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교양 정덕현의 페르소나

아역·아이돌 거쳐 천만 배우까지... 바닥부터 쌓은 눈부신 성장 서사

노성수

입력 2026. 05. 27   16:53
업데이트 2026. 05. 27   1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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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덕현의 페르소나
박지훈, 언더독 청춘의 표상, 전설이 되다



박지훈이 돌아왔다. 영화 ‘왕과 사는 남자’로 1680만 관객을 눈물바다로 만들었던 단종 역할을 맡아 극강의 비극적 카타르시스를 선사했던 그였다. 하지만 이번에 돌아온 그의 모습은 정반대다. tvN 월·화 드라마 ‘취사병 전설이 되다’에서 무거운 곤룡포를 벗어던진 그는 총 대신 식칼을, 탄띠 대신 앞치마를 두른 강림소초의 취사병 강성재 이병으로 변신했다. 

‘취사병 전설이 되다’는 부친상을 당한 뒤 깊은 우울감에 빠져 관심병사 판정을 받은 신병 강성재가 어느 날 우연히 자신의 눈앞에만 보이기 시작하는 게임 같은 퀘스트 안내창을 통해 전설의 ‘만렙 취사병’으로 거듭나는 과정을 그린 밀리터리 쿡방 판타지 코미디다. ‘B급 병맛’이 느껴지는 서브컬처 장르인 이 작품은 만화적인 연출과 과장된 컴퓨터그래픽(CG)으로 빵빵 터지는 코믹한 웃음을 만들어 낸다.

아무것도 못할 것 같았던 강성재 이병이 끓여 낸 성게알 미역국을 한 숟가락 먹고 대대장(정웅인 분)이 황홀경에 빠져 쓰러진다거나 전투 장면·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로 연출해 낸 음식 맛의 표현이 만화적으로 그려진다. 자칫 유치함의 지뢰를 밟을 수 있는 장면들이지만, 박지훈은 특유의 ‘온도 차 연기’로 이런 우려를 씻어 버렸다. 우울증세가 높은 관심병사의 위태로운 내면을 현실적으로 묘사하면서도 요리 퀘스트를 성공하며 환희에 차오를 때는 과장된 리액션과 슬랩스틱을 주저하지 않았다. 진지함과 극단적 코미디를 넘나드는 그의 연기는 윤경호, 한동희, 이홍내, 이상이 등과 앙상블을 이루며 시청자들을 유쾌한 웃음의 향연 속으로 몰아넣었다.

이러한 박지훈의 압도적 연기에 힘입어 드라마는 3회 만에 7.2%(닐슨코리아)의 최고시청률을 기록하고 티빙 공개 첫 주 유료구독 기여 1위를 석권하는 흥행을 달성했다. 이로써 박지훈은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드라마 ‘약한 영웅’으로 스타덤에 오른 뒤 영화 ‘왕과 사는 남자’로 1000만 관객 신드롬을 만들었고, 다시 드라마 ‘취사병 전설이 되다’로 연타석 흥행에 성공하는 대세 배우의 위치에 서게 됐다. 도대체 박지훈의 무엇이 대중의 마음을 이토록 사로잡은 걸까.


한마디로 표현하면 ‘언더독 청춘의 결핍’이 아닐까 싶다. ‘약한 영웅’의 연시은과 ‘왕과 사는 남자’의 단종, ‘취사병 전설이 되다’의 강성재 이병이 모두 공통적으로 보여 주는 건 시대의 억압 앞에 억눌린 청춘의 초상이다. 무한경쟁과 억압의 시스템 속에서 청춘들이 느끼는 불안과 결핍, 우울감 같은 것들이 박지훈이라는 배우의 ‘눈빛’ 하나로 설명된다. ‘약한 영웅’과 ‘왕과 사는 남자’에서 그가 보여 준 허무함이 깃든 슬픈 눈빛은 금세라도 눈물이 떨어질 듯한 비감을 만들어 낸다. 

