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전쯤에는 서울시내 여기저기에 벽시계가 많이 걸려 있었다. 공공건물은 물론 약수터에도 벽시계가 있었다. 서울역 건물 정면에 걸려 있던 큰 시계는 서울시민들의 표준시를 알려 줬다. 버스를 타고 서울역 앞을 통과할 때면 큰 시계를 보고 몇 분씩 빨리 가거나 느리게 가는 자신의 손목시계 바늘을 조절했다. 언제부터인가 이용객이 수시로 시각을 확인해야 하는 서울역과 고속버스터미널에 벽시계가 사라졌다. 숫자로 시간을 나타내는 전광판 시계가 어쩌다 보이기는 하는데, 시각이 다른 정보들과 뒤섞여 나타났다간 금방 사라지기에 시간을 제대로 확인하기가 힘들다.
시계는 시각과 시간 이 둘을 알려 준다. 시각은 시간이라는 흐름의 선분에 놓인 매듭을 말한다. 2026년 1월 1일이라는 매듭은 시각이 된다. 이를 더 정밀하게 2026년 1월 1일 오후 2시30분이라는 매듭으로 시각을 나타낼 수 있다. 시간은 시각과 시각이라는 매듭 사이의 간격을 말한다. 수준급의 육상선수가 100m를 달렸을 때 출발선에서 결승선 사이에 10초 가까운 ‘시간’이 걸린다. 이 경우 출발이라는 사건과 도착이라는 사건 사이에 걸린 시간적 양 혹은 간격을 10초라는 ‘시간’으로 나타낼 수 있다.
휴대전화에는 시각을 숫자로 알려 주는 전광판 시계가 내장돼 있다. 숫자는 시각만을 보여 준다. 휴대전화가 등장하기 전에는 사람들이 손목시계를 많이 차고 다녔다. 예전보다는 줄었지만 손목시계를 차는 이들이 아직도 있다. 손목시계는 대개 동그란 시계판 위로 시곗바늘이 돌아간다. 동그란 시계판 공간의 가장자리에 새겨진 표지를 따라 바늘이 돌아가며 시각을 알려줄 뿐 아니라 시간도 짐작하게 해 준다.
손목시계나 벽시계는 시각 혹은 시간을 우리가 지각하기 쉬운 공간으로 변환해 드러낸다. 특정한 시간에 정해진 약속이 있다면 그 약속 시각의 바늘 위치와 현재 시각의 바늘 위치와의 거리, 각도, 면적 등의 변화로 시간 흐름에 따른 사건적 밀도, 긴장도를 금방 파악하게 해 준다. 약속 시각이 오후 6시라고 한다면 시침이 4시에 있을 때와 5시에 있을 때 약속을 향한 긴장감은 달라진다. 시침이 6시에 가까워질수록 6시라는 가상의 시침과 실제로 눈에 보이는 5시 몇 분의 시침이 만드는 삼각형이 점점 좁아진다. 두 개의 시침이 만드는 삼각형 공간의 밀도가 점점 높아지면서 만남이라는 사건이 점점 구체화된다. 몸과 마음도 함께 바빠지기 시작한다.
여기에 비하면 숫자로 된 전광판 시계는 사건의 밀도와 관계없이 늘 균일한 속도로 흘러간다. 시간이란 독립해 존재하는 실체가 아니라 물질과 사건 사이의 관계 혹은 그 변화에서 발생한다고 보는 철학적 관점이 있다. 이 관점을 빌리자면 시간은 사건과 함께 발생하는 것이다. 사건 규모가 크면 많은 시간이 발생하고 사건이 아예 없으면 시간이 흘러가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시간은 균질하지 않다. 늘 균질한 시간 감각을 유지하는 숫자로 된 전광판 시계로는 사건의 밀도를 파악하기가 힘들다. 벽시계나 손목시계는 공간의 밀도로 사건 변화의 밀도 차이를 잘 표현해 준다.
손목시계를 고집하는 사람이 꽤 있다. 휴대전화가 일상화된 요즘에도 굳이 손목시계를 차고 다니는 건 단순히 값비싼 소품으로 멋을 내려는 목적만은 아니다. 시간의 밀도로 사건의 밀도를 파악해야 하는 사람들에게는 시간을 공간지각으로 직관할 수 있게 하는 손목시계가 매우 유용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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