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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듯한 블록 사이 꽃핀 곡선의 미학

입력 2026. 06. 04   16:17
업데이트 2026. 06. 04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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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인문학-두 도시 이야기
스페인 바르셀로나와 일본 도쿄(上)
 
격자 위에 그린 미래의 도시
중세성벽이 사라진 자리…세르다는 도시의 뼈대를 세우고, 그 위에 꿈을 그린 가우디
바둑판 위 유영하듯 흐르는 곡선…두 천재의 상상, 바르셀로나의 길을 밝히다

 

도시는 끊임없는 성장과 쇠락, 파괴를 통한 재건과정을 반복한다. 스페인 바르셀로나는 중세의 벽을 허물고 도로를 바둑판처럼 반듯하게 배열하는 도시계획을 거쳐 현대적인 도시정비의 모범이 됐다. 반면 일본 도쿄는 대지진과 대공습이라는 극단적인 물리적 소멸을 겪었다. 이를 기회로 삼아 메트로폴리스로 거듭난다.

 

버스를 타고 언덕에 오르면 지중해를 배경으로 펼쳐진 바르셀로나 시내가 한눈에 들어온다.
버스를 타고 언덕에 오르면 지중해를 배경으로 펼쳐진 바르셀로나 시내가 한눈에 들어온다.


바르셀로나를 상징하는 건축가, 가우디 

우리는 바르셀로나에서 한 달 살기를 했다. 좀 덥긴 했지만 지중해로 뛰어들면 되니 큰 문제가 아니었다. 길을 걷다가 갈증이 나면 맥주 한 잔을 목에 털어 넣었다. 바다와 맥주, 그렇게 우리는 바르셀로나의 여름을 즐겼다. 어느 날은 무얼 해도 더위가 가시지 않아 무작정 버스에 올라탔다. 에어컨의 냉기가 몸을 싹 훑고 지나갔다. 너무 시원해 흐르던 땀이 마르며 살짝 오한이 느껴지기까지 했다. 그것은 천국행 버스였다. 목적지 없이 올라탄 천국행 버스는 우리를 진짜 천국으로 데려다줬다. 바르셀로나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카멜 벙커였다.

벙커에서 바라본 바르셀로나는 또 다른 도시처럼 보였다. 저 멀리서는 여전히 공사가 진행 중인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이 눈에 들어왔다. 미완의 걸작으로 불려 온 이 성당은 올해 완공을 앞두고 있다. 첫 돌을 놓은 지 무려 144년 만의 일이다. 카탈루냐 모더니즘의 정수를 보여 주는 성당은 바르셀로나를 상징하는 건축가 안토니 가우디가 설계했다.

바르셀로나는 가우디의 도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 목록만 봐도 그렇다. ‘안토니 가우디의 작품들’이라는 이름으로 묶인 7개(사그라다 파밀리아, 구엘공원, 카사 바트요 등)의 건축물은 바르셀로나를 찾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만나게 된다.

가우디가 이처럼 많은 건축물을 남길 수 있었던 데는 든든한 후원자의 존재가 있었다. 스페인 산업혁명 시기 섬유산업으로 큰 부를 쌓은 에우세비 구엘이다. 파리 만국박람회에서 가우디의 작품을 처음 만난 구엘은 이후 오랫동안 그를 후원했다. 어딘가 낯익은 그 이름은 구엘공원과 팔라우 구엘에 고스란히 새겨져 있다.

바르셀로나의 중심 광장인 카탈루냐광장에서 크리스토퍼 콜럼버스 기념동상이 있는 항구까지 이어지는 1.4㎞의 보행자 거리 ‘라스람블라스’는 여행자라면 누구나 들르는 대표 명소다. 그 거리에서 조금만 들어가면 가우디가 후원자 구엘을 위해 설계한 저택 팔라우 구엘을 만날 수 있다. 옥상에 줄지어 선 굴뚝은 마치 조각품을 세운 듯 멋지지만, 이 건물의 진짜 매력은 실용적인 설계에 있다. 옥상의 굴뚝은 사실 공기 흐름을 고려해 만든 공기청정기의 일부분이다. 당시로선 혁신이라고 할 법한 이 기술을 가우디는 팔라우 구엘 한쪽 벽에 가득 채웠다. 이는 바르셀로나의 열악한 공기 환경을 개선하려는 시도이기도 했다.

