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謝過)를 제대로 발음하려면 첫음절인 ‘사’를 길게 발음해야 한다. [사:과]로 말이다(먹는 사과 ‘沙果’는 [사과]로 발음한다).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를 비는 일인 사과는 정확하게 발음하기도 실제로 행하기도 쉽지 않다.
갈등이나 협상 상황에서 신뢰가 깨진 이후 서로 신뢰를 회복하기 위한 사과에는 다음과 같은 핵심 요소가 있다. 첫째 상대 심정에 대한 공감이 우선돼야 한다. 상대가 겪은 고통을 이해하고, 미안함을 분명히 드러내야 한다. 둘째, 책임 또는 잘못을 명확하게 인정하는 단계가 필요하다. 변명 없이 잘못임을 받아들이는 내용이 상대에게 잘 전달돼야 한다. 셋째, 구체적인 보상으로 손실을 회복하겠다는 의지도 포함해야 한다. 넷째, 같은 문제가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제도나 행동을 바꾸겠다는 약속도 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관계 회복을 진심으로 바라며 용서를 요청할 수 있어야 한다. 사과가 제 기능을 하려면 이 요소들이 구조적으로 모두 결합돼야 한다. 순서 또한 지켜져야 설득력이 커진다. ‘공감-책임-보상-재발 방지-용서 요청’ 가운데 어느 하나라도 허술하게 다뤄진다면 그 사과는 빛을 잃는다.
일상에서 실패하는 사과도 위의 틀로 살펴보면 그 이유가 명확하다. 흔히 잘못의 인정은 짧고, 설명은 길며, 사과하는 이의 후회보다 억울함이 먼저 나온다. 피해자의 심정을 이해하는 척하다 자기방어를 앞세운다. 그러니 듣는 사람은 사과를 받는 대신 해명을 견뎌야 한다. 사과를 통해 위로인 척 압박하거나 상대로 하여금 ‘너의 상처보다 나의 불편함이 더 중요해서 하는 것’이라는 것을 너무도 알아채게 하는 ‘나쁜 사과’도 넘쳐난다.
‘나쁜 사과’의 구체적인 예를 짚어본다. 첫째, 변명이 먼저 나오는 사과다. “그랬다면 미안한데”와 같이 상대의 상처를 이해하기보다 가정하며 ‘미안하다’는 말을 상투적으로 뱉는 것, 이어서 곧바로 사정 설명을 붙이는 사과는 인정이 아니라 협상처럼 들린다.
둘째, 의도를 앞세우는 사과다. “그러려던 건 아니야”라는 말은 내 의도를 해명할 수는 있어도 이미 발생한 상처의 결과를 지우지는 못한다. ‘의도’란 행동한 자의 몫이지 상대가 꼭 헤아려야 할 의무 사항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무슨 뜻이었는지가 아니라 실제로 무엇이 상대에게 닿았는가이다.
셋째, 빨리 끝내려는 사과다. “알았어, 미안해. 됐지?”라는 말에는 관계를 회복하려는 마음보다 불편한 상황을 종료하려는 조급함이 담긴다. 이런 사과를 들은 사람은 이해받았다고 느끼기보다 ‘정리당했다’고 느낀다.
사과의 내용만큼이나 말의 순서, 그 구조가 중요하다. 설명을 먼저 하고 미안하다고 이야기하는 경우는 대개 실패한다. 설명이 앞서면 상대는 내 말을 이해하기 전에 이미 변명으로 듣게 된다. 더 나은 순서는 분명하다. 앞서 설명했듯 상대가 나의 잘못으로 갖게 된 감정을 이해하면서 책임을 인정하고, 어떻게 바로잡을지 말하는 것이다. 친밀하다고 여기는 사이일수록 언어적 표현을 구조적으로 잘 갖춰 사과해야 한다. “내 맘 알지?” 같은 말로 가볍게 넘기거나 애매한 비언어적 표현으로 연기하려 하지 말자. 사과는 순간적인 감정을 다독이는 정도의 말이 아니다.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구조적 완성도를 갖춰 진심을 다해 전해야 하는 무거운 책임을 지닌 말이다.
우리는 누구나 잘못을 저지른다. 결코 매끄럽게만 살지는 못한다. 마찰을 일으키며 저항을 만들고 그 과정에서 서로를 향해 제대로 사과하려 진심으로 애쓰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소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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