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준
국방일보 심층 기획 강군의 조건 '민주군대'
① 민주군대는 왜 강한가?
② 민주군대의 선택 ‘제복 입은 시민’
③ 군에서 익히는 ‘다양성과 소통 능력’
④ 대한민국 군대의 변화와 성숙
⑤ 전문가 인터뷰
“오직 헌법과 국민에게 통제받는다” 정당성·절차적 신뢰성 확보
자발적인 책임감·사명감으로 이어져 장병 사기·군 응집력 강화
미·독 등 주요 민주국가들, 문민통제·군의 정치적 중립 ‘제도화’
투명한 제도·낮은 부패율 ‘강력한 회복탄력성’으로 국방력 회복
흔히 ‘민주적 군대’는 강하지 않다고 오해한다. 민주적 문화와 절차가 군의 신속한 의사결정을 방해하고 이는 결국 전투력 약화로 이어진다는 편견에서다. 하지만 사실은 다르다. 근대 민주주의 체제가 확립된 이래 이른바 ‘민주군대’의 전투력은 결코 약하지 않았다. 그 기조는 민주주의 가치가 전 세계적으로 보편화한 현대에도 그대로 적용되고 있다. 우리 군이 ‘헌법과 법률’에 따르는 민주적 통제와 국민 신뢰를 기반으로 하는 ‘민주강군’을 지향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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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적 통제가 강한 군대를 만든다
민주적 군대가 강한 이유는 명확하다. 국민의 통제를 받는다는 조직의 정당성과 주요 정책결정 과정에서의 절차적 신뢰성이 구성원들의 사기와 응집력을 높이기 때문이다. 군은 국가가 보유한 가장 강력한 공권력이다. 평시에는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고, 전시에는 무력을 행사한다. 민주국가는 이러한 군을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권한을 행사하는 조직으로 규정한다. 우리 헌법 역시 국군의 사명을 국가의 안전보장과 국토방위로 규정하고, 정치적 중립을 명시하고 있다. 군이 충성해야 할 대상은 특정 정권이나 정치세력이 아니라 ‘헌법과 국민’이라 못 박고 있다.
이 헌법 원칙을 제도적으로 뒷받침하는 것이 문민통제다. 문민통제는 국민이 선출한 민주적 권력이 헌법과 법률에 따라 군을 통제하는 원칙을 의미한다. 우리나라는 대통령이 군 통수권을 행사하고, 국회는 국방예산과 국방 관련 법률을 심의·의결한다. 정부는 국방정책을 수립·집행하는 구조를 통해 문민통제를 구현하고 있다.
민주주의 국가들은 ‘국민으로부터 신뢰받는 군대’를 지향한다. 군이 정치적 중립성을 유지하고 법과 제도 안에서 임무를 수행할 때 국민은 군에 정당성을 부여한다. 이는 안정적인 국방정책 추진과 예산 지원으로 이어진다. 장병들 역시 자신들의 임무가 헌법과 국민을 위한 것이라는 자부심을 안고 복무한다. 민주주의가 ‘무형전력’의 중요한 구성요소가 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민주적 체계가 군의 전문성을 약화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강화한다고 설명한다. 군이 정치와 거리를 둘수록 본연의 임무인 국가방위에 집중할 수 있고, 국민의 신뢰와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장병들의 사기와 조직 응집력 역시 이러한 신뢰를 기반으로 높아질 수 있다고 분석한다.
민주주의와 군 기강은 대립하지 않아
우리 군도 이러한 원칙에 발맞추고 있다. 국방부는 헌법 가치와 민주주의 교육을 군 정신전력교육의 핵심 축으로 삼는다. 육·해·공군과 해병대는 장병 대상으로 헌법 가치와 민주주의 등을 주제로 한 교육을 강화하고 있다.
이러한 교육은 장병들의 전투력 향상과 직결된다. 헌법정신과 민주주의 가치의 내재화를 통해 장병들은 스스로 군 복무와 임무에 대한 정당성을 부여하게 된다. 자발적인 책임감과 사명감이 높아지는 선순환의 구조가 형성되고 이는 위기 상황에서 조직의 결속력으로 발현된다.
민주군대가 기강 없는 군대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민주주의와 군 기강은 대립이 아닌 상호 보완의 관계다. 전투 상황에서는 명확한 지휘체계와 상명하복이 여전히 절대적 가치를 지닌다. 전시에는 확고한 지휘체계 아래 하나로 뭉쳐 움직인다. 하지만 평시 합리적인 의견 개진과 토론, 인권 존중, 책임 있는 리더십을 바탕으로 한 조직 운영은 ‘잠재적 전투력’을 높인다. 현대 민주군대가 강한 전투력을 발휘하는 이유다.
