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수열
국가보훈부 공동연재 제대군인 취·창업 성공기 - ‘내 일(Job) 출근합니다’
32. 오승범 예비역 육군중사
국민 지키던 사명감, 환자 돌보는 책임감으로…
14년 군 생활 마친 뒤 마주한 사회의 벽 높았지만
제대군인지원센터서 간호조무사라는 새 꿈 찾아
1520시간의 교육과정, 군에서 배운 끈기가 버팀목
전역 결심했다면 방향 설정하고 차근차근 준비를
‘송이로’라는 도로명에 어울리게 푸른 소나무 동산에 우뚝 솟은 서울 송파구 국립경찰병원을 찾았다. ‘성심진료 친절봉사’라는 슬로건이 걸려 있는 접수대 앞에서 만난 오늘의 주인공 오승범(예비역 육군중사) 씨의 얼굴은 환한 로비만큼이나 밝은 미소와 긍정적인 에너지가 넘쳤다. 그는 넉넉지 못한 가정형편을 탓하지 않고 스스로 군 장학생으로 대학과정을 마쳤고, 14년간 군복을 입고 보급담당관 임무를 수행했다. 전역 후 퇴직금은 부모님께 모두 드리고, 본인은 적성에 맞는 일자리를 찾는 동안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유지했다. 3개월 임금체불이라는 아픈 경험까지 극복한 끝에 오씨는 당당히 다시 한번 간호조무사로서 국가공무원이 됐다. 1988년생인 오씨가 경찰병원에서 제2의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남다른 이야기를 들어봤다. 정리=맹수열 기자/사진·자료=국가보훈부 제공
여유롭지 못한 가정형편을 극복하기 위한 선택
“인생에서 가장 큰 영향을 준 사람이 누구인가?”라고 물으니 주저 없이 “오직 한 분, 어머니”라고 답했다. 경기 이천시에서 미용실을 운영하신 어머니는 집안 대소사를 직접 챙기면서 3남매의 뒷바라지에 한평생을 희생했다고 한다. 오씨는 그런 어머니의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며 늘 자랑스러운 아들이 되고 싶다는 마음을 가졌다. 또 하루빨리 자립해 가족의 든든한 버팀목이자 힘이 되겠다는 생각을 가슴 깊이 새겼다.
“가정의 경제적 부담을 덜고, 미래를 주도적으로 설계할 수 있었던 군인의 길은 저를 위해 평생을 바치신 어머니께 보답하고 싶은 마음에서 시작한 선택이었습니다.”
그는 넉넉한 가정형편은 아니었지만 항상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했고 매사에 적극적인 성격 덕분에 학창 시절 반장을 도맡아 하며 리더십을 키웠다. 하지만 그런 오씨도 경제적인 문제로 고충이 많았다고 한다. 특히 고등학교 시절은 고민을 거듭했던 시기였다. 여러 어려움에도 그는 진학담당 선생님의 조언과 도움을 받으며 육군과 협약관계에 있는 대덕대 군 장학생으로 선발돼 졸업과 동시에 육군 병참병과 부사관으로 임관했다.
사람을 치유하겠다는 꿈의 씨앗을 품다
오씨는 일반 보급부대가 아닌 전방 일반전초(GOP) 부대 군수과 보급관으로 배치됐다. 부대의 핵심 자산인 물자·인원 관리를 책임지며 살림살이를 맡은 것. 그런데 어느 날 GOP 순찰 중 일어난 안전사고가 그의 인생 나침반 방향을 바꾸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부대원 한 명이 손바닥이 심하게 찢어지는 큰 부상을 입었는데, 긴박한 상황에서 군의관과 의무병들이 침착하고 신속하게 응급처치하며 환자를 안심시키는 모습을 봤습니다. 누군가의 고통을 치료하고 생명을 보호하는 숭고한 모습이 또 다른 깊은 울림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때 마음속에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나도 저렇게 사람을 살리고 치유하는 길을 걷고 싶다는 꿈의 씨앗을 품게 됐습니다.”
오씨는 ‘군’이라는 안정적인 울타리를 벗어나 더 넓은 사회에서 제2의 인생을 살기 위해 14년 만에 과감히 전역을 결심했다. 처음엔 쉽지 않았다. “전역 후 맞닥뜨린 사회의 벽은 생각보다 높았습니다. 새로운 길을 찾기 위해 물 트레일러 청소 아르바이트부터 기숙학원 관리까지 닥치는 대로 부딪쳐 봤죠. 하지만 군 생활만 해 온 제가 직업을 바꾸는 것은 결코 쉽지 않았습니다.”
