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 문학잡지 월간 ‘문학사상’이 창간된 것은 1972년 10월이었다. 창간 당시부터 이 잡지는 이어령 선생이 초대 주간을 맡아 참신한 기획과 역량 있는 문인 발굴 등으로 우리 문학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1974년 신인문학상을 제정해 신진 작가들을 지원하기 시작했고, 1977년에 제정한 이상문학상은 우리나라에서 동인문학상·현대문학상과 더불어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문학상으로 성장했다.
그러나 전통 있는 문학잡지도 경영난을 피할 수 없을 정도로 우리 문학과 출판시장은 극심한 침체기를 맞았고 ‘문학사상’은 2024년 4월 통권 618호를 발행한 다음 무기한 휴간에 들어가고 말았다. 신인문학상이 중단됐고, 이상문학상 운영권은 다른 출판사에 팔리는 비운의 주인공이 됐다.
54년 전 발행인과 주간의 이름으로 창간호 첫머리를 장식한 창간사는 ‘이들을 위하여’라는 제목으로 실렸다. “분노의 주먹을 쥐다가도 결국은 자기 가슴이나 치며 애통해하는 무력자들을 위하여, 지하실처럼 어두운 병실에서 오월의 푸른 잎을 기다리는 환자들을 위하여, 눈물 없이는 한술의 밥숟가락을 뜨지 못하는 헐벗은 사람들을 위하여”로 시작해 “상처진 자에게는 붕대와 같은 언어가 될 것이며, 폐를 앓고 있는 자에게는 신선한 초원의 바람 같은 언어가 될 것이며, 역사와 생을 배반하는 자들에겐 창끝 같은 도전의 언어·불의 언어가 될 것이다. 종(鐘)의 언어가 될 것이다. 지루한 밤이 가고 새벽이 어떻게 오는가를 알려 주는 종의 언어가 될 것이다”고 마무리하고 있다.
창간호 표지화는 화가 구본웅이 친구였던 시인 이상(李箱)을 그린 ‘친구의 초상’이 실렸다. 당시 처음 공개되는 이상의 초상화여서 많은 주목을 받았다. 목차와 본문 그림은 화가 박고석이 그렸다. 목차의 뒤를 이어 ‘여기가 그곳이다’란 제목으로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의 배경인 강원도 봉평 현지 모습과 ‘창작의 밀실’이란 제목으로 유주현 작가(‘황녀’ 연재 시작), 박경리 작가(‘토지’ 2부 연재 시작)의 창작실 모습 등이 화보로 담겼다. 특집으로 윤이상의 오페라 ‘심청’ 대본을 국내 최초로 공개한 것을 비롯해 오영수·강신재·이범선·이문구·최인호 등의 소설 작품이 실렸으며, 신석정·서정주·박남수·김춘수·홍윤숙·이근배·정현종 등의 시 작품이 실렸다.
또 창간호 본문 중 나오는 ‘모년 모월 모일’이란 코너에 실린 ‘향가 연구에의 발심’이란 글을 보면 양주동 선생이 어떻게 신라 향가 연구를 시작하게 됐는지 밝히고 있어 눈길을 끈다. 널리 알려진 것처럼 양주동 선생은 그야말로 박학다식한 학자였다. 다른 사람들은 물론 스스로도 자기를 ‘국보’라고 했을 정도다. 원래는 일본 유학을 다녀온 영문학자였으나 집안에서 배운 한문 실력이 뛰어나 신라 향가 연구에 독보적인 업적을 남겼다. 그 밖에 김동리와 박두진의 ‘대표작 자선자평(自選自評)’이 실리는 등 다양한 읽을거리가 많이 있다.
하지만 아무리 의미 있는 잡지라고 해도 그것이 경영난까지 막아 주진 못하는 모양이다. 휴간과 폐간의 갈림길에 섰던 ‘문학사상’이 한때 중견기업인의 도움으로 복간될 것이라는 소식이 들려왔지만, 돌연 중단돼 사실상 폐간 상태가 지속되고 있다. 잠시 쉬었다가 다시 나오는 휴간과 아예 복간이 불가능해지는 폐간은 엄연히 다르다. 아무쪼록 하루빨리 상황이 나아져 “지루한 밤이 가고 새벽이 어떻게 오는가를 알려 주는 종의 언어가 될 것이다”고 마무리했던 창간사의 약속이 지켜지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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