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역사 중 전쟁이 없던 시기는 270년에 불과하다”는 말처럼 역사는 전쟁의 연속이었다. 그리고 모든 전쟁의 끝은 있지만 참전자에게는 ‘생존과 죽음’이란 결과로 남는다. 우리나라도 76년 전 준비 없이 6·25전쟁을 맞아 13만여 명은 시신조차 수습하지 못했다.
정전 후 산발적인 시도는 있었으나 일개 군 차원의 노력으로 추동력을 유지하지 못했다. 그러던 중 2000년 6·25 50주년 기념사업으로 ‘6·25 전사자 유해발굴사업’이 시작돼 현재는 국방부의 대표 호국보훈사업이 됐다. 또한 원활한 시행을 위해 ‘국방부유해발굴감식단’을 설치했는데, 법적 근거는 ‘6·25 전사자 유해의 발굴 등에 관한 법률’에 두고 있다.
2018년부터 비무장지대로 발굴 범위를 확대했고 2020년 발굴유해 신원확인을 담당하는 ‘신원확인처’를 신편함으로써 감식, 유전자 분석, 유가족 찾기 등의 시너지를 확대할 수 있었다. 이에 매년 20명 이상의 신원확인을 하고 있다.
2000년 사업 시작 후 2025년까지 약 25년간 신원확인은 총 268분으로, 이 중 신원확인처 신편 후 5년(2020~2025년) 간을 놓고 보면 130분이니 매우 고무적인 수치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수치의 이면에는 여러 어려움이 상존해 있다.
6·25전쟁 당시 우리나라는 행정력이 불비해 신원확인에 필요한 병적, 제적을 비롯한 기록들이 미흡하다. 6·25 이후 너무 많은 시간이 흘러 전사자의 유해를 찾기 어렵고, 찾은 유해 또한 대다수 온전한 상태가 아니어서 유전자 추출도 쉽지 않은 실정이다. 유해 소재 제보나 신원확인에 결정적인 이바지를 할 수 있는 6·25세대는 이미 사회 최고령층이 됐다. 개인정보 접근의 민감성 증대, 국민적 관심 및 참여 저조 등 극복하기 어려운 요인도 있다. 이러한 상황으로 볼 때 향후 유해발굴 구수나 신원확인이 크게 증가할 개연성은 적다.
그럼에도 6·25 전사자 유해발굴과 신원확인은 ‘대한민국 헌법정신의 구현’이란 측면에서 유의미하게 지속돼야 한다. 헌법 10조는 ‘국가의 국민 보호책임’을 천명하고 있다. 특히 우리 헌법재판소와 학설은 사람이 사망한 뒤 명예, 유해 처우 등 ‘사후 인격권’을 인정하고 있으며 이는 미수습 전사자라고 예외일 수 없다.
나라를 위해 희생하신 분의 유해를 발견하고 신원을 확인하는 것은 단순히 유골을 찾는 행위를 넘어 한 명의 국민을 살려 내는 ‘복원’과 같은 의미가 있다. 유가족의 ‘행복추구권’과 ‘알권리’를 보장하는 것이다. 전후 참전자 생사조차 알 수 없음으로 인한 심리적 상처를 보듬어 안정과 행복을 찾아 드리고, 유해감식과 유전자 분석 등 과학적 방법을 통한 신원확인으로 참전자 생사를 유가족에게 정중히 알려 드리는 과정이다.
현 세대에는 ‘국가책무 이행’에 대한 강력한 의지의 발로다. 나라를 위해 희생한 이들을 국가가 잊지 않고 찾는 일은 국가정체성 유지를 위한 헌법적 책무이며, 오랜 과거일지라도 ‘국가가 누구를 기억하고, 찾고, 예우하는가’를 보여 주는 증거가 되는 것이다.
올해도 지난달 전국의 6·25 격전지에서 국방부유해발굴감식단과 각 군 장병들에 의해 발굴이 시작됐고, 발굴된 유해의 신원확인이 진행 중이다. 이들은 모두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헌법정신의 구현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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