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군사 스파이, 그들이 온다

국가 중요 산업기술 품고 국경 넘는 ‘산업 스파이’…경제 흔들고 안보 위협할 핵심 무기가 샌다

입력 2026. 06. 05   17:14
업데이트 2026. 06. 07   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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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이, 그들이 온다 - 산업기술 유출은 국가안보 문제

중, 기술 유출 ‘생존 위협 행위’로 규정
미, 국가안보 문제로 규정하고 강력 대응
한, 단순 경제범죄 치부…피해 대비 형량 낮아 
기술 경쟁력 중요도·파급력 고려 처벌 강화 필요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미·중의 치열한 기술 정보전

최근 중국 정보기관인 국가안전부와 미국 상원이 거의 같은 시기에 각각 기술 유출 사건과 산업 스파이 실태를 공개했다. 이는 미국과 중국이 기술 유출 문제를 국가안보의 핵심 과제로 인식하고 있음을 명확히 보여주는 사례다.

지난 4월 23일 중국 국가안전부는 공식 위챗 계정을 통해 희토류와 반도체 기술 유출 사건을 공개했다. 중국이 전 세계 공급망을 장악하고 있는 희토류 분야에서 외국 비철금속 기업이 중국 기업의 부사장을 뇌물로 포섭해 비축 품목·수량·가격 등 국가기밀 7건을 유출했다며 희토류가 첨단 제조업·방산과 직결된 전략 자원임을 강조했다. 반도체 기업 엔지니어가 퇴사 후 비밀 유지 의무를 위반하고 공정 파라미터와 설계 도면 등 핵심 생산 정보를 해외 조직에 넘긴 사건도 소개하고, 인력 관리 강화와 대외 협력·외주·합작 과정에서 외국 세력의 회유·금전 유혹을 차단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국가안전부는 이를 ‘국가 생존 위협 행위’로 규정하며, 국민에게 ‘기술 유출은 곧 국가안보의 붕괴’라는 강력한 메시지를 던졌다. 앞서 지난 3월 중국 국무원은 ‘산업 공급망 안보 규정’을 제정하기도 했다. 이 규정은 중요 산업에 대해 공급망 안정성 평가와 모니터링을 의무화하고 외국이 공급망을 위협할 경우 보안 조사를 개시할 수 있도록 했다. 또한 중국은 인공지능(AI) 스타트업 창업자의 출국을 금지하는 등 핵심 인재의 해외 유출을 차단하고, 희토류 등 전략 자원의 수출 통제를 강화하면서 기술과 자원을 국가적 무기로 삼으려는 전략을 분명히 하고 있다.

한편 미국 상원은 중국 안전부 발표 하루 전인 4월 22일, ‘중국의 은밀한 미국 혁신 기술 절도 행태’라는 제목의 청문회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상원은 중국의 해외 인재 유치 정책인 천인계획(Thousand Talents Program)을 사실상 기술 탈취 수단으로 규정하고, 중국 유학생들에 대한 관리 필요성도 지적했다. 중국계 구글 엔지니어 린웨이 딩이 2022년 5월부터 1년간 AI 관련 기밀문서 2000쪽 이상을 빼돌린 사건도 공개됐다. 이들 문서에는 구글의 핵심 기술인 TPU(텐서처리장치) 관련 내용도 포함됐다고 한다. 의회 보고서에는 중국 AI 기업 딥시크가 미국 AI 플랫폼을 활용해 모델을 강화했으며, 중국 정부와 데이터를 공유하는 구조라는 경고도 있었다.

미국은 기술 유출을 단순한 경제범죄가 아니라 국가안보를 위협하는 간첩 행위로 규정하고, 유학생 비자 심사 강화, 연구기관·기업의 대외 협력 규제, 중국 기업과의 합작·투자에 대한 안보 심사를 강화하고 있다.


산업 스파이에 대한 인식 전환 필요

미·중 기술 전쟁은 단순한 산업 경쟁을 넘어 정보전과 공급망 전쟁으로 확장되고 있다. 중국은 정보기관인 국가안전부가 직접 나서 산업기술 유출을 ‘국가기밀 침해’로 규정했고, 미국은 의회 청문회를 통해 산업 스파이를 ‘국가안보 위협’으로 다뤘다. 중국은 경각심 제고를 통한 내부 결속과 공급망 통제로 자국 기술을 보호하고, 미국은 기술과 인재 유출 차단 및 유학생 억제를 통해 중국의 확장을 견제하기 위한 제도 마련에 나서고 있다. 중국과 미국의 대응 방식은 다르지만 메시지는 동일하다. 산업기술은 단순한 기업 자산이 아니라 국가의 생존과 직결된 안보 문제라는 것이다. 이는 곧 산업기술을 둘러싼 국가 간 경쟁이 국가안보의 핵심 문제로 다뤄지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반면 우리나라에서는 아직도 산업 스파이 행위를 단순 경제범죄로 보는 인식이 강하다. 2025년 5월, 경찰은 반도체 후공정 핵심 기술인 ‘캐필러리’ 제조 기법을 중국으로 유출한 한국 기업의 중국 공장장을 출국 직전 긴급체포했다. 이 기술은 세계 시장 점유율 70%를 차지한 기술로, 삼성전자와 하이닉스에도 공급되며, ‘국가핵심기술’로 지정된 것이다. 체포 당시에도 이미 비행기에 탑승한 상태에서 항공사와 관계기관의 협조로 항공기의 출발을 늦추면서까지 범인을 체포, 기술 유출 사건 최초의 긴급체포였다며 세간의 관심을 끌기도 했다. 피의자가 서울 강남에 110억 원 규모의 빌딩을 구입한 사실이 알려져 더 주목받기도 했던 사건이다.

