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자병법』과 ‘에이전트 전쟁(Agentic Warfare)’은 전쟁의 중심을 화력 그 자체보다 의사결정을 우위에 둔다는 공통점이 있다. 전쟁의 이상형은 소모적 정면충돌이 아니라 적의 의도를 먼저 간파하고, 적의 결심을 흔들며, 아군이 유리한 조건에서 승부를 확정 짓는 것이다.
에이전트 전쟁은 관찰·판단·결정·행동(OODA) 전 과정에서 전문화된 인공지능(AI) 에이전트를 활용해 위성 영상, 신호정보(SIGINT), 정치·경제신호, 물리 기반 시뮬레이션을 결합하고 인간으로 구성된 지휘체계보다 훨씬 빠르게 적의 약점을 탐지하며 수많은 시나리오를 병렬 검토해 최적의 행동방책을 도출하는 게 핵심이다. 손자의 ‘묘산(廟算)’이 오늘날의 시뮬레이션 기반 COA 생성과 확률가중 분석으로 기술적 형식을 바꿔 되살아났다고 볼 수 있다.
손자는 전쟁의 핵심을 우회로를 직선처럼 활용하는 ‘우직지계(迂直之計)’ 전략에서 찾았으며, 이를 위해 기만·유인·분산·집중·허실 운용을 중시했다. 에이전트 전쟁 시대에도 이 원리는 사라지지 않는다.
에이전트 전쟁에선 속도와 자동화가 높아질수록 기만과 스푸핑, 허위 데이터 주입, 전자전 교란의 중요성이 커진다. 미래전의 핵심은 AI를 보유하는 데 그치지 않고 적 AI를 속이고 아군 AI를 보호하는 역기만 능력까지 포함된다. 손자의 허실론이 디지털 전장으로 확장된 모습이다.
정치경제 관점에서 『손자병법』은 전쟁을 국가 재정과 생산력의 소모 문제로 파악하고 있다. 에이전트 전쟁 문서도 미래 우위를 위해선 단순히 무기체계가 아니라 컴퓨터와 데이터, 네트워크, 에이전트 시스템을 대규모로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손자가 말한 전쟁의 비용 문제는 오늘날 AI 인프라 구축비용과 지속가능한 국방혁신 생태계의 문제로 전환됐다. 속전속결의 원리는 국가가 감당 가능한 경제적 구조 속에서 전쟁을 설계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정치경제적으로 손자의 ‘도(道)’ 개념은 현대전에서 훨씬 더 넓게 읽어야 한다. 손자는 도를 “백성으로 하여금 윗사람과 뜻을 같이하게 하는 상태”로 설명했다. 이는 단순한 사기 진작이 아니라 통치 정당성과 사회적 결속, 조직 내부의 신뢰를 의미한다.
과학기술 관점에서 보면 에이전트 전쟁은 『손자병법』의 개념을 가장 직접적으로 재구성하는 영역이다. 손자는 천(天)과 지(地)를 통해 시간, 기후, 거리, 지형, 험난함, 생사지세를 고려해야 한다고 봤고 용간편(用間篇)에선 적정을 아는 게 승리의 출발점이라고 했다. 현대의 에이전트 시스템은 이 ‘천·지·간’의 기능을 디지털 방식으로 수행한다. 센서망과 위성, 정보·감시·정찰(ISR), 전자정보, 개방형 정보, 군수 데이터, 작전 로그를 연결해 다중모달 상황 인식을 수행하고 이상징후를 탐지하며 적의 의도를 예측하고 실시간으로 행동방책을 갱신한다.
과학기술의 발전이 곧바로 전략적 우위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최신의 에이전트 전쟁이론은 기술적 제약보다 더 큰 문제를 신뢰, 평가, 문화, 조직 변화에서 찾는다. 지휘관은 블랙박스에 권한을 위임할 수 없으며, 시스템은 현실적·적대적 조건에서 시험되고, 생애주기 전반에 걸쳐 재평가돼야 한다. 손자가 장수의 덕목으로 ‘지·신·인·용·엄’을 제시한 이유와 통한다.
미래전의 승자는 가장 많은 AI를 보유한 국가가 아니라 손자의 전략을 이해하고 AI를 조직·교리·국방역량과 통합할 수 있는 군대일 것이다. 『손자병법』과 에이전트 전쟁을 함께 읽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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