전문가들은 미래 전장에서 민주주의의 중요성이 더욱 커질 것으로 전망한다. AI와 무인체계가 전투를 수행하더라도 이를 운용하고 최종 결정을 내리는 것은 결국 사람이다. 무엇을 위해 싸우는지에 대한 신념과 헌법적 가치에 대한 공감이 없다면 첨단무기의 효율성을 최대로 끌어내는 데 한계가 있다.
최기일 상지대 군사학과 교수는 “문민통제를 확립하는 것은 우리 민주주의 사회에 가장 적합한 방향이자 국가 체제와 국방력을 완성하는 궁극적인 목표가 될 것”이라며 “전쟁 양상이나 사회적 흐름 측면에서도 제복 입은 민주시민 개념이 강조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민주적 통제로 장기적 경쟁력 확보 가능
20세기 이후 주요 민주주의 국가들은 문민통제와 군의 정치적 중립을 제도화하면서도 체계 최고 수준의 군사력을 유지해 왔다. 미국과 영국, 프랑스 등은 제2차 세계대전과 냉전 시기를 거치며 민주적 통제와 첨단 군사력을 함께 발전시켰다. 군은 정치에서 독립된 전문 조직으로 자리 잡으면서 국민의 신뢰를 바탕으로 안정적인 국방 정책을 이어 왔다. 이 흐름은 장기적인 국방 정책의 원칙으로 작용했다.
세계 최강의 군사력을 유지하고 있는 미국은 문민통제를 국가 운영의 핵심 원칙으로 삼고 있는 대표적 국가다. 미 헌법은 대통령을 군 통수권자로 규정하고 있다. 의회는 국방예산을 심의·의결하고 관련 입법과 감독을 통해 군을 견제한다. 현역 군인의 정치활동도 엄격히 제한된다. 군이 특정 정파의 이해관계가 아니라 헌법과 국가를 위해 존재해야 한다는 원칙이 제도 전반에 반영돼 있다.
독일 연방군은 제2차 세계대전의 경험을 반성하고 민주주의에 기반한 군을 만들기 위해 ‘내적 지휘’라는 군 운영 철학을 확립했다. 핵심은 군인을 명령에만 복종하는 존재가 아니라 민주주의 시민으로 바라보는 ‘제복 입은 시민’ 개념이다. 독일 연방군은 장병들에게 군사훈련과 함께 헌법 가치와 민주주의, 기본권에 대한 교육을 실시한다. 특히 독일 장병들은 상관의 명령이라도 범죄를 구성하거나 헌법과 법률에 반하는 경우에는 이를 따르지 말아야 한다고 교육받는다. 맹목적인 복종이 아니라 헌법에 대한 충성을 군인의 기본 의무로 보는 것이다.
민주주의의 ‘강력한 회복탄력성’ 국가 역량 집중화 가능
최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유럽의 민주주의 기반의 안보위기에 대해 우려하는 시각도 많다. 하지만 이러한 우려는 민주주의 체제의 ‘강력한 회복탄력성’을 간과한 시각이다. 민주주의 국가들은 전쟁, 또는 안보위기라는 확실한 위협에 직면하면 사회적 합의와 정통성을 바탕으로 국가 역량을 집중시키는 폭발적인 동원력을 발휘한다.
민주국가들의 투명한 제도, 낮은 부패율 등 높은 수준으로 구축한 ‘사회적 신뢰’도 빠른 국방력 회복을 가능하게 하는 요소다. 여기에 ‘자유와 민주주의’라는 가치 공유는 안보위기 시 장비 표준화와 공동 도입, 집단 방위 등을 통해 국방력 복구를 가속화하는 기반이 된다.
권위주의 국가들도 단기간 군사력을 확장한 사례는 많다. 하지만 이 같은 시도는 대부분 강력한 중앙집권적 권력을 바탕으로 이뤄진다. 투명하지 못한 제도는 대부분 부작용으로 이어진다. 정치 권력과 군이 밀접하게 결합되는 경우가 많아 정치 개입과 정보 왜곡, 조직 경직성 등이 나타날 가능성도 크다. 이는 장기적으로 조직의 유연성과 자율적인 문제 해결 능력 저해로 연결된다.
미래 전장의 전력 우열은 단순한 무기 보유량보다 첨단기술 활용 능력과 조직의 적응력, 연합작전 수행 능력에 의해 좌우될 가능성이 크다. 국민 신뢰를 기반으로 하는 군이 장기적으로 권위주의 체제의 군에 비해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고 자신하는 이유다. 박성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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