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병영의창

872, 국가는 아직 그들을 잊지 않았다

입력 2026. 06. 05   14:11
업데이트 2026. 06. 05   14:23
0 댓글
육도현 공군상사 국방부조사본부 전사망민원조사단
육도현 공군상사 국방부조사본부 전사망민원조사단



국방부조사본부 전사망민원조사단에서 잊힌 872명의 이름을 다시 찾고 있다. 기록 속에만 머물러 있던 872명의 국군 장병 한 분 한 분의 삶을 현실로 끌어올리고, 그 삶이 마땅히 받아야 했을 예우와 명예를 되돌려드리는 과정이다. 더디고 고되지만, 그 끝에 반드시 의미가 있다는 믿음으로 오늘도 발걸음을 옮긴다. 

우리가 마주한 과제는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의 권고로 시작된 ‘유가족 찾기’로, 50여 년 전 군 복무 중 총기·폭발사고 등으로 사망하신 분들의 유가족을 찾는 일이다. 당시 시대적 한계와 기록 관리 미비로 많은 국군 장병이 순직으로 인정받지 못하거나 정당한 명예회복을 하지 못했다. 나라를 위해 복무하다가 생을 마감하셨음에도 그 사실조차 제대로 기록되지 못한 분들이 있었고, 그 유가족은 오랜 세월 인정받지 못한 슬픔과 억울함을 가슴 깊이 안고 살아오셨을 것이다.

이제 그분들의 이야기를 다시 꺼내고자 한다. 단순히 과거를 들추는 게 아니라 바로잡지 못했던 그 시간을 이제라도 바로 세우는 일이다. 이를 위해 조사단은 전국 곳곳의 유가족 주소지를 직접 찾아다닌다. 하지만 반세기가 훌쩍 넘은 시간의 간극은 결코 쉽게 좁혀지지 않는다. 주소는 바뀌고, 마을은 사라지거나 변했다.

험난한 여정에도 오래된 기록 한 장에 담긴 가족 구성, 혼인 관계 등을 단서 삼아 유가족을 찾아다니고 있다. 기록이 오래된 만큼 누락되거나 불완전한 경우도 많아 직접 주소지를 찾아가 이웃 주민과 대화하고 함께 기억을 더듬어 가며 한 걸음씩 유가족 곁으로 다가가고 있다.

1955년 9월 24일 강원 인제군에서 순찰 중이던 수색대원 한 분이 땅속에 묻혀 있던 지뢰를 밟아 생을 마감하셨다. 당시 약 3년간 군 복무 중이던 이등중사였고, 세 살배기 아들을 둔 아버지였다. 오랜 추적 끝에 그 아들을 찾았다. 아버지의 기억조차 희미해질 만큼 긴 세월이 흘렀지만, 국방부가 먼저 찾아와 당시 일을 설명하고 명예회복 절차를 안내하자 그는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그리고 조용히 한마디를 남겼다.

“국가가 아직 아버지를 잊지 않았네요.” 오랜 시간 가슴 깊이 묻어 뒀던 슬픔과 억울함이 비로소 국가의 응답을 받은 순간이었다.

누군가를 진정으로 기억한다는 것은 그 사람의 삶을 인정하고, 끝내 그 책임을 외면하지 않았음을 확인하는 과정이다. 그 기억이 공적인 기록으로 남을 때 비로소 한 사람의 삶은 역사 속에서 제자리를 찾는다.

국방부조사본부 전사망민원조사단은 오늘도 오래된 기록을 다시 펼치고, 삶의 흔적을 따라 걷는다. 앞으로도 그 이름들이 국가의 기록으로 온전히 돌아올 수 있도록 우리는 멈추지 않는다.

< 저작권자 ⓒ 국방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댓글 0

오늘의 뉴스

Hot Photo News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