GOP에서의 다짐을 다시 떠올리며
아르바이트 중 3개월에 걸친 임금체불을 겪으며 방황하던 시기에 터닝포인트가 된 곳은 바로 제대군인지원센터였다. 센터의 다양한 취업지원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동안 오씨는 단순히 일자리를 구하는 것을 넘어 자신의 성향과 적성이 무엇인지 심층적으로 분석하고 진로를 체계적으로 탐색할 수 있었다. 담당 상담사의 진심 어린 조언과 격려로 다시 일어설 용기도 얻었다. 버스운전 자격증, 지게차 운전면허, 경비지도사 등 새로운 도전을 위해 센터의 지원을 받으며 다방면의 자격증 취득 프로그램에 도전, 끊임없이 역량을 키워 나갔다. 다방면으로 진로를 탐색하면서 운전직·방호직 공무원·청원경찰 등 다양한 공직의 문을 두드리며 수없이 자기소개서를 고쳤다. 그러다가 GOP 순찰현장에서 다짐했던 간호 분야로의 꿈을 펼치고자 뒤늦게나마 간호조무학원에 등록했다.
“간호조무사가 되기 위한 과정은 결코 녹록지 않았습니다. 필기 740시간, 실습 780시간 등 총 1520시간에 달하는 대장정이었죠. 낮에는 병원 실습을 하고 밤에는 학원 수업을 듣는 강행군이 이어졌습니다.”
생소한 의학용어를 외우는 것도, 낯선 의료도구를 다루는 실습도 모두 포기하고 싶을 만큼 육체적·정신적으로 버거운 과정이었다. 하지만 14년 군 생활은 그가 힘든 고비를 넘어설 수 있는 든든한 배경이 됐다.
의료인으로 두 번째 공무원의 삶 시작
간호조무사 자격증을 준비할 때 처음 응시하고자 했던 병원은 국립공주병원이었지만 시기 문제로 포기했다. 이후 자격증을 취득할 때 마침 경찰병원 간호조무서기보(9급 공무원) 채용공고가 났다. 오씨는 국가보훈부의 보훈특별고용 추천을 받아 입사지원을 하고 최종 면접을 거쳐 당당히 합격했다.
“임상 경력은 부족했지만 군 생활 14년 동안 갈고닦은 인원·물자 관리 경험과 학원 실습으로 다진 실력을 자기소개서에 진정성 있게 녹여 냈습니다. 면접 준비 때는 병원 홈페이지를 샅샅이 분석했죠. 예상 질의응답을 모두 손으로 직접 쓰고 입으로 외우며 제 것으로 만들었습니다.”
최종 합격통지를 받았을 때 그는 전역 후 보낸 2년이 결코 허비된 게 아니라 나에게 맞는 또 다른 길을 찾기 위한 값진 거름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한다.
현재 오씨는 외래 비뇨의학과에서 환자들의 간호지원과 진료 보조업무를 맡고 있다. 처음엔 소독법, 내시경 준비, 생소한 전자의무기록(EMR) 처방전 확인 등 배울 것이 많아 긴장했지만, 동료들이 자기 일처럼 도와준 덕분에 금방 안착했다며 감사함을 전했다.
보건의료 전문가를 향한 쉼 없는 배움의 길
군 시절 보급관으로서 1종부터 9종까지 다양한 군수물자를 총괄관리했던 덕분에 병원의 수많은 의무 관련 물자·장비들을 이해하는 데 어려움이 없었다. 하지만 간호조무학원 교육만으로는 의료현장에서 배워야 할 전문지식이 무궁무진함을 체감하고 있다고 한다.
“현재 하는 일에 무한한 자부심과 책임감을 갖고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전문지식을 제대로 갖춰야 환자에게 더 질 높은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고, 나아가 경찰병원의 발전에 기여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오씨는 사이버대 보건의료행정학과에 편입, 일과 학업을 병행 중이다. 주경야독이 쉽지만은 않지만 병원 행정과 의료지식을 다지기 위해 열정을 불태우고 있다. 여기에는 병원 의료진의 도움도 한몫하고 있다. 오씨는 모르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동료들에게 묻고 숙지하려 노력 중이다.
“모르면서 아는 척하는 것이야말로 동료와 환자에게 피해를 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사소한 것도 동료들에게 묻곤 합니다.”
그는 끊임없는 배움을 통해 도전할 수 있는 의료 분야의 영역을 넓히고, 제대군인 출신 보건의료 전문가로서 사회에 지속적으로 기여하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새출발을 준비하는 제대군인에게도 당부의 말을 남겼다.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막연한 생각으로 준비 없이 사회에 나오면 큰 장벽에 부딪히기 쉽습니다. 전역을 결심했다면 복무 중일 때 어떤 분야로 진출할지 명확하게 방향을 설정하고 필요한 자격증을 하나하나 취득하시길 권합니다. 그리고 국가의 전문지원 인프라를 적극적으로 노크하시기 바랍니다. 특히 제대군인지원센터의 도움을 받으세요. 저는 전직지원금, 직업교육훈련비 덕분에 경제적 부담을 덜고 간호학원에 다닐 수 있는 소중한 발판을 마련할 수 있었습니다. 철저히 준비하고 국가의 제도를 적극 활용한다면 군에서 다져진 강인한 정신력을 바탕으로 어디서든 반드시 성공하실 수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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