1830년대부터 바르셀로나는 스페인 산업혁명을 이끌며 빠르게 성장했다. 그만큼 공기 오염도 심각했다. ‘카탈루냐의 맨체스터’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공업화가 급속히 진행됐고, 석탄을 태우는 공장들로 인해 도시는 늘 연기로 가득했다. 당시 사람들은 굴뚝 연기가 태양을 가린다고 묘사할 만큼 깨끗한 공기를 갈망했다. 가우디는 구엘의 저택에 공기청정기를 설치했고, 구엘은 영국의 전원도시 개념에서 영감받아 바르셀로나 외곽에 고급 주거단지를 조성하고자 했다. 가우디가 설계를 맡은 주거단지는 분양이 뜻대로 되지 않았다. 결국 두 채만 팔린 채 사업은 실패로 끝났다. 이후 1926년 바르셀로나시가 매입해 공원으로 바꿨다. 그것이 오늘날의 구엘공원이 됐다.

구엘공원에는 지금도 가우디의 감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색색의 도자기 조각으로 꾸민 용 계단, 86개의 도리아식 기둥(고대 그리스 건축의 단순하고 강인한 기둥 양식)으로 만든 홀, 구불구불 이어지는 세라믹 벤치, 바르셀로나 시내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중앙 테라스까지 곳곳이 여행자들의 발길을 붙잡는다. 한때는 실패한 부동산사업이었지만, 지금은 가우디 건축의 정수를 보여 주는 열린 공간이 됐다.


세르다는 시대를 앞선 도시계획자였다. 그가 설계한 에이샴플라지구는 넓은 보행자 도로와 모든 가구가 공평하게 채광을 보장받는 독창적인 주택 구조가 특징이다.
세르다는 시대를 앞선 도시계획자였다. 그가 설계한 에이샴플라지구는 넓은 보행자 도로와 모든 가구가 공평하게 채광을 보장받는 독창적인 주택 구조가 특징이다.


미래에서 온 도시계획자

가우디의 천재성보다 우리의 눈길을 끈 인물은 따로 있었다. 바로 일데폰스 세르다다. 가우디에 앞서 바르셀로나에 도시계획자 세르다가 등장한다. 그는 바르셀로나의 반듯한 격자 도로 구조를 만든 사람으로, 현대 도시계획의 창시자로 불린다. 심지어 자신의 저서에서 처음으로 ‘도시화’라는 단어를 사용하기도 했다.

마드리드 토목학교를 졸업한 세르다는 스페인 중앙정부의 의뢰로 바르셀로나 주변 지형을 측량했다. 요새를 허물고 도시를 확장하려는 계획의 일환이었다. 그는 이 측량자료를 바탕으로 세상에 없던 새로운 확장계획을 세웠지만 앞길은 순탄치 않았다.

바르셀로나는 오랫동안 스페인 중앙정부의 억압 속에 있었다. 바르셀로나는 카탈루냐 지방의 중심도시다. 피레네산맥 동쪽에 자리한 카탈루냐는 중세 이전부터 독자적인 언어, 관습, 법률을 가진 일종의 스페인 안의 또 다른 국가였다. 스페인 중앙정부 억압의 상징인 요새를 허물고 다시 카탈루냐의 정신으로 도시를 되살리려던 시점에 세르다가 도시 측량을 한 것이다. 시의회는 세르다의 계획이 도시 정체성을 무시한다고 판단해 외면했다. 대신 별도의 공모에서 개선문을 중심으로 한 방사형 도시계획을 선택했다.

하지만 스페인 중앙정부는 국왕 명령으로 세르다의 계획을 최종 승인하고 강행했다. 국왕이 직접 나선 데는 바르셀로나의 심각한 환경 문제가 크게 작용했다. 세르다는 측량 후 바르셀로나 구도심의 문제를 단순한 위생 문제가 아니라 ‘도시설계 오류가 불러온 재앙’으로 봤다. 이런 문제를 보완하기 위해 그는 너비 20m에서 60m까지 이어지는 넓은 가로수길과 인도가 반듯한 격자로 배치된 에이샴플라지구를 설계했다. 세르다는 넓은 도로가 단순히 교통을 위한 게 아니라 공기 흐름에도 필수적이라고 주장했고, 블록 내부 정원에서 아이들이 자유롭게 숨 쉬며 놀 수 있어야 한다고 봤다.

오늘날 에이샴플라지구를 걷다 보면 모든 블록 모서리를 45도로 깎아 만든 팔각형 교차로가 눈길을 끈다. 이 작은 광장들은 지금도 노천카페와 벤치로 채워져 주민들의 소통공간으로 쓰인다. 세르다는 도시를 하나의 유기적 시스템으로 보고, 심지어 1인당 필요한 공기 부피까지 계산해 도로 폭을 정했다. 그의 도시계획은 토목이나 건축이 아니라 환경과 의학에 가까웠다. 에이샴플라는 카탈루냐어로 ‘확장’을 의미한다. 19세기 중반 산업혁명으로 팽창하던 바르셀로나의 성벽을 허물고 새로 조성한 계획도시였으니 이보다 딱 맞는 이름은 없어 보인다.

