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교양 K-pop 스타를 만나다

해외 작사가 대신 한로로…흐름이 달라졌다

입력 2026. 08. 24   15:39
업데이트 2026. 08. 24   1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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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팝의 국내 음악가 협업 

‘해외 뮤지션 외주·한국 프로듀서’조립식 제작 시스템 이제 옛 방식
최근 발표 신곡들 참여진 속에 익숙한 한국 아티스트 이름 등장
트렌디한 그들의 음악, 경계 허물며 더 풍성하게 해


걸그룹 아워벌스데이. 사진=이닛엔터테인먼트
걸그룹 아워벌스데이. 사진=이닛엔터테인먼트

 

브이에잇. 사진=플레디스엔터테인먼트
브이에잇. 사진=플레디스엔터테인먼트

 

더딥.
더딥.

 

한로로. 사진=어센틱
한로로. 사진=어센틱



지난 7월 음악팬들 사이에서 가장 많이 회자된 K팝이 있다. 보이그룹 세븐틴의 버논과 디에잇이 결성한 유닛 V8이 발표한 동명의 EP다. 전 세계 일렉트로닉과 언더그라운드 신의 창작가들 작품에 지속적인 관심을 기울이던 듀오가 그들의 영향력을 적극 발휘해 호화로운 참여진과 함께 선명한 지향과 창작을 선보인 이 앨범에서 가장 관심을 끈 곡은 버논의 솔로곡 ‘미아’였다.

‘미아’에는 지난해 한국대중음악상 최우수 일렉트로닉 부문을 수상한 전자음악가 키라라와 코스모스 슈퍼스타라는 이름으로 함께했던 한정인이 이름을 올렸다. 버논이 직접 인스타그램 메시지로 협업을 제안해 성사된 이 작업에서 키라라의 저돌적 리듬과 서정적 멜로디, 한정인의 천진하고 희망찬 코러스 보컬이 곡의 주인이 그리고자 하는 좌충우돌 음악의 지도를 함께 만들어 가는 모습이 펼쳐졌다.

K팝 참여진에서 익숙한 이름을 자주 발견하는 요즘이다. 걸그룹 엔믹스의 ‘헤비 세레나데(Heavy Serenade)’의 노랫말은 싱어송라이터 한로로가 썼다. 2026년 상반기 한국인이 가장 많이 들은 노래 ‘사랑하게 될 거야’와 ‘0+0’의 주인공인 그는 특유의 연약하고도 서정적인 청춘의 정서를 현재 가장 과감한 음악에 도전하는 엔믹스에 성공적으로 결합했다. 협업의 가치를 일찍이 깨달은 그룹도 있다. 아일릿이다. 과몰입이란 주제 아래 엉뚱한 공상과 동의를 구하지 않는 자기주장을 펼치는 이들은 지난해 ‘낫 큐트 애니모어(Not Cute Anymore)’에서 독특한 상상력으로 독보적인 존재감을 발휘하는 싱어송라이터 유라의 도움을 받았다. 이 인연이 당돌한 올해의 ‘잇츠 미(It’s Me)’로까지 이어졌다. 아일릿의 소속 레이블 빌리프랩은 현대적인 하드 테크노와 트랜스의 요소를 결합한 ‘잇츠 미’를 위해 해외 작사가들과 함께 새로운 게스트를 초빙했다. 그 주인공은 한국 일렉트로닉 팝 싱어송라이터로서 세계의 트렌드를 가장 잘 따라가고 있는 ‘더 딥’이다.

일렉트로팝 및 Y2K 레트로 트렌드를 가장 발 빠르게 가져온 걸그룹 키키의 ‘와이키키(WhyKiiiKiii)’에도 더 딥의 이름을 발견할 수 있다. 더 딥뿐만이 아니다. 이 앨범은 작사진만 보면 K팝 프로덕션이 아니라 어떤 언더그라운드 음악가의 데뷔작 혹은 음악크루의 컴필레이션 작품처럼 느껴진다. 더 딥과 ‘마이 언니’ 크루를 함께하며 현재 세계 하이퍼팝과 일렉트로팝 신의 총아로 주목받는 에피는 특유의 재기 발랄한 재발견의 시선을 ‘캔디 핑크 매직 홀 플립 폰(Candy Pink Magic Hole Flip Phone)’에 듬뿍 담았다. 올 상반기를 장악한 키키의 히트곡 ‘404’의 통통 튀는 노랫말을 만든 바밍타이거 소속 래퍼 오메가 사피엔은 이번 타이틀곡 ‘팝 오프 팝 오프(Pop Off Pop Off)’ 작업에도 참여했다. 싱어송라이터 수민, 이소, 윤다혜, 릴체리, 카모의 이름도 눈에 들어온다.

