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병영의창

전쟁 속에서도 지켜낸 문화유산

입력 2026. 06. 04   15:43
업데이트 2026. 06. 04   16:17
0 댓글

문화유산은 과거의 유물이 아니라 한 시대의 정신과 기억을 담은 기록이다. 그렇기에 전쟁과 재난 속에서 문화유산을 지켜 내는 일은 단순한 보존을 넘어 우리가 어떤 가치를 지켜야 하는지를 보여 주는 일이다. 우리 역사에도 그런 선택의 순간이 있었다.

고려시대에 제작된 ‘팔만대장경’은 8만여 장의 목판에 불교 경전과 지식을 새긴 인류의 유산이다. 77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 완벽에 가까운 상태로 보존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돼 있다. 나무판에 새겨진 글자는 단순한 불경이 아니라 민족의 정신을 품은 기록이다. 그러나 이 귀중한 유산은 수많은 전란에 여러 차례 소실 위기를 맞았으며 6·25전쟁도 예외가 아니었다.

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여름, 지리산 주변은 인천상륙작전으로 퇴로가 끊긴 인민군의 소굴이 됐다. 당시 한국 공군은 미 공군의 요기(Wingman) 역할에서 벗어나 독립된 단위부대로 거듭나기 위해 잠시 전쟁에 투입되지 않고 사천기지에서 훈련을 이어 가고 있었다. 단독작전 기회를 엿보던 중 지리산지구 전투경찰이 공군에 항공 지원을 요청했다. 미 5공군사령관의 단독작전 허가를 받은 공군은 1전투비행단을 창설하고 지리산 일대에 숨어 있는 공비 토벌에 나섰다.

김영환 대령은 4대의 F-51D 편대를 이끌고 전투경찰이 항공 지원을 요청한 가야산으로 향했다. 목표 지점에 접근하던 그의 눈에 해인사가 들어왔다. 얼마 지나지 않아 공비 위치를 알리는 연막탄이 해인사 대적광전 앞마당에서 피어올랐다. 약속대로라면 전투기 편대는 연막탄이 있는 곳을 폭탄과 로켓으로 공격해야 했다. 그러나 그곳은 ‘팔만대장경’이 있는 건물과 불과 몇 미터 거리였다. 폭격으로 공비를 제압할 수 있었지만 동시에 수백 년간 지켜온 유산이 한순간에 사라질 수도 있었다. 고민하던 김영환 대령은 편대원에게 공격 중지를 명령했다. 대신 저공비행으로 위협한 뒤 해인사 주변 숲에 기총 공격하여 공비를 몰아냈다. 그는 군인이자 전투기 조종사로서 나라를 수호하기 위해 싸우면서도 우리나라의 소중한 문화유산을 지키는 결단을 내렸다.

오늘날의 조종사도 같은 고민을 한다. 전투기 조종사의 임무 중 하나는 표적을 빠르게 식별하고 공격하는 것이다. 하지만 급박한 상황에서도 선택에는 윤리적 책임이 따른다. 전쟁 중에도 어떤 시설은 공격 대상이 될 수 없다. 조종사의 평소 폭탄 투하 훈련에서도 목표물 공격 전 반드시 주변을 살핀다. 이번 공격으로 주변의 아군이 피해를 보지는 않을지, 적진이라도 공격해선 안 되는 시설이 있는지 반드시 확인해야 하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을 지키는 군인의 임무는 적과 맞서는 것에만 머물지 않는다. 전쟁 속에서도 보호해야 할 문화와 생명이 있으며, 그것을 지켜 내는 것 역시 우리의 역할이다.

전민규 소령 공군11전투비행단
전민규 소령 공군11전투비행단



< 저작권자 ⓒ 국방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댓글 0

오늘의 뉴스

Hot Photo News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