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종교와삶

나약함을 인정하는 자의 강인함

입력 2026. 06. 16   16:32
업데이트 2026. 06. 16   1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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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 생활을 하다 보면 문득 마음이 헛헛해지는 순간이 찾아올 수 있다. 쳇바퀴 돌듯이 반복되는 일과에 지칠 때, 누군가와의 갈등으로 밤잠을 설칠 때, 혹은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밀려올 때 우리는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진다. “지금 제대로 살고 있는가?” “왜 마음이 이토록 쉽게 흔들릴까?” 그럴 때 우리에게는 흔들리지 않고 마음의 중심을 단단히 붙잡는 것만큼 중요한 임무는 없다. 

우리는 누구나 조직에서 살아남기 위해 자신만의 무기를 만들며 살아간다. 군인으로서 강인함, 어떤 상황에서도 임무를 완수해 내는 완벽함 등이 바로 그것이다. 정신분석학자 카를 융은 인간이 외부세계에 적응하고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쓰는 사회적 가면을 ‘페르소나’라고 불렀다. 우리는 이 가면을 쓰고 성실하게 성과를 내며 ‘나는 일을 잘 처리하는 유능한 사람’이라는 자부심을 원동력 삼아 힘차게 달려 나간다.

하지만 감당하기 힘든 외로움과 막중한 스트레스가 밀려올 때 철통같던 마음의 방벽에 예기치 못한 균열이 생긴다. 부대원들 앞에서는 언제나 완벽하고 굳건한 모습을 보여 왔는데 홀로 남겨진 시간엔 남모를 불안감과 외로움, 상처와 분노가 주체할 수 없이 툭 튀어나오기 때문이다. 융은 이를 두고 우리가 밝은 가면을 쓰기 위해 마음 깊은 창고에 억압해 둔 내면의 어두운 상처와 취약함, 즉 ‘그림자’가 불꽃을 피워 올리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자신의 의지와 통제력만으로는 부대 환경도, 인간관계도, 인생도 완벽하게 좌지우지할 수 없다는 무력감과 마주하는 순간이다.

많이 이가 이 단계에서 깊은 허무함이나 정체기를 겪는다. 지금까지 옳다고 믿어 온 방식이 더 이상 통하지 않아서다. 그러나 이 고통은 삶이 무너지는 징후가 아니라 내 고집을 조금 내려놓고 내면의 솔직한 목소리에 귀 기울이라는 마음의 절박한 신호다. 위기를 돌파하는 유일한 열쇠는 역설적이게도 ‘내가 완벽하지 않다’는 것을 솔직하게 인정하는 것이다.

이때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나를 가만히 돌아보는 정돈의 시간이다. 오늘 부하의 실수에 화가 치밀었다면 잠시 멈추고 자문해 보라. “왜 그리 화가 났는가? 그의 실수 때문인가, 통제하지 못한다는 강박인가? 상급자에게 무능해 보일까 봐 두려웠던 건가?”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 불안감이 올라오는구나, 인정받지 못할까 봐 두려워하는 마음이 있구나’ 하고 깨닫는 게 성찰이다. 그런 연약함을 인정하고 만일 신앙이 있다면 신앙의 대상을 향해 기도드린다. 이렇게 내 마음의 중심을 가만히 응시할 때 우리는 어떤 상황에도 흔들리지 않는 진짜 평화를 얻게 된다.

이 내면 성찰의 종착지는 혼자 마음이 편해지는 개인적인 만족이 아니다. 내 안의 못나고 취약한 상처까지 따뜻하게 품어 본 사람만이 곁에 있는 전우들의 실수와 나약함도 비난하지 않고 그대로 안아 줄 수 있는 넉넉한 품을 갖게 된다.

결국 내면을 향한 깊은 성찰은 ‘나’라는 좁은 울타리를 허물고 나와 곁의 전우들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조직에 헌신하게 만드는 진정한 군인정신의 출발점이 된다. 오늘 하루 일과를 마치고 고요한 침상에서 잠시 계급장과 직책이라는 사회적 가면을 내려놓고 마음의 문을 가만히 두드려 보자. 그 고요한 침묵 속에서 우리는 이전보다 훨씬더 단단하고 깊어진 진짜 나를 마주하게 될 것이다.

백명규 소령 해군본부 목사
백명규 소령 해군본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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