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급처치 물자 가운데 가장 확보하기 어려운 건 ‘들것’이다. 붕대나 지혈대 같은 소모품은 비교적 쉽게 확보할 수 있지만, 들것은 가격과 보관 문제로 충분한 수량을 갖추기가 쉽지 않다. 항공의무대대를 제외한다면 평소엔 창고에 보관되다가 비상시에만 사용되는 물자여서다.
만약 기지 내에서 대량의 환자가 동시에 발생한다면 어떻게 될까. 응급처치 교육을 할 때마다 들것 확보가 가장 어렵다는 사실을 다시 확인하게 되는 이유다.
들것을 별도의 창고에 보관하는 대신 평소 우리가 사용하는 시설물 속에 자연스럽게 배치할 순 없을까. 이 질문에 대한 흥미로운 답을 영국 런던 거리에서 발견할 수 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대공습에 대비하던 영국 정부는 약 60만 개의 철제 들것을 제작했다. 전쟁이 끝난 뒤 남겨진 들것은 런던 전역의 주택가와 공원 난간으로 재활용됐다.
평소엔 보행자의 안전을 지키는 울타리 역할을 하다가 비상 상황이 발생하면 즉시 분리해 환자 이송용 들것으로 쓸 수 있는 구조였다. 이른바 ‘들것 난간(Stretcher Railing)’이다.
우리 공군 기지는 거대한 면적만큼 수많은 난간과 울타리로 이뤄져 있다. 도로와 체력단련시설, 각종 시설물의 안전난간 등 기지 곳곳에 설치된 구조물을 영국의 사례처럼 ‘들것 겸용 난간’으로 설계한다면 어떤 변화가 생길까.
첫째, 즉각적인 대응 능력을 확보할 수 있다. 사고현장 인근에 설치된 난간이 곧 들것이 되기 때문이다. 항공의무대대에서 구급차나 들것이 오기를 기다릴 필요 없이 현장에서 바로 환자를 이송 가능하다. 이는 대량 사상자 발생 시 환자 분류와 초기 이송의 골든타임을 단축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둘째, 화생방 상황에서도 효과적이다. 철제 프레임과 금속 메시 구조는 혈액이나 오염물질이 쉽게 고이지 않아 제독이 용이하다. 기지방호작전이 중요한 공군 기지 환경에선 더욱 의미 있는 특성이다.
셋째, 시설관리와 작전 기능을 동시에 충족할 수 있다. 난간은 시설관리 측면에서 정기적인 점검을 받는 구조물이다. 이를 들것 기능과 결합하면 비축 물자를 관리하는 부담을 줄이면서도 항상 점검된 상태의 구조장비를 기지 전역에 분산 배치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우리는 흔히 장비와 물자의 정위치를 창고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진정한 대비태세는 장비가 필요한 순간 가장 가까운 곳에서 활용될 수 있을 때 완성된다.
신축 시설을 건설하거나 노후 난간을 교체하는 과정에서 들것 규격을 적용하는 작은 시도부터 할 수 있다. 일상의 구조물에 구호 기능을 더하는 이러한 발상은 기지 안전망을 한층 강화할 것이다. 창의적인 시설 설계는 유사시 전우의 생명을 지키는 또 하나의 전력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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