그의 슬픈 눈빛은 그저 안으로 침잠하는 차원에서 끝나지 않는다. 안으로 꾹꾹 눌러놓은 억압된 감정이 하나의 에너지가 돼 비등점을 넘을 때 폭발력을 갖는 반전의 힘으로 표출된다. 그것이 약해 보이지만 영웅적 면모를 드러내고(‘약한 영웅’) 다가오는 호랑이 같은 죽음의 공포 앞에서도 “내가 상대한다”고 나서 활시위를 당기게 만든다(‘왕과 사는 남자’). 그런 점에서 그는 진정한 ‘언더독’의 표상처럼 보인다. 가장 밑바닥으로 웅크린 뒤 오히려 더 높은 곳으로 뛰어오르는 언더독의 카타르시스가 그의 슬픈 눈빛의 반전 속에 담기기 때문이다.

많은 이가 박지훈의 시작이 아이돌이었다고 생각한다. 엠넷 오디션 프로그램 ‘프로듀스101’ 시즌2로 최종 2위를 차지하며 대중적인 주목을 받아서다. 하지만 그는 사실 2006년 국민드라마로 불렸던 대하사극 ‘주몽’에서 소금장수 아들 역할로 8세의 나이에 연기를 시작했던 아역배우 출신이다. 그는 여러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이 본래 연기의 꿈을 갖고 있었다는 걸 피력한 바 있다.

“7세 때 TV에서 한 배우가 오열하는 연기를 보고 마치 제가 울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던 기억이 나요. 나도 저렇게 TV 안에서 밖에 있는 사람과 감정을 공유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렇게 일찍이 배우의 꿈을 꿨다. 초등학교 때는 뮤지컬 배우가 되고 싶었고, 중학교 때는 팝핀에 빠져 아이돌을 꿈꾸기도 했다. 그의 필모에는 단역과 특별출연부터 드라마와 영화의 정극 연기는 물론 뮤지컬과 아이돌 활동까지 병행하는 전방위적 면모가 엿보인다. 사실 배우든, 가수든 그 표현 방식이 다를 뿐 어떤 감정을 연기해 낸다는 본질과 맞닿은 면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중요한 건 박지훈의 이런 ‘슬픈 눈빛’으로 뭉쳐지는 연기적 페르소나가 지금의 시대적 정서와 맞물려 있다는 점이다. 저마다 안에는 무언가를 해내고 싶은 욕망이 자리하고 있지만, 허들이 높은 현실 앞에서 그 욕망을 안으로 꾹꾹 눌러 뒀던 언더독의 정서가 그것이다. 박지훈은 그 언더독의 마음을 대변해 작품 속에서 폭발시킴으로써 보는 이들을 대리 충족시켜 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취사병이 ‘전설’이 될 가능성이 있을까. 그저 그 두 단어를 엮어 놓으면 그런 가능성이 잘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강성재 이병처럼 취사병이 일상의 해야 할 일을 하나하나 넘어가야 할 퀘스트로 여기고, 그걸 달성해 가며 쌓이는 경험치는 어쩌면 그 불가능을 가능하게도 만들지 않을까. 연기든, 춤이든, 노래든 하나하나 쌓아 현재의 전설적인 성장을 만들어 낸 박지훈이라는 청춘의 기적이 보여 주고 있는 것처럼.

드라마 ‘취사병 전설이 되다’에서 강성재 이병 역을 맡은 배우 박지훈. 사진=티빙

필자 정덕현은 대중문화평론가로 기고·방송·강연을 통해 대중문화의 가치를 알리고 있다. MBC·JTBC 시청자위원을 역임했고 백상예술대상·대한민국 예술상 심사위원이다.
필자 정덕현은 대중문화평론가로 기고·방송·강연을 통해 대중문화의 가치를 알리고 있다. MBC·JTBC 시청자위원을 역임했고 백상예술대상·대한민국 예술상 심사위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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