이런 세르다의 이상을 품기에 바르셀로나의 그릇이 작았나 보다. 정부가 계획을 승인했지만, 실제 공사비는 바르셀로나 시의회 승인이 필요했다. 세르다를 곱게 보지 않던 시의회는 대금 지급을 계속 미루며 그의 작업을 방해했다. 그는 자신의 전 재산을 쏟아부으며 꿈의 도시를 완성해 나갔다. 결국 평생 제대로 된 보수를 받지 못한 채 모든 재산을 탕진하고, 막대한 빚을 남긴 채 빈털터리로 스페인 북부 칸타브리아에서 생을 마감했다.

 

바르셀로나 시내에 위치한 팔라우 구엘 옥상.
바르셀로나 시내에 위치한 팔라우 구엘 옥상.

 

 

가우디의 작품 중 하나인 카사 바트요.
가우디의 작품 중 하나인 카사 바트요.

 

스페인 중앙정부의 억압의 상징이었던 ‘시우타델라’를 부수고 그 자리에 공원을 만들었다. 공원 중심의 분수 제작과정에 가우디도 참여했다.
스페인 중앙정부의 억압의 상징이었던 ‘시우타델라’를 부수고 그 자리에 공원을 만들었다. 공원 중심의 분수 제작과정에 가우디도 참여했다.


두 천재의 작품, 바르셀로나

바르셀로나에서 한 달 살기를 하면서 이 도시는 걷기에도, 자동차 운전을 하기에도, 자전거를 타기에도 매우 편리한 도로를 갖고 있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다 세르다 덕분이다. 세르다는 살아생전 인정받지 못했지만, 그가 만든 도시는 사람이 움직이기 좋은 도시로 남아 있다. 160년이 지난 오늘날 바르셀로나의 격자형 도시는 세계에서 가장 유연한 도시로 평가받는다. 세르다의 계획을 재조명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에이샴플라지구의 격자 구조는 20세기 자동차 시대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였고, 21세기 지속 가능한 도시전략에도 잘 맞는다. 19세기 도시계획자의 통찰이 이렇게 오랜 세월 한 도시를 이끌고 있다.

다시 카멜 벙커로 돌아가 보자. 해발 262m 언덕 위 벙커는 그런 바르셀로나를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장소다. 스페인내전 때 파시스트 군의 공습을 막기 위해 지은 대공포진지를 지금은 여행자를 위한 공간으로 개방하고 있다. 벙커에서 내려다보면 곧게 뻗은 도로와 자로 잰 듯한 사각형 블록들이 끝없이 이어진 모습이 보인다. 바르셀로나가 우연히 만들어진 도시가 아니라 치밀한 계산과 이상이 담긴 계획도시라는 걸 단번에 느낄 수 있었다.

파노라마로 펼쳐진 풍경 위에서 사그라다 파밀리아의 첨탑과 지중해 수평선이 격자 도로와 만났다. 마치 도시 전체가 하나의 예술작품처럼 느껴졌다. 격자형 도심에 들어서면 여행자는 낯선 경험을 하게 된다. 113m 크기의 블록들이 촘촘히 맞물린 질서 정연한 거리를 걷다가 갑자기 시선을 사로잡는 건물 앞에 멈춰 선다. 바로 사그라다 파밀리아다. 세르다는 알지 못했지만, 천재 가우디를 위해 완벽한 무대를 미리 준비해 둔 셈이다.

만약 세르다의 반듯한 격자 도로가 없었다면, 가우디의 곡선미는 도시 속에서 길을 잃었을지도 모른다. 반대로 가우디의 독창적인 건축이 없었다면 세르다의 도시가 이렇게 사랑받았을지 알 수 없다.

바르셀로나는 위기를 기회로 바꾼 도시의 모범이다. 160년 전 세르다가 그은 직선과 가우디가 빚어낸 곡선의 만남이 지금 우리가 보는 바르셀로나다.


필자 김은덕·백종민은 여행작가다. 부부가 함께 쓴 공저로 『여행 말고 한달살기』 『한 달에 한 도시』 시리즈 등이 있다. 유튜브 ‘띵크띵스’도 운영 중이다.
필자 김은덕·백종민은 여행작가다. 부부가 함께 쓴 공저로 『여행 말고 한달살기』 『한 달에 한 도시』 시리즈 등이 있다. 유튜브 ‘띵크띵스’도 운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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