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조명탄

전작권 전환

입력 2026. 05. 29   17:25
업데이트 2026. 05. 31   12:08
0 댓글
홍제표 CBS 정치부 선임기자
홍제표 CBS 정치부 선임기자



일본의 거물 정치인 오자와 이치로는 1993년 ‘보통국가론’을 주창했다. 제1차 걸프전쟁 때 다국적군에 거금을 댔음에도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자 ‘우리도 군대를 갖고 파병과 전쟁도 할 수 있는 나라를 만들자’는 것이다. 전범국가 이미지를 교묘히 가린 이 주장은 초기에는 지지를 받지 못했다. 그러나 보통국가로 포장된 일본의 군사 대국화는 21세기 들어 가속화하고 있다. 중국의 굴기와 북한의 위협이 자양분이 됐다. 유일한 제동장치 격인 미국은 중국 봉쇄와 동맹의 역할분담을 내세워 일본 재무장을 용인하고 있다. 

이런 미국의 글로벌 전략 변화는 한국에도 다각도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 전환도 그중 하나다. 정부는 목표시점을 임기 말까지로 공약했지만 최근 흐름이 빨라지고 있다. 국방부는 올가을 한미안보협의회의(SCM) 이전에 전작권 전환 로드맵을 완성할 계획이다. SCM 때 완전운용능력(FOC) 검증을 마치면 전작권 전환 목표연도(X년)도 결정하게 된다.

따라서 한미 간 협의가 순조롭다면 내년쯤 역사적인 전작권 전환을 기대할 수 있다. 1950년 7월 6·25전쟁 와중에 미군에 위임한 지 무려 77년 만이 된다. 하지만 과거 사례를 보면 최종 결론이 나올 때까지는 더 지켜봐야 한다. 전작권 전환은 노무현 정부가 2012년 4월 17일로 날짜까지 확정했지만 이명박 정부에서 한 차례 연기됐고, 박근혜 정부 때는 ‘조건부 전환’으로 바뀌며 사실상 무기 연기됐다. 미국이 한국군의 실력이 이미 충분하다고 인정했음에도 선뜻 손에 쥐지 못한 것이다.

전작권 행사는 주권국가로서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일본이 보통국가를 꿈꾸는데, 한국이야말로 진정 ‘보통(Normal)’의 국가 자격이 있다. 해방과 독립을 이룬 지 80여 년, 전작권 양도로부터 근 80년 만에 군사주권을 되찾는다니 늦어도 한참 늦었다. 일각에선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사례 등을 거론하며 군사주권론을 비판하지만 옳지 않다. 나토는 일부 지정된 부대만 전시에 나토사령관(미군)의 지휘를 받고, 미군과 32개 나토 국가 간 다자구도라는 점도 우리와 상황이 다르다.

전작권 전환 시기상조론은 좋게 봐야 명분보다 실리를 앞세운 이야기다. 그나마 대북 재래식 방어는 한국 책임이라는 미국의 새 국방전략(NDS)에 비춰 현실과도 맞지 않는다. 한반도 전장을 주도적으로 설계하고 결심하는 능력은 이제 좋든 싫든 받아 안아야 할 무거운 칼자루다. 전작권 전환에 신중했던 여론이 최근 몇 년 사이 절반을 넘어서며 바뀌고 있다. 국민은 이미 세계의 변화를 읽었고, 무엇보다 국력에 대한 자신감으로 무장하고 있다.

독일 통일을 이룬 철혈재상 비스마르크는 “역사 속을 지나가는 신의 옷자락을 놓치지 말고 잡아채는 게 정치가의 책무”라고 했다. 단지 실력을 준비하는 것을 넘어 역사적 기회를 포착하는 혜안과 결단력을 강조했다. 더 나아가 기회가 왔음에도 흘려보낸다면 오히려 역사의 징벌을 받게 된다는 의미로도 풀이된다. 구한말 치욕의 나날을 겪은 우리에게 더욱 뼈아픈 통찰이다.

다행히 한국의 지난 반세기는 담대한 도전과 위대한 극복의 역사였다. 끼니조차 걱정하던 나라가 허허벌판 위에 조선소와 제철소를 짓고 반도체와 정보기술(IT)에 투자했다. 그 저돌적인 투지가 오늘날 세계를 누비는 K타이틀의 씨앗이 됐다. 우리 군이 이들 K전사보다 못할 이유가 무엇인가? 국가적 지원도 부족하지 않았다. 전작권 전환을 바라보는 9부 능선에서 군의 깊은 성찰과 심기일전을 바란다.

< 저작권자 ⓒ 국방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오늘의 뉴스

Hot Photo News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