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군] ‘父子 빨간 마후라’ 조국 영공 영원히 지키리…

입력 2015. 06. 15   18:18
업데이트 2015. 06. 15   18:18
0 댓글

<2> 공군 순직 부자 조종사 박명렬 소령·박인철 대위


결혼 4년 만에 남편 1984년 팀스피리트 훈련 중 순직

그 당시 다섯 살이던 아들도 아버지의 길 그대로 따라

서울현충원에 나란히 안장…‘호국부자의 묘’로 명명

 

“아버지가 못다 지킨 하늘, 이제부터 제가 지키겠습니다.” 고(故) 박인철(공사52기) 공군대위(추서계급)는 지난 2006년 2월, 공군 고등비행교육과정을 수료하고 전투조종사의 상징인 ‘빨간 마후라’를 맨 뒤 이렇게 다짐했다. 박 대위의 아버지 고 박명렬(공사26기) 소령도 공군17전투비행단 소속 F-4E전투기 조종사였다. 1984년 3월 14일 한·미 연합 군사훈련인 팀스피리트 훈련에서 저고도 사격임무 수행 중 비행기 추락 사고로 서른두 살에 순직했다.  

 

 


 

 

 

   ▲ 자상한 남편과의 짧은 결혼생활

 운명은 가혹했다. 아버지의 뜻을 이어가려는 아들마저도 조국의 창공을 지키다 2007년 순직했다.

 평소 박 소령은 ‘불구덩이를 매달고 공중을 향해 치솟고 내달리는 건 우리의 숙명이다’라고 입버릇처럼 말했다고 한다. 그가 하늘나라로 갔을 때 아들 박 대위는 다섯 살이었다. 박 소령의 부인이자 박 대위의 어머니인 이준신(60) 씨는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30여 년 전의 일을 떠올렸다.

 “당시 청주에 있는 관사에서 거주했어요. 낮에 비행 사고가 났다며 관사 안이 술렁술렁하더라고요. 남편이 전날 비행이 없다고 해서 저는 안심하고 있었는데 밤이 돼서야 사고 소식을 들었어요. ‘이건 아니다’라는 생각밖에 안 들더라고요. 그때 아들이 다섯 살이고, 딸이 세 살이었어요. 아이들 데리고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했어요.”

 3년 연애 끝에 1980년 결혼한 이씨는 4년의 행복한 결혼생활을 끝으로 남편과 영영 이별했다. 이씨의 손에는 박 소령이 결혼 때 선물한 빨간색 임관반지가 껴 있었다.

 “참 자상하고 가족에게 잘했어요. 누가 그러더라고요. 그렇게 짧게 살다 가려고 가족에게 평생 해줄 거 다 해주고 간 것 같다고요.”

 이씨는 이후 아이들의 친가와 외가가 있는 서울로 올라와 미용 관련 교육을 32년째 해오고 있다. 아버지의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자녀들에게 부족함 없이 뒷바라지했다. 아들 박 대위도 어머니의 기대에 부응해 학창시절 내내 성적이 우수했다.



 



 ▲ 아버지의 뒤이어 조종사 된 아들

 박 소령의 순직 후 16년이 흐른 2000년, 박 대위는 아버지의 길을 따르겠다며 공군사관학교를 택했다. 가족들은 재수까지 해서 공사에 진학하겠다는 고집을 꺾을 수 없었다.

 “인철이가 너무도 간절하게 원하더라고요. 처음에는 공사에 가도 모두 조종사가 되는 건 아니니까 괜찮을 거라는 기대도 있어서 허락했어요. 막상 사관학교에 다니더니 조종사가 되겠다고 하더라고요. 운명 같은 느낌이 들었어요. 아빠가 아들을 지켜줄 거라는 믿음이 생기더라고요.”

 2004년 임관한 박 대위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 ‘빨간 마후라’의 꿈을 이뤘다. 20전투비행단 소속으로 KF-16을 주기종으로 하는 전투기 조종사가 됐다.

 당시 박 대위는 어머니에게 “처음 조종간을 잡았을 때 나는 이 길이 내가 가야 할 길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버지만은 그 사실을 아실 것”이라고 전했다고 한다.

 그러다 2007년 7월 20일, 서해안 상공에서 야간 요격 훈련 중 스물일곱의 나이로 순직했다. 남편에 이어 아들의 사고 소식을 들은 이씨는 또 한 번 기구한 운명 앞에서 힘없이 주저앉고 말았다.

 이씨는 “사는 게 사는 게 아니었다. 딸만 없었더라면 저는 지금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을 거다.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씩이나, 하느님이 원망스러웠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사고 나기 4일 전인 7월 16일은 박 대위의 생일이다. 가족들이 휴일인 17일에 모여서 함께 식사하며 박 대위의 생일을 축하해준 게 마지막이었다.

 “시신이라도 온전히 찾았으면 좋았을 텐데… 겨우 일부만 수습했어요. 아직도 차가운 바다에 아들이 있다고 생각하면 너무 견디기 힘듭니다. 그 당시 결혼할 친구도 있어서 상견례하고 다음 해에 결혼 약속까지 한 상태였어요. 며느리 될 아이도 참 예쁘고 착했는데…. 그 아이가 일 년 뒤에 곧 결혼한다면서 찾아왔더라고요. 우리 인철이랑 이름이 같은 다른 사람하고요.”

 이씨는 남편과 아들을 위해 기도한다는 마음으로 2000년부터 꾸준히 봉사를 해 왔다.

 “포천에 있는 요양원에서 미용 봉사를 시작했어요. 다른 사람을 돕다 보면 우울하던 마음도 가더라고요. 두 사람을 생각하면 지금도 너무 힘들지만, 제가 눈감는 날까지 사랑하는 두 남자는 영원히 마음속에서 함께 살고 있을 거예요. 아빠와 아들이 이 세상에서 못다 한 부자간의 정을 하늘나라에서 꼭 만나서 정답게 나눴으면 하는 마음뿐입니다.”





 ▲ ‘호국부자의 묘’ 안장

 박 소령과 박 대위는 국립서울현충원에 나란히 안장됐다. 기존 박 소령의 묘에 가족들의 청원에 따라 2007년 7월 23일 박인철 대위를 안장해 부자가 함께 영면하게 됐다. 현충원은 이들 부자의 묘를 ‘호국부자의 묘’로 명명했다.

 또한 공군사관학교에서는 순직조종사의 숭고한 정신을 기리기 위해 2009년 7월 20일 부자 조종사 흉상이 제막됐다. 이 흉상은 한국국방안보포럼 등 민간단체가 제작해 기증한 것으로, 2010년 2월 12일 국가보훈처로부터 현충 시설로 지정됐다.

사진 제공=이준신 씨

조아미 기자 < joajoa@dema.mil.kr >

< 저작권자 ⓒ 국방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0 댓글

오늘의 뉴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