하반기에도 흥미로운 경향은 계속된다. 24일 첫 EP ‘튠 앤드 플레이(TUNE & PLAY)’를 내놓으며 데뷔한 하이브 산하 ABD 레이블 소속 걸그룹 튜이드의 조력자들이 상당하다. K팝 특유의 빽빽한 크레디트 가운데 모든 곡에 참여하며 중심을 잡은 팀은 한국의 프로듀싱 팀 그루비룸이다. 그루비룸의 지휘 아래 프로듀서 보이콜드, 래퍼 신스, 싱어송라이터 수비, 치즈의 보컬 달총, 래퍼 미란이, 프로듀서 히치하이커의 딸로서 틴에이지 싱어송라이터로 입지를 굳히고 있는 진 초이가 프로젝트에 합류했다. 앨범 하이라이트 메들리에서 확인한 튜이드의 음악은 보사노바 장르의 리듬과 무드에 현대적인 힙합, R&B, 전자음악의 요소가 선명하다. JYP엔터테인먼트 산하 이닛엔터테인먼트에서 데뷔한 신인 걸그룹 아워벌스데이의 데뷔곡 ‘스퀴지(SQUEEZY)’는 유명 일렉트로닉 아티스트이자 프로듀서로 활약 중인 임레이의 단독 작곡이다.

최근 K팝에서 적극적 협업이 두드러지는 원인은 뭘까. 컨베이어벨트 시스템으로 불리는 견고한 구조와 그로 인해 발생하는 관습을 타파하기 위한 시도라고 본다. 1998년 SM엔터테인먼트가 S.E.S.의 ‘드림즈 컴 트루(Dreams Come True)’를 핀란드 작곡가 리스토 아시카이넨에게 받아 온 이후부터 정착된 해외 작곡가 외주와 한국 프로듀서들의 가공방식은 송캠프라는 이름으로 상시화하며 K팝의 가장 보편적 작업법으로 자리 잡았다. A&R이 콘셉트와 참고 영상을 정리해 해외 작가들에게 배포하면 데모가 들어오고, 그중 적합한 음악을 골라 한국의 정서와 노랫말을 얹는 식이다. 멜로디를 쓰는 탑라이너와 반주를 만드는 트랙메이커의 역할이 다르고, 노래 가사를 담당하는 인원도 많다. 그 결과가 오늘날 영화 한 편을 방불케 하는 조립식 K팝 제작 시스템이다.

이제 이 방식도 고루하다. K팝에서 통한다고 검증된 해외 팀은 생각보다 소수다. 그들은 회사를 가리지 않고 일한다. A사 걸그룹 타이틀곡을 쓴 팀이 다음 달 B사의 보이그룹 수록곡을 만든다. K팝 그룹 기획부터 제작까지 모든 과정을 총괄하는 결정권자가 있는 레이블이라면 이런 결함을 매끄럽게 다듬어 낼 수 있겠지만 안타깝게도 대다수는 그만한 미감이 없다. 몰개성한 원물을 가공하는 것보다 아예 처음부터 독창적 결과를 가져오는 결정이 새로움을 만들 수 있다.

오늘날 10대와 20대에게 K팝은 꼭 들어야 하는 음악이 아니다. 개인의 취향과 흥미를 강화하는 스트리밍 감상의 시대에 아이돌 ‘덕질’은 하나의 선택지다. 언더그라운드 랩스타, 인디펜던트 밴드, 싱어송라이터의 개성 강한 음악이 어딘지 모르게 다 비슷하게 들리는 K팝보다 재미있게 다가온다. 그 세대가 제작진으로 참여하는 2026년의 K팝은 자연히 낯선 서구의 K팝 작업자들보다 우리와 함께 같은 땅에서 발을 딛고 서 있는, 조금의 수고를 더하면 직접 미팅을 진행하고 공연을 보러 갈 수 있는 창작가들에게 손을 내민다. K팝의 잘 짜인 기획에 사람의 목소리가 들어온다. 경계를 허물어야 한다.


필자 김도헌은 대중음악평론가다. 음악웹진 이즘(IZM) 에디터와 편집장을 역임했다. 한국대중음악상 심사위원이다. 음악채널 제너레이트(ZENERATE) 유튜브와 팟캐스트를 운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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