그러나 법원의 판결은 국민의 기대와는 크게 달랐다. 1심에서 징역 2년6개월을 선고받았는데, 피해 규모와 국가적 파급력을 고려할 때 지나치게 낮은 형량이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지난 4월 대만 법원이 반도체 기업 TSMC의 2나노 기술을 빼돌린 전직 직원을 국가안전법의 ‘경제간첩죄’를 적용, 징역 10년의 중형을 선고한 것과 비교된다. 수천억 원의 피해가 예상되는 기술을 빼돌리고도 고작 몇 년 형을 살면 된다는 잘못된 인식이 퍼질 수 있는 상황인 것이다.

오늘날의 패권 경쟁은 기술과 공급망을 둘러싼 국가 간 전쟁으로 옮겨가고 있다. 산업기술 유출을 단순 경제범죄로 볼 것인가, 국가안보를 위협하는 간첩 행위로 볼 것인가에 따라 국민의 인식이 달라지고, 법원 양형도 달라질 것이다. 이는 단순히 처벌 수위를 높여 범죄 억지력을 강화할 뿐 아니라 국가 차원에서 기술 보호를 안보 전략의 핵심으로 자리매김하게 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중요 산업기술은 국가기밀 

지난 3월 개정된 형법 간첩죄는 적용 대상을 ‘적국’에서 ‘외국 및 이에 준하는 단체’로 넓혔을 뿐 아니라 간첩 행위를 ‘국가기밀을 탐지·수집·누설·전달·중개’하는 것으로 구체화했다. 이에 따라 산업기술도 국가기밀에 포함되는지가 논란이 되고 있다. 중요 산업기술도 포함한다고 법에 명문화하지 않은 것은 아쉽지만 해석상 국가안보와 경제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산업기술은 당연히 국가기밀로 봐야 한다. 과거 국가기밀은 대부분 군사·외교상 비밀이었으나 최근 국가 경쟁력에서 경제력이 중요시되고 경제력의 근간을 기술이 차지하고 있어 산업기술의 중요성은 급속히 증가하고 있다.

더구나 군사력에서도 핵·미사일·AI 등 첨단 무기체계가 차지하는 비중이 커짐에 따라 기술력은 국가 생존과 직결된 요소가 됐다. 미국의 경제스파이법, 영국의 국가안전법, 중국의 반간첩법 등 주요국에서 특정 기술 유출을 간첩으로 처벌하며 간첩을 색출하는 각국 방첩 기관의 임무에도 산업스파이 색출과 공급망 안전성 확보 등 경제 방첩(Economic Counterintelligence)이 포함된 이유다.

우리 실정법 체계도 이미 이를 반영하고 있다. ‘산업기술보호법’은 ‘국가안보와 국민경제에 중대한 영향을 주는 기술’을 ‘국가핵심기술’로 지정해 국외로 유출되지 않도록 특별히 보호하고 있다. 산업기술이 단순한 기업의 영업비밀이 아니라 국가안보를 위한 전략 자산이라는 것을 법이 인정하는 것이다. 또한 이번 형법 개정의 취지도 고려돼야 한다. 핵심 기술을 빼돌리는 행위를 간첩죄 차원에서 다뤄야 한다는 것이 주요 배경이었기 때문이다. 위협 확대에 따른 현실적 필요성도 절박하다. 기술 경쟁력이 국가안보와 국익에 미치는 영향이 커져 감에 따라 각국은 적극적으로 산업기술 정보수집에 나서고 있고, 이미 정보기관의 중요한 임무가 됐다.

최근 각국에서 발생하고 있는 간첩 사건에서 외국 정보기관이 개입한 산업기술 유출 사건이 늘고 있는 이유다. 물론 모든 산업기술이나 영업비밀 유출을 간첩으로 볼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법이 인정하는 ‘국가핵심기술’이나 이에 준하는 중요 산업기술은 국가기밀로 봐 이를 유출할 경우 간첩죄를 적용해야 한다. 산업기술을 국가기밀로 보는 것은 과도한 확장 해석이 아니라 시대 변화에 따른 자연스러운 법적·안보적 인식 전환이다.


필자 배정석 성균관대학교 국가전략대학원 겸임교수는 국가정보원에서 방첩업무를 담당했으며 현재 국제정보사학회와 한국국가정보학회 정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필자 배정석 성균관대학교 국가전략대학원 겸임교수는 국가정보원에서 방첩업무를 담당했으며 현재 국제정보사학회와 한국국가정보학회 정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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