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보지만, 그래서 더 특별할 때가 있다. 소낙비가 내리던 지난해 어느 날 오후, 여느 때와 같이 전방을 주시하고 있었다. 평일이라면 바삐 달리는 자동차와 행인들로 바짝 긴장했겠지만 우중의 주말인 덕에 단비 같은 여유를 누릴 수 있었다. 정면을 향한 시야에는 언제나 콩밭이 있었다. 여름·가을·겨울, 계절에 따라 달라지는 복장. 그날은 황금색 물결이 일고 있었다.
소낙비는 남동풍을 동반했다. 무섭게 퍼붓더니 아스팔트로 포장된 도로에도 빗물이 고였다. 초소보다 큰 차양 아래서 풍경을 물끄러미 지켜봤다. 적란운이 낮게 부유하며 성을 부렸고, 콩밭은 못 이기겠다는 듯 고개를 수그렸다. 내가 주목한 것은 구름도, 콩밭도 아니었다. 아스팔트 위에 생긴 도화지, 도화지를 신나게 두드리는 물방울. 마치 2D 셀 애니메이션 같았다.
수면과 물방울이 만나 점을 찍고, 또 찍었다. 시차를 가늠할 수 없는 무수한 파문이 시선을 희롱했다. 아스팔트 도로에서 특유의 감성으로 유명한 애니메이션을 떠올렸다. 자연이 만든 한바탕 춤사위는 거장의 예술작품을 방불케 했다. 참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자연이 선물한 영감을 훑었다.
현재 공군 군사경찰로 근무 중이다. 더 세분하면 군사경찰반의 출입통제병이다. 주말과 공휴일도 낮과 밤이 없다. 우리는 하루 한시도 근무지를 비울 수 없다. 자리를 비우면 기지 경계의 실패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365일 중 365일, 밤낮을 바꿔 가며 일한다.
일과를 마치고 숙면하는 타 특기 병사들이 부럽지 않다면 거짓말일 터. 가끔 군사경찰이 된 것을 후회하기도 했다. 지금도 반복되는 근무와 교육, 훈련으로 지칠 때면 먼 산을 쳐다보곤 한다. 사실 산은 보이지 않고 아파트만 예닐곱 채 눈에 띄일 뿐이나 기분을 환기하는 데는 제격이다.
우리는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국방의 의무를 다하러 이곳에 왔다. 혹자는 청춘을 버리러 왔다고 불평할 것이다. 불만까진 아니더라도 사람인 이상 아쉬움은 어쩌지 못한다. 기저에 버려지는 시간이라고 단정 지어서가 아닐까. 생각의 힘은 무섭다. 생각과 감정은 한 몸이어서 자꾸 부정적 생각을 하다 보면 감정도 상하기 마련이다.
나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뒷걸음질, 퇴보’. 적어도 개인의 입장에선 그렇다고 확신했다. 군 생활 중 얻을 건 소정의 돈과 제한된 자기계발 시간뿐이라고. 이제는 안다. 물러서야 보이는 것도 있음을 말이다. 도로 위에 서 있었다면 단지 소낙비를 피하기 바빴을 것이다. 한 발 떨어져 봤기에 볼 수 있었다.
세상에서 제일 값진 것을 배웠다. 전진만이 답인 줄 알았던 긴 레이스에서 콩밭을 보는 법을. ‘뒷걸음질, 비로소 보이는 것’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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