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조명탄

당신의 ‘내 편’은 어디에 있습니까?

입력 2026. 05. 28   15:32
업데이트 2026. 05. 28   16:03
0 댓글

군대라는 낯선 공간에 처음 발을 디뎠을 때 장병들을 힘들게 만드는 것은 ‘단절감’이다. 익숙한 집을 떠나 통제된 환경에서 생활하다 보면 문득 가슴 한구석이 쓸쓸해지며 집밥이 그리워지고 가족의 얼굴이 아른거리기 마련이다. 

매일 당연하게 쓰던 ‘가족(家族)’이란 낱말의 속뜻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지금 서 있는 그 공간이 조금은 다르게 보이기 시작한다.

우리말 중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한자어는 글자가 만들어진 당시 풍경을 통해 단어의 진짜 속살을 보여 주곤 한다. ‘가족’이라는 단어가 대표적이다.

먼저 집을 이르는 ‘가(家)’ 자를 들여다보자. 이 글자는 지붕 모양의 글자 아래 돼지가 있는 형상을 표현한다. 아주 먼 옛날 소나 돼지 같은 가축은 한 집안의 가장 소중한 재산이었다. 도둑이나 맹수로부터 이 소중한 존재를 지키기 위해 옛사람들은 반지하에는 돼지를 키우고 그 위층에는 사람이 사는 독특한 구조의 집을 짓고 살았다. 즉, 한자 속의 집은 단순히 비바람을 피하는 공간이 아니라 ‘내가 가진 가장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해 온 정성을 다하는 공간’이란 의미를 품고 있다.

겨레나 무리를 뜻하는 ‘족(族)’ 자의 풍경은 더욱 흥미롭다. 이 글자는 바람에 세차게 나부끼는 ‘깃발’과 날카로운 ‘화살’이 결합한 모습을 본떠 만들었다. 부족 간의 갈등과 싸움이 잦았던 고대사회에서 같은 깃발 아래 모여 화살을 들고 맞서던 공동체를 의미한다. 결국 ‘족’이라는 글자엔 ‘위기가 닥쳤을 때 나를 지켜 주고, 기꺼이 내 편이 돼 함께 싸워 주는 사람들’이라는 뜨거운 약속이 담겨 있는 셈이다.

여기에 우리가 친근하게 쓰는 ‘식구(食口)’라는 말도 존재한다. 말 그대로 ‘함께 밥(食)을 먹는 입(口)’이라는 뜻이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았더라도 매일 마주 앉아 따뜻한 밥 한 끼를 나누며 삶의 고단함을 위로하는 사이라면 기꺼이 식구가 된다. 단순히 음식을 나누는 행위를 넘어 서로의 하루를 묻고 고단한 삶의 무게를 덜어 주는 연대의 시간이 바로 식구의 식사시간이다.

흥미롭게도 시대가 변하면서 가족의 울타리는 점점 더 넓어지고 있다. 곁에서 귀여워하던 ‘애완동물’을 이제는 인생의 짝이 되는 동무라는 뜻의 ‘반려동물’이라고 부르며 가족으로 맞이한다. 싸이월드 시절 부모와 자식 간의 끈끈함을 뜻하는 ‘일촌’으로 랜선 인연을 맺었던 것처럼 요즘은 온라인공간에서 만난 이들을 ‘랜선 이모’나 ‘사이버 가족’으로 부르며 정을 나눈다. 분명한 것은 가족의 의미가 혈연의 울타리를 넘어 유대와 신뢰, 돌봄과 연대의 감각으로 확장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고개를 돌려 지금 곁에 있는 이들을 바라볼 필요가 있다. 매일 밤 같은 지붕 아래서 잠을 자고(家), 하루 세 번 식판을 맞대고 든든한 끼니를 함께 나누며(食口), 유사시 나라와 서로를 지키기 위해 같은 깃발 아래 훈련하는(族) 사람들이 눈에 들어올 것이다.

지금 곁에서 땀방울을 흘리고 있는 생활관의 전우들이야말로 가족과 식구의 정의에 그 누구보다 완벽하게 부합하는 ‘또 하나의 가족’이다. 비록 혈연으로 맺어지진 않았지만, 인생에서 가장 찬란하고도 치열한 청춘의 한 페이지를 함께 써 내려가며 서로의 방패가 돼 주는 확실한 ‘내 편’이어서다.

오늘 곁에 있는 사람을 좀 더 따뜻한 눈으로 바라볼 수 있다면 군은 더 이상 외로운 타향이 아니라 서로의 삶을 지켜 주는 또 하나의 집이 될 수 있다. 그 순간 ‘내 편’이라는 말은 비로소 가장 든든한 현실이 된다.

강용철 경희여중 국어교사 EBS 강사
강용철 경희여중 국어교사 EBS 강사

 

 

< 저작권자 ⓒ 국방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오늘의 뉴스

Hot Photo News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