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조명탄

지금이 한민족 역사상 최고 전성기인가

입력 2026. 08. 07   15:29
업데이트 2026. 08. 09   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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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선택 서강대 지식융합미디어대학 대우교수
왕선택 서강대 지식융합미디어대학 대우교수


요즘 대한민국의 국제적 위상이 눈부시게 높아졌다. 방탄소년단(BTS)의 공연에 열광하는 세계인의 모습이나 대한민국 대통령이 해외 순방에서 받는 예우를 보면 격세지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일까. 지금 대한민국이 한민족 역사상 ‘최고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다고 말하는 이가 적지 않다. 이 주장은 차분하게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우리 역사에는 전성기가 여러 차례 존재했기 때문이다.

고구려 중기는 한민족 역사에서 손꼽히는 군사강국 시기였다. 19대 광개토호태왕은 만주 일대로 영토를 대대적으로 확장했고, 20대 장수왕은 당시 패권국인 북위와 활발하게 외교를 전개하며 동북아시아 강대국 위상을 확립했다. 장수왕 서거 당시 북위 황제가 국가 의례에 준하는 예를 갖춰 애도한 것은 고구려의 높은 국제적 위상을 잘 보여 준다.

통일신라 초·중반은 한국사에서 태평성대의 표본이다. 서기 660년과 668년 백제와 고구려를 병합한 신라는 당시 패권국 당이 한반도를 직접 지배하려 하자 전쟁을 택했다. 약 6년에 걸친 전쟁 끝에 당군을 축출하는 데 성공했다.

이후 통일신라는 약 100년간 태평성대를 누렸다. 불국사와 석굴암은 이 시기 통일신라의 국가 역량과 문화적 수준을 나타내는 대표적 유산이다.

국제위상 측면에서 고려 초·중반 역시 빼놓을 수 없는 전성기다. 고려는 당시 군사 패권국 요나라가 28년간 6차례에 걸쳐 침공했지만 끝내 격퇴함으로써 외교적 자율성을 지켜 냈다. 나아가 요의 견제에도 경제·문화 중심국 송과의 교류를 지속하는 다층적 외교를 전개했다.

요는 고려를 통제하지 못했고, 송 역시 고려와의 관계를 매우 중시했다. 대각국사 의천이 송나라를 방문했을 때 그에 대한 예우 문제를 두고 송나라 조정에서는 왕안석의 신법당과 소식의 구법당이 격렬한 논쟁을 벌여 송 황제도 조율에 곤혹을 겪었을 정도다.

조선 역시 당대의 문화강국이었다. 세종대왕 시기 한글 창제를 비롯해 천문, 농업, 의학, 음악 등 다방면에서 눈부신 발전을 이뤘다.

조선 중기에는 퇴계 이황과 율곡 이이를 중심으로 성리학이 심화되면서 조선의 학문은 중국· 일본 지식인 사회에 깊은 영향을 미쳤다. 당시의 교통·통신여건을 고려하면 이러한 학문적 파급력은 오늘날 K컬처에 비견할 만한 문화적 존재감을 보인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현재 대한민국의 눈부신 성취를 폄하하려는 게 아니다. 다만 한민족이 2000여 년의 역사 속에서 ‘지금 처음으로’ 전성기를 맞았다는 인식, 다시 말하면 한민족 역사는 줄곧 약소국 역사였다는 인식을 경계하자는 것이다. 우리의 긴 역사 중에는 부끄러운 시기도 있었지만 강성했던 시절도 병존했다는 점을 차분하게 이해할 필요가 있다.

우리 역사를 부정적으로만 바라보는 시각에는 일제 식민사관이 주입한 타율성론·정체성론·당파성론의 잔재가 여전히 남아 있다.

한민족은 시대에 따라 군사력, 평화, 문화, 외교 등 다양한 모습으로 전성기를 경험했다.

오늘의 대한민국은 이러한 유구한 역사의 축적 위에서 ‘또 하나의 전성기’를 써 내려가고 있다. 과거 영광을 새로운 시대에 재현하고 있다는 인식이 역사적 진실에 부합한다. 이러한 인식이야말로 오늘의 성취를 겸손하면서도 당당하게 받아들이고, 대한민국의 다음 전성기를 준비하는 든든한 자산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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