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부대 자랑거리〈5〉-공군10전투비행단 101대대

입력 2002. 02. 19   00:00
업데이트 2013. 01. 04   2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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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전투 비행대대


북한군의 미그기가 활주로를 이륙해 우리의 수도권 상공에 이를 수 있는 시간은 불과 7분. 우리 공군은 미그기가 이륙하는 순간부터 이를 포착한 후 대응하기 시작, 휴전선 상공에서 아군기를 적기와 격돌시킬 수 있어야 유사시 서울 등 수도권이 입을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

공군의 각 전투비행단이 이를 위해 준비하는 것이 `스크램블(비상출격)'. 주둔지에 따라 비상출격 소요시간은 조금씩 다르지만 수원기지의 공군10전투비행단(전비)만큼은 `단 3분'의 출격을 보장하고 있다.

비록 휴전선에서 60㎞ 정도 이남에 위치해 있을지라도 수원의 10전비는 휴전선의 GP와 GOP보다 더 촌각을 다투는 `최전방'이요, `선봉'인 것이다. 특히 10전비의 주력인 101전투비행대대는 `선봉 중에 선봉'인 동시에 대한민국 최초의 전투비행대대로서 공군의 살아 있는 역사로 불린다.
101대대는 51년 8월1일 경남 사천에서 제10비행전대 11비행대대로 창설, 전쟁 중 F_ 51기로 총 3856회 출격했고 100회 이상의 출격 조종사만도 21명을 배출하는 등 최고의 전투비행대대로서 이름을 드높였다.

특히 미 공군이 500회나 출격하고도 폭파하지 못한 평양 인근의 승호리 철교를 대대가 단 14회 출격만에 폭파한 것은 전쟁사에 길이 남을 전공. 52년 1월15일 옥만호 대위(예비역 대장)를 비롯한 6명의 조종사가 1500피트의 초저고도로 비행해 폭격을 감행, 철교를 완전히 폭파하며 적의 보급로를 차단했다.
54년 수원기지로 이동한 후에도 대대는 대간첩작전에서 크게 공헌함은 물론 64년 톱 사브레상을 시작으로 99년 보라매사격대회 최우수대대에 뽑히기까지 각종 사격대회와 훈련에서 공군의 최정예다운 탁월한 전투역량을 과시했다. 83년 MIG-19기를 타고 월남한 북한 공군의 이웅평 대위에 대한 성공적 유도착륙 작전과 96년에 세계 최초로 수립한 9만 시간 무사고 비행기록은 그 대표적 사례들이다. 10전비가 대통령부대표창을 9회 수상하는데 크게 기여했음은 물론이다.

F- 51기를 시작으로 F- 86F기(56년) ·F- 5E기(75년)에 이어 82년 9월부터 국내에서 조립생산한 제공호를 최초로 도입, 지금까지 운용하고 있는 대대에는 그동안 현 대대장 조병수(趙炳洙 ·공사31기)중령에 이르기까지 모두 40명(중임 포함)의 지휘관이 거쳐갔다. 2대, 4대 대대장을 지낸 전 참모총장 옥만호 장군, 전 국방부장관 이양호 장군, 전 참모총장 김홍래 장군(이상 예비역 대장), 현 공군참모총장 이억수 대장 등 18명의 장성을 배출했으며, 현 10비행단장도 36대 대대장을 역임했다.

이같은 최고, 최정예의 역사와 전통은 비단 10전비와 101대대 장병들의 자랑과 긍지만으로 그치지 않는다. 오늘날 공군 전투조종사의 상징이 된 빨간 머플러의 기원도 6·25전쟁 당시 고 김영환 준장(사후1기) 등 10전비 소속의 전투조종사들에서 비롯되었고, 공군소재의 대표적 영화 `빨간마후라' 역시 이들의 활약상을 바탕으로 제작되었다, 10전비와 101대대는 공군 전투조종사들에게 있어 마음의 고향으로 인식되고 있는 것이다.

비행대장 김종관(金從官 ·공사36)소령은 “최고 ·최정예 ·최전선의 조종사라는 자부심과 긍지 그리고 `살아도, 죽어도 오직 하늘만이 우리의 일터요, 보금자리'라는 선배 조종사들의 각오를 이어받아 임무수행 능력을 한층 강화해 나갈 것”이라고 말하고 물샐틈 없는 영공수호를 다짐해 보였다.

〈신인호 기자 idmz@dapis.go.kr〉

신인호 기자 idmz@dapis.go.kr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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