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덕현의 페르소나 - ‘유부녀 킬러’ 워킹맘 액션 히어로로 돌아온 공효진
법 밖의 극악한 범죄자들 단죄하는
낮과 밤 다른 여성 히어로물에 도전
가족과 있는 장면선 익숙한 공블리
저격 미션 수행 땐 서늘한 얼굴로…
특유의 힘 뺀 절제된 연기 몰입감↑
|
이제 낮과 밤이 다른 여성들의 시대가 열린 것일까. 낮이면 평범한 삶을 살다가 밤이 되면 히어로가 되는 여성 캐릭터가 부쩍 늘었다. ‘밤에 피는 꽃’의 조여화(이하늬)는 수절과부로 조신한 삶을 종용받지만 밤이 되면 복면을 쓰고 의적이 돼 도움이 필요한 이들을 위해 담을 넘는다. 올해 초 방영된 ‘은애하는 도적님아’의 홍은조(남지현)도 마찬가지다. 이 인물은 낮에는 의녀로 살아가지만 밤이면 도적이 돼 탐관오리들의 곳간을 털어 먹지 못해 약발조차 듣지 않는 가난한 병자들의 집에 나눠주는 ‘길동’으로 살아간다.
이 두 작품이 사극 버전으로 낮과 밤이 다른 여성 히어로를 그려내고 있다면, 최근 방영되고 있는 ‘유부녀 킬러’는 이를 현대극의 워킹맘 버전으로 그려내고 있는 작품이다. 이 작품의 여성 히어로 유보나(공효진)는 예쁜 딸과 자상한 남편 사이에서 사랑받는 워킹맘이지만 육아휴직을 마치고 돌아온 그녀의 현업은 백발백중 원샷원킬의 저격수 ‘킹피셔’라 불리는 킬러다.
‘유부녀 킬러’의 유보나가 그런 킬러의 삶을 살게 된 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사법 정의를 대신하기 위해서다. 이제 겨우 여덟 살짜리인 아이를 성폭행한 범죄자가 죄에 비해 짧은 형기를 마치고 출감해 아이 가진 부모들을 불안하게 만드는 세상이 아닌가. 또 극악한 범죄를 저지르고도 돈과 권력의 힘으로 죄의 대가를 치르지 않고 버젓이 살아가는 범법자도 적지 않다. 그래서 유보나는 총을 든다. 언제 어디서든 그런 자들에게 총알이 날아와 그 뻔뻔한 삶을 끝장낼 수 있다는 걸 알려주기 위함이다. 그래서 그들이 두려워할 존재, ‘킹피셔’가 된다.
유보나라는 인물은 이처럼 아이를 세상에 내놓기 두려운 워킹맘들의 불안이 투영된 캐릭터다. 과거라면 이런 인물들이 경찰 같은 공권력에 의지하거나 이들을 돕는 남성 히어로의 도움을 받았을지 모르지만, 이제는 이 여성들이 직접 총이나 칼을 들고 문제를 해결한다. 더 이상 수동적 위치에 머물러 있지 않는다. 특히 최근 들어 OTT 영향으로 장르물이 부쩍 늘기 시작하면서 여성 액션 히어로들이 대세가 됐다. ‘재벌×형사2’에서 악마 교관이라 불리며 강인한 경찰 역할을 소화하는 정은채, ‘킬러들의 쇼핑몰’에서 글로벌 범죄 조직과 싸우며 어엿한 킬러로 성장하는 과정을 보여준 김혜준처럼, 현재 방영되고 있는 장르물 속 여성들은 이제 멜로퀸을 넘어서는 액션 히어로의 면면들을 보여준다. ‘유부녀 킬러’는 이제 그 대열에 공효진도 들어가게 됐다는 걸 보여주는 작품이다.
