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장군단 무궁화회의 일정으로 국가정보원을 방문했다. 브리핑 자리에서 한 문장이 뇌리에 박혔다. “세상에 당연한 것은 없습니다.” 그 짧은 문장 뒤로 이어진 설명은 무거웠다. 이 순간에도 우리가 모르는 곳에서 수많은 사람이 대한민국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움직이고 있다는 것. 이름을 밝힐 수 없는 곳에서, 얼굴을 드러낼 수 없는 자리에서, 그들은 오늘도 우리의 일상을 지탱하고 있었다.
군인도 마찬가지다. 최전방 경계 근무를 서는 병사는 영하의 추위 속에서도 총을 내려놓지 않는다. 그 덕분에 누군가의 아들은 따뜻한 이불 속에서 잠을 잔다. 전투기 조종사는 이른 새벽 출격 브리핑을 마치고 어둠 속 활주로에 선다. 그 덕분에 누군가의 딸은 오늘도 안전한 하늘 아래서 꿈을 꾼다. 그들이 그 자리를 지키는 동안 우리는 아무것도 모른 채 일상을 살아간다.
이 나라의 평화는 누군가가 대신 치러준 값이다. 6·25 전쟁이 발발한 1950년, 이 땅에는 스물도 채 안 된 청년들이 있었다. 군번도 제대로 없이 총을 쥐었고, 군복도 없이 전장으로 나갔다. 낙동강 전선에서, 장진호의 혹한 속에서, 인천의 파도 속에서 그들은 쓰러져 갔다. 그중 많은 이가 아직도 돌아오지 못한 채 산자락 어딘가 묻혀 있다. 우리는 그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지만 우리가 누리는 이 나라는 기억하고 있다.
보훈이란 결국 그 빚을 기억하는 일이다. 우리 대신 희생한 이들의 헌신을 잊지 않고 국가와 사회가 함께 갚아나가는 것, 그것은 단순한 의례가 아니다. 지금의 일상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겠다는 사회적 약속이다. 군복을 입은 사람일수록 그 약속을 더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
군인은 전쟁을 막기 위해 존재하지만 전쟁을 막는 힘은 무기에서만 나오지 않는다. ‘이 평화를 지키겠다’는 굳은 의지, 그 뿌리는 감사와 책임감이다. 선열의 피로 세워진 이 땅임을 아는 자만이 진정으로 그것을 지킬 수 있다.
6월은 호국보훈의 달이다. 현충일이면 사이렌이 울리고, 잠시 묵념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간다. 그 1분의 정신이 나머지 364일을 관통하길 바란다. 자유롭게 말하고 투표하고 여행하는 이 일상이 피로 쓰인 역사 위에 있음을 아는 시민은 다르게 행동한다.
군인은 그 사실을 가장 먼저, 가장 깊이 알아야 한다. 지금도 어딘가에서 눈을 부릅뜨고 대한민국을 지키는 이들이 있다. 그리고 더 이상 우리 곁에 없지만 이 나라를 세운 이들이 있다. 그 모든 헌신 위에 오늘 우리가 서 있다. 그것을 기억하는 것이 보훈이고, 그것을 지켜내는 것이 호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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