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성수
[정덕현의 페르소나]
‘와일드 씽’으로 또다시 틀을 깨고 나온 박지현의 매력
날카로운 얼굴선 서늘한 이미지에 걸맞은 얄미운 악역으로 대중에 눈도장
깊이 있는 워로맨스 ‘은중과 상연’ 거침없는 욕망 드러낸 ‘히든페이스’ 거쳐
뻔뻔하고 ‘킹받는’ 코미디 도전…무거움·가벼움 자유자재로 오가며 성장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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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은 종종 배우를 하나의 고정된 틀 안에 가두려는 경향이 있다. 특히 여배우의 경우 선한 이미지와 순수함이 당연히 고수해야 할 첫인상이 돼야 한다고 여겨지곤 한다. 하지만 이러한 틀에서 완전히 비껴감으로써 독보적인 자기만의 색깔로 비교적 짧은 기간에 급성장한 배우가 있다. 바로 박지현이다.
영화 ‘곤지암’으로 대중에게 얼굴을 알렸지만 본격적으로 박지현이 주목받은 작품은 드라마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의 이정경이라는 재벌 3세 캐릭터를 통해서였다. 남녀 주인공의 사랑에 끼어들고 방해하는 전형적인 악역이었지만 박지현은 이 평면적인 인물에 입체감을 부여했다. 얄미운 악역이지만 왜 그런 행동을 하게 됐는가에 대한 설득력 있는 연기를 펼친 것이다. 박지현의 악역 연기가 돋보였던 건 날카로운 얼굴선이 만들어내는 서늘한 이미지와 더불어 그 인물이 가진 욕망을 공감 가게 해준 연기력을 통해서였다. 아닌 척해도 실상 누구나 가진 질투나 시기의 마음을 숨기기보다는 있는 그대로 드러낸 것이다.
이후 박지현은 선한 캐릭터보다는 ‘얄미운 악역’이지만 이해가 되는 캐릭터를 주로 맡아 연기했다. ‘유미의 세포들’에서 구웅을 짝사랑하는 서새이 역할이 그랬고, ‘재벌집 막내아들’에서 순양가의 맏며느리인 모현민이라는 캐릭터가 그랬다. 하지만 이렇듯 대중에 의해 프레임이 굳어지는 듯 보였던 박지현은 그 안에 매몰되지 않고 더 강한 캐릭터를 통해 정면 돌파하는 과감함을 선보였다.
바로 ‘히든페이스’라는 에로틱 스릴러 영화를 통해서였다. 이 작품에서 박지현은 여배우에게는 부담일 수 있는 노출 연기를 피하지 않고 소화해 내면서 들끓는 욕망을 거침없이 꺼내놓았다. 자신을 프레임에 가둔 그 ‘얄미운’ 이미지를 극단까지 밀어붙임으로써 오히려 새로운 연기 변신의 발판을 만든 것이다. 수위 높은 베드신까지 소화해 낸 박지현은 그해 청룡영화상 시상식에서 여우조연상을 거머쥐며 연기력을 인정받았다.
하지만 이러한 섹시한 이미지 역시 자칫 굳어져 버린다면 여배우에게는 치명적인 결과가 될 것이었다. ‘히든페이스’로 대중에게 신선한 자극과 함께 확실한 배우로서의 존재감을 세운 박지현은 이제 보다 깊이 있는 연기의 승부수를 던졌다. 넷플릭스 시리즈 ‘은중과 상연’에서 상연 역할을 맡아 은중(김고은)과 둘도 없는 친구면서 동시에 질투하고 시기하는 역할을 연기한 것이다.