‘상두야 학교 가자’부터 ‘고맙습니다’ ‘파스타’ ‘최고의 사랑’ ‘주군의 태양’ ‘질투의 화신’ ‘동백꽃 필 무렵’ 등 공효진의 필모는 로코퀸, 공블리라는 수식어에 걸맞은 역할들로 주로 채워졌다. 장르물이 점점 많아져 멜로는 이제 식상하다는 이야기가 나오던 시절에도 공효진이 하는 멜로는 무조건 성공한다는 신뢰가 생길 정도였다. 하지만 공효진 역시 현재의 사회 변화와 그로 인해 달라지고 있는 여성들의 역할에 맞는 도전을 수용하게 됐다. ‘유부녀 킬러’는 바로 그 도전의 결과물이다.
|
물론 ‘유부녀 킬러’에서 공효진이 맡은 유보나라는 인물은 양면적이다. 가족과 있을 때면 여전히 가부장적 잔재가 남은 집안의 며느리이자 자상한 남편의 사랑을 받는 아내의 모습을 보여주는데, 그건 공효진에게는 익숙한 얼굴이다. 하지만 그 평범한 얼굴이 회사로 복귀해 ‘미팅’이라는 이름의 저격 미션을 수행할 때는 그 반전의 효과를 만들어낸다. 순식간에 얼음처럼 차가워진 얼굴로 타깃을 향해 거침없이 방아쇠를 당기는 모습이 카타르시스를 주는 이유다. 또한 공효진은 이 역할에서 그저 원거리 저격 액션을 넘어서는 몸과 몸이 부딪치는 맨몸 액션도 선보였다. 카지노 호텔에서 벌어진 다른 킬러들과 맞붙는 장면에서 공효진은 지금껏 그녀의 필모에서 볼 수 없던 격투 액션을 보여준다.
하지만 공효진의 이런 연기 변신에서 주목할 점은 액션 히어로의 면면을 오버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자기 모습으로 소화한다는 점이다. 그녀의 표현을 쓰자면 불필요한 표현을 걷어내고 한층 가라앉힌 ‘플랫(flat)’한 연기를 액션에서도 보여준다고나 할까. 그 플랫한 연기란 한때 공효진이 감정을 애써 꺼내놓으며 멜로 연기를 하던 시절을 벗어나, 다소 절제하는 연기로 보는 이들이 더욱 감정에 빠져들게 했던 연기를 뜻한다.
|
그녀는 이제 액션 연기에서도 이런 면들을 드러낸다. 과장된 동작을 줄이고, 간결하지만 확실한 타격감을 주는 액션으로 오히려 파괴력 있는 흡인력을 만들고 있다. 이러한 감정의 완급조절은 이 작품이 갖고 있는 ‘힘숨찐(힘을 숨긴 진짜 주인공)’ 캐릭터로서의 유보나와도 잘 어우러진다. 평상시에 한껏 힘을 뺀 자연스러운 엄마이자 아내의 모습을 보여주다가 어느 순간이 되면 얼굴을 갈아 끼우고 한껏 긴장감을 높이는 킬러로 변신한다.
공효진은 작품 선구안이 좋은 배우로도 잘 알려져 있다. 그녀가 선택한 작품들의 면면을 보면 그 캐릭터에 투영된 시대의 페르소나가 눈에 띈다. 예를 들어 ‘동백꽃 필 무렵’의 동백은 아들을 혼자 키우는 싱글맘으로서 사회적 편견에 의해 소외된 소수자 정서를 건드리는 인물이었다. ‘파스타’의 서유경은 이제 일도 사랑도 쟁취하고픈 당당한 욕망을 드러냈던 여성이었다. ‘유부녀 킬러’도 마찬가지다. 육아에 ‘시월드’까지 감당하면서 동시에 일터로 나가는 워킹맘의 욕망과 불안한 사회에 대한 감정들이 유보나라는 킬러에 투영돼 있다.
항상 시대 변화를 예민하게 느끼는 공효진이라는 배우의 선구안은 이제 공블리라는 틀을 깨고, 보다 다채로운 자신의 얼굴들을 찾아 나서기 시작했다. 너무나 자연스럽게 공효진이라는 배우만이 가진 색깔로 해석된 다양한 얼굴들이 그녀에게서 피어나고 있는 중이다.
오늘의 뉴스
Hot Photo News
많이 본 기사
이 기사를 스크랩 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