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영주권자임에도 입대 선택한 故 유상철 축구감독 아들
육군37보병사단 신병교육대대 유선우 일병
또다른 국가대표, 태극마크 달고
영웅의 명예 이어 군복을 입다
“경험이 곧 평생 자산” 국민의 책임 다하려 입대
아버지께 배운 책임감과 헌신, 가슴에 새기고
조교 분대장 되기 위해 주경야독 한국어 공부
“될 때까지 한다” 지금은 ‘FM 훈련조교’로 불려
전역 후에도 대한민국 육군 응원 서포터 될 것
아버지는 대한민국 축구의 전설로 기억된다. 그리고 아들은 이제 대한민국 육군의 군복을 입었다. 미국 영주권자로 병역 의무를 피할 수도 있었지만,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책임을 다하고 싶었다”는 마음으로 입대를 선택한 고(故) 유상철 감독의 아들 유선우 일병. 가정의 달 5월, 아버지에게 배운 책임감과 조국에 대한 헌신을 가슴에 품고 ‘국민의 군대’에서 새로운 길을 걸어가는 그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글=박상원/사진=조종원 기자
육군37보병사단 신병교육대대에서 조교 분대장으로 복무 중인 유선우 일병은 미국 영주권자이지만, 26세의 나이에 자원입대를 선택했다. 신병교육 수료 이후에는 조교 분대장에 지원해 현재 ‘FM 훈련조교’로 불리며 신병들을 교육하고 있다.
유 일병은 6세 때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건너갔다. 이후 미국에서 초·중·고교를 졸업했고, 영주권도 취득했다. 하지만 마음 한편에는 늘 한국에 대한 생각이 자리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는 “교포 친구들과 이야기를 하다가 ‘전쟁이 나면 어느 나라를 지킬 것이냐’는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며 “그때 한국을 지키는 것이 당연하다는 생각을 했었다”고 말했다.
2019년 한국으로 돌아온 그는 대학을 졸업한 뒤 입대를 결심했다. 한때 한국 국적 유지에 대한 고민도 있었지만, 결국 스스로 병역 의무를 선택했다.
유 일병이 입대를 선택한 데에는 아버지의 영향이 컸다. 그는 “아버지는 평소 조용한 성격이셨고 감정을 쉽게 드러내지 않는 분이었다”면서도 “어릴 때부터 ‘젊어서 어려움을 이겨내는 경험은 평생 자산이 된다’는 말씀을 자주 해주셨다”고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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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고 유 감독이 세상을 떠난 뒤 팬들이 아버지를 기억하는 방식 역시 그에게 큰 울림으로 남았다. 그는 “K리그 각 구단은 물론 일본 J리그에서도 추모하는 모습을 보고 정말 놀랐다”며 “히딩크 감독님이 직접 찾아오신 것도 기억에 남는다. 지금도 많은 분들이 아버지를 기억해주시고 있다는 것에 감사하다”고 말했다. 특히 그는 “가정의 달인 5월이 되면 가족의 의미를 더 많이 생각하게 된다”며 “아버지가 남겨주신 책임감과 삶의 태도를 군 생활 속에서도 지켜가고 싶다”고 말했다.
군 생활은 쉽지 않았다. 특히 군사용어가 가장 큰 벽이었다. 몸을 쓰는 훈련에는 자신 있었지만, 한자어가 섞인 군 용어와 교육 내용은 이해하기 어려웠다.
유 일병은 “안 되겠다 싶어서 여자친구와 통화하면서 발음과 교육 내용을 녹음해 반복해서 연습했다”고 말했다.
조교 분대장 선발 과정 역시 어려운 관문이었다. 하지만 신병교육 당시 자신보다 어린 조교 분대장들이 책임감 있게 임무를 수행하는 모습을 보며 도전을 결심했다. 면접에서는 서툰 한국어로 “될 때까지, 끝까지 해내겠다”고 말했고, 그 진심은 면접관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이후 4주간 이어진 집체교육에서는 정신전력·제식·개인화기·전투부상자처치(TCCC)·각개전투·수류탄 등 병기본 전 과목을 숙달해야 했다. 그는 매일 밤늦게까지 공부했고 부족한 부분은 화장실에서 몰래 복습하며 채워나갔다.
유 일병은 “불가능할 것 같았지만 계속 부딪혀보니 결국 해낼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고 말했다.
훈련병들을 대하는 방식에서도 아버지의 모습이 자연스럽게 묻어난다. 그는 “혼내고 화내는 방식보다는 최대한 알려주고 도와주려고 한다”며 “훈련병들이 잘하면 내가 잘해서가 아니라 훈련병들이 잘해준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부대 안에서 유 일병은 훈련교범대로 꼼꼼하게 교육한다고 해서 ‘FM 훈련조교’로 불린다. 주변에서는 서툰 한국어에도 누구보다 책임감 있게 임무를 수행하는 조교라는 평가가 나온다.
입대 전 그는 수원FC에서 통역 업무를 맡으며 사회생활을 경험하기도 했다. 김도균·김태영·황선홍 감독, 이영표 해설위원 등 축구계 인연들과 함께했던 시간은 지금의 군 생활에도 적지 않은 도움이 되고 있다고 했다.
전역 후 계획을 묻자 그는 잠시 웃으며 “아버지가 활약했던 울산HD FC에서 다시 통역 일을 해보고 싶다”고 답했다. 이어 “아버지처럼 큰사람이 되겠다는 생각보다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또 육군 장병으로서 제 역할을 다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며 “전역 후에도 대한민국 육군을 응원하는 서포터로 살아가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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