이 역할이 박지현에게 승부수가 된 건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그 첫째는 상연이라는 인물의 청춘부터 중년을 거쳐 죽음에 이르는 인생 전체의 성장 과정을 연기했다는 것이고, 둘째는 이 과정을 통해 박지현 배우 특유의 ‘얄미운 악역’ 이미지를 작품 안에서 꺼내놓고 누구나 그 욕망을 공감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며, 셋째는 은중과의 갈등과 화해 과정을 통해 멜로드라마에서 흔히 클리셰로 소비되던 ‘여적여(여성의 적은 여성)’ 프레임을 깨는 여성 연대를 보여줬다는 점이다. 무엇보다 ‘은중과 상연’은 김고은과 박지현 투톱으로 가는 작품으로 이미 대세 배우로 자리 잡고 있던 김고은과 대등하게 박지현의 존재감을 확실히 드러낸 작품이었다는 점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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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의 힘이 갈등으로부터 나온다는 걸 염두에 둔다면 사실상 ‘은중과 상연’의 추진력은 박지현이 만들어낸 갈등 요소로부터 비롯됐다는 걸 부정하기 어렵다. 그만큼 이 작품에서 박지현이 보여준 연기력은 앞으로 그녀가 펼쳐나갈 잠재력이 얼마나 큰가를 증명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박지현의 거침없는 변신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영화 ‘동화지만 청불입니다’에서는 ‘히든페이스’에서 보여줬던 에로틱한 이미지를 뒤틀어 로맨틱 코미디로 바꿔 놓는 변신을 선보였다. 이것은 아무래도 ‘히든페이스’의 강한 이미지가 굳어지는 것을 피하려는 연기의 포석처럼 보인다. 어쨌든 ‘은중과 상연’을 통한 깊이 있는 연기와 ‘동화지만 청불입니다’를 통한 가볍고 러블리한 이미지를 동시에 펼쳐놓은 박지현은 자칫 굳어질 수도 있었던 ‘히든페이스’의 강렬한 이미지를 분산시키며 그녀만의 다채로운 스펙트럼을 만들었다.
이제 박지현은 거침없는 행보를 시작한 듯 보인다. 그녀가 최근 참여한 ‘와일드 씽’은 이제 어떤 강박도 없는 자유자재의 날개를 얻은 박지현의 여유로워진 연기의 행보가 엿보인다. 1990년대를 배경으로 트라이앵글이라는 삼인조 댄스그룹으로 활동하며 큰 인기를 얻었지만 표절 시비로 해체되며 각자의 길을 걷던 이들이 지역축제 무대에 함께 설 기회를 얻게 되면서 벌어지는 해프닝을 다룬 코미디 영화다. 이 작품에서 강동원, 엄태구와 함께 삼인조 댄스그룹의 한 꼭짓점을 맡아 메인보컬 변도미 역할을 소화한 박지현은 뻔뻔하면서도 우아한 모습으로 관객을 무장해제시키는 연기를 선보인다. 무엇보다 1990년대 댄스그룹을 완벽히 오마주한 ‘킹받는 코믹 연기’가 압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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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현은 이제 그 어떤 이미지에도 굳어지지 않고 계속 흐르며 새로운 변주를 멈추지 않는 ‘예측 불가능한 생명력’을 지닌 배우로 성장했다. 얄미운 악역 이미지는 우아하게 변했다가 섹시한 도발을 하더니 묵직한 인생 연기의 무거움과 코믹한 웃음을 주는 가벼움을 자유자재로 넘나든다. 가장 완벽해 보이는 순간에도 틈을 내보이고 망가짐을 꺼리지 않는 유연함을 선보인다. 이러한 변신이 설득력을 갖고 매력적으로 느껴지게 된 건 현 시대의 대중이 가진 욕망에 대한 정서적 변화를 말해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이제 대중은 무해하고 착하기만 한 평면적 인물에 더 이상 매력을 느끼지 않는다. 대신 자신의 욕망에 솔직하며 그 밑바닥까지 기꺼이 꺼내놓고 공감하게 만드는 인물에 더 매력을 느낀다. 욕망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박지현의 파격적인 도발이 사회적 금기에 억압된 우리들의 욕망을 대리해방시켜주는 이유다. 물론 지켜야 할 선은 분명 존재하지만 자신의 내면에 존재하는 다양한 욕망을 인정하는 솔직한 태도는 어쩌면 우리를 성장시킬 수 있는 발판이 된다는 걸 박지현 배우는 자신의 페르소나를 통해 보여주고 있다.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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