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기고

개양귀비 핀 언덕에서

입력 2026. 06. 04   15:42
업데이트 2026. 06. 04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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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멀고도 먼 바다를 건너온 꽃들이었다

영국과 벨기에, 룩셈부르크의 청춘들이 모여

설마리 언덕 위 낯선 열정으로 꽃을 피웠다.

노을에 더욱 붉게 물들던 계곡에서는

평온이 깃든 저녁을 마지막으로

밤 지새며 날아든 총탄에 핏빛으로 스며들었다.

사흘 만에 꺾여버린 꽃들의 영혼은

네 개의 돌판에 새겨진 이름들로 남아

오늘도 이 땅의 바람 속에 서 있다.

끝내 지켜내고 싶었던 자유를 위해

끝내 가족에게는 살아 돌아가지 못하고

붉은 꽃으로 다시 피어난 생명들

글로스터 고지 위에서 바라보이던

고향으로 가는 길 작은 언덕에서

잠시 쉬어가듯 하더니 주저앉고 말았다.


『작가노트』

설마리전투(임진강전투)는 1951년 4월 22일부터 25일까지 파주 설마리 일대에서 영국 글로스터대대를 중심으로 한 유엔군이 압도적인 중공군의 공세를 막아 낸 전투다. 끝내 많은 젊은 병사가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했지만, 그들의 희생은 서울 방어를 위한 소중한 시간을 지켜 냈다.

파주 들녘에 피어나는 붉은 개양귀비를 바라보며 전쟁 속에서 스러져 간 젊은 생명들과 오늘의 평화를 함께 떠올리고 싶었다. 개양귀비는 오늘날 영연방국가에서 전몰장병을 추모하는 상징의 꽃으로도 기억되고 있다.

 

이기은 시인 육군병참동우회 사무국장
이기은 시인 육군병참동우회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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