 개입은 피해야 한다는 것이 합참의 판단이었다.

그러나 존슨 대통령의 입장에서는 베트남의 포기도, 적극적 개입도 가능하지 않은 대안이었다. 베트남의 포기는 자유세계의 수호자로서 미국의 명성을 심각하게 침해할 뿐만 아니라 자유세계 전체의 붕괴로 이어질 수 있다는 불안감이 컸다. 그렇다고 적극적 개입은 코앞에 다가온 선거를 망칠 수 있는 뜨거운 의제였다. 게다가 과도한 개입은 6·25전쟁에서 보여주었듯이 중국과 소련의 참전을 가져올 수 있기 때문에 선택하기 힘든 대안이었다. 결국 존슨 행정부가 선택한 정책은 공산주의자들의 공세에 대응해서 “점진적으로 압력을 강화”해 나간다는 것이었다.



강요된 합의에 암묵적 동의한 군 지휘부

맥나마라 국방장관과 존슨이 임명한 테일러 합참의장은 각군 총장을 교묘하게 설득하면서 자신들의 점진적 압력강화(Graduated Pressure) 정책에 동의하도록 만들었다. 존슨을 비롯한 민간 보좌관들은 군 지휘부를 크게 신뢰하지 않았다. 구태의연하게 군사적 개입 확대만 주장하지, 외교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상상력이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합참은 각군 간의 경쟁으로 어떤 합의된 목소리도 내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맥나마라는 이러한 각군의 이기심을 이용했고, 각군 참모총장들은 허울 좋은 약속을 믿고 맥없이 끌려갔다.

군 지휘부는 1964년에만 해도 맥나마라의 점진적 압력강화 정책의 타당성을 의심했다. 백악관과 합참의 불화가 논란이 될 정도였다. 그러나 1964년 12월 존슨이 압도적인 표차로 대통령에 당선되자 정부 정책에 추종하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백악관에 우호적인 휠러 장군이 합창의장에 취임하면서 더욱 순응적으로 변했다. 이제 전략적 목표 자체의 타당성 논의는 사라지고, 어느 부대를 얼마나 투입할지에 대한 전술적 문제만 논의됐다. 정부 정책에 대한 암묵적 수용이 이루어지자 각군은 전쟁에서 더 많은 역할과 예산을 타내기 위한 경쟁에 나섰다.

저자가 질타하는 것은 이 과정에서 군 지휘부가 보여준 ‘의무의 방기’이다. 합참은 행정부와 의회에 자신들의 전문성과 경험에 비추어 올바른 조언을 하게 되어 있는 합법적 기구임에도 불구하고, 존슨 행정부의 잘못된 정책을 지지하거나 암묵적으로 동의한 것은 자신들의 의무를 방기한 행동이라는 지적이다.

합참의 군 지휘부는 각군의 집단이기주의에 빠져 합의된 목소리를 내는 데 실패했다. 오히려 강요된 합의에 암묵적으로 동의했다. 더 심한 것은 존슨 대통령이나 맥나마라 국방장관이 미 의회나 국민에게 진실을 말하지 않는 상황에서도 그들은 침묵하면서 국가를 잘못된 방향으로 이끄는 데 일조했다는 지적이다.



베트남의 재앙, 인간적 실패의 결과

그렇다면 이러한 문제는 왜 발생하는가? 저자는 다음과 같은 말로 책을 마무리하고 있다. “베트남 전쟁이 패배한 곳은 전투현장이 아니라 바로 워싱턴DC였다. 베트남에서의 재앙은 비인간적 요인들의 결과가 아니라 전적으로 인간적 실패에 의한 것이다. 그 책임은 존슨 대통령과 주요 안보보좌관, 그리고 군 지휘부가 함께 져야 한다. 그들이 보여준 자만심, 나약함, 자기 이익을 위한 거짓말, 그리고 무엇보다도 미국민에 대한 의무의 방기와 같은 잘못들이 상호작용한 결과이다.”

잘 알다시피 저자 맥매스터 장군은 트럼프 행정부의 국가안보보좌관이다. 미육군사관학교에서 역사학을 강의한 학자이자 걸프전에서 신화로 남은 ‘73이스팅전투’의 주인공이다. 이 책이 출간되자마자 뉴욕타임즈 베스트셀러가 되었지만 군 지휘부에 대한 신랄한 표현으로 인해 격렬한 찬사와 비난을 동시에 받았다. 장군으로 진급하지 못할 거란 예상도 많았다. 그러나 그는 보란 듯이 3성 장군에 진급했고, 급기야 미국의 국가안보정책을 조율하는 위치에 올랐다.

이 책의 일차적 대상은 고위 군 지휘관들이다. 하지만 국방안보 정책 결정에 관여하는 이들이라면 누구나 일독해야 할 책이다. 베트남 전쟁으로 가장 큰 정치적 좌절을 경험한 이들은 바로 존슨 대통령과 그 보좌진이기 때문이다.

<최영진 중앙대 정치국제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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