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이슈 돋보기
미·중 정상회담이 쏘아올린 작지 않은 공
각자 입장만 내세우던 태도 변화 주목
중·러, 한·일 등 연쇄 정상회담도 견인
협력·경쟁 공존 새로운 다극 질서 예고
오는 9월 시진핑 미국 방문 관심 집중
미 중간선거 앞두고 트럼프에겐 호재
양국이 원하는 이익 상호 교환 가능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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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4일과 15일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미·중 정상회담은 예상대로 큰 결실 없이 끝났다.
한 차례 연기된 회담, 한국에서의 양국 무역대표 간 막판 조율, 회담 직전 알래스카에서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의 전격 합류, 이례적인 미 국방장관의 동행 등 기대를 키울 요소도 많았다.
하지만 그동안 두 나라의 태도와 양국 간 이슈 무게를 감안할 때 극적인 결과는 처음부터 무리였다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이번 정상회담은 두 가지 측면에서 작지 않은 의미를 가진다고 본다. 하나는 정상회담에서 합의된 내용, 즉 중국이 제시한 양국 간 ‘건설적·전략적 안정 관계(constructive relationship of strategic stability)’ 구축이라는 틀이고, 다른 하나는 회담 자체보다 그 뒤를 이어 줄줄이 개최된 각국 간 연쇄 정상회동이다.
역사적 회담이냐, 역사적 거래냐
먼저 회담 내용은 많은 연구자가 지적했듯 미국의 단기적이고 소박한 실리 추구와 중국의 전략적이고 적극적인 주장 반복이 혼합된 결과였다. 양국은 이를 각각 ‘역사적 회담’(왕이 중국 외교부장)과 ‘역사적 거래’(미 백악관 팩트시트)로 같으면서도 다르게 표현했다. 대만 문제나 북한 문제에 관한 언급, 이란 사태에 대한 시각, 기타 무역 합의 내용 등은 양국의 발표문과 외교·국무장관의 후속 인터뷰에서 각기 거론되지 않거나 다르게 표현되는 등 기존의 정상회담 결과 발표 형식에서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그럼에도 주목할 만한 점은 본격적인 전략경쟁 이후 각자의 입장만을 나열하던 공식 발표문에서 미·중 관계 방향성에 대해 두 정상의 합의가 담겼다는 것이며, 이 자체로도 ‘역사적’이라고 평가할 만하다. 앞서 언급한 ‘건설적·전략적 안정 관계’는 중국의 공식 발표문과 미국의 팩트시트에 모두 양국 정상이 ‘동의’했다고 명시됐기 때문이다.
물론 세부 내용에서는 차이가 존재한다. 예를 들어, 미국의 팩트시트에는 ‘공정(fairness)과 상호성(reciprocity)에 기초한’이라는 수식어가 붙어 있지만, 중국 자료에는 ‘협력을 주축으로 한 긍정적 안정, 적절한 범위 내의 경쟁을 동반한 건전한 안정, 관리 가능한 차이를 바탕으로 한 지속적인 안정, 그리고 예측 가능한 평화를 바탕으로 한 지속적인 안정’이라고 설명한다. 이처럼 해석의 차이가 존재할 수 있지만 양국이 상호관계의 방향성에 동의했다는 점만으로도 향후 국제질서에 미칠 파장은 적지 않을 것이다.
특히 지난해 경주 2025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를 계기로 한 만남에서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G2’라는 용어를 사용한 것에 비춰 이번 회담에서의 위와 같은 관계 인정은 해당 문구가 즉흥적인 산물이라기보다는 양국의 전략적 협의에 따른 보다 중대한 변화로 봐야 할 것이다.
동북아 정상 간 회담의 촉발제
이어 두 번째는 연쇄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각국의 정상회동이다. ‘건설적·전략적 안정 관계’라는 틀에 합의하자 양국은 각자 움직임에 박차를 가한 모양새다.
미·중 정상회담 종료 나흘 만인 5월 19~20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베이징을 국빈 방문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마주 앉았다. 같은 기간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는 경북 안동을 찾아 이재명 대통령과 한·일 정상회담을 했다. 보름 남짓한 사이에 미·중, 중·러, 한·일 등 세 개의 정상회담이 숨 가쁘게 개최된 것이다. 여기에 파키스탄 총리의 방중이나 미·중 정상회담 직후 트럼프 대통령의 이재명 대통령과 다카이치 총리와의 전화통화까지 포함하면 미·중 정상회담에서 드러나지 않은 모종의 내용이 국제질서 전반을 흔드는 효과를 내고 있다고 봐야 한다.
이는 아마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장기화, 중동전쟁과 호르무즈해협의 위기, 대만해협의 긴장이 동시에 놓인 지금 이 복합 위기를 자국에 유리하게 풀어야 한다는 전략적 접근이 정상들을 잇따라 회동하게 만들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정말 역사적일지는 앞으로의 만남에 달려
올해 트럼프 대통령과 시 주석의 만남 가능성은 최대 네 차례로 거론돼 왔으며 5월 베이징 회담이 첫 번째였다. 이제 세 번의 기회가 남았으나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나 APEC 등 다자 일정을 제외하면 가장 중요한 일정은 오는 9월 시진핑 주석의 미국 방문이다.
오는 11월 중국에서 열리는 APEC이나 12월 미국에서 열리는 G20은 기간 차이를 고려할 때 양국 정상이 상호 방문하기가 현실적으로 어려우며 중국에서는 총리가, 미국에서는 부통령이나 국무장관이 대참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이에 비해 9월 24일 시진핑 주석의 방미는 매우 큰 의미가 있다. 이때는 미국 중간선거를 불과 6주 앞둔 시점이기 때문에 트럼프 대통령에게는 큰 이득일 수밖에 없다. ‘8년 만에 중국 정상을 백악관에 불러들였다’는 강력한 외교 성과로 포장할 수 있고 동시에 관세·반도체·희토류 협상의 최종 청구서를 들이미는 자리가 될 것이다. 아무래도 방문하는 입장인 중국이 어느 정도 선물을 트럼프 대통령에게 안겨줄 것이고, 대신 대만 문제 등 중국의 핵심이익과 관련된 전략적 포석을 더욱 강하게 가져갈 기회로 삼을 것이다.
즉, 이번 미·중 정상회담처럼 가시적인 이익은 미국이, 전략적인 이익은 중국이 가져가는 형식이 될 가능성이 크다.
미·중 정상회담 이후 한 달도 채 지나지 않은 지금 작지 않은 공은 이미 쏘아 올려진 상태다. 건설적·전략적 안정 합의와 그에 따른 연쇄 정상외교는 극단적 대결이 아닌 선택적 협력과 경쟁이 공존하는 새로운 다극 질서로의 이행을 의미한다. 올해 미·중 사이에 남아 있는 정상회담에서 이러한 추세가 더욱 공고화되는가를 예의주시해야 한다.
특히 한국으로서는 쏘아 올려진 공의 의미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그 궤적을 살펴야 하며 필요하다면 우리의 공을 쏘아 올리기도 해야 한다. 안보와 번영이 점점 더 분리 불가능해지고 있는 시기에 무엇 하나 쉬운 이슈가 없지만, 그 어느 때보다 국익을 우선으로 하는 정교하면서도 실리적인 접근이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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