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개그우먼 이수지의 유튜브 영상을 봤다. 유치원 선생님을 소재로 한 풍자 영상이었다. 사람마다 반응은 달랐다. 누군가는 웃었고, 누군가는 불편해했다. 그러나 영상을 보고 난 뒤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 생각이 있었다. “아, 대한민국이 정말 과잉보호 사회로 가고 있구나.”
부모에게 아이는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존재다. 그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문제는 사랑이 지나친 보호로 변할 때다. 요즘 학교 현장을 보면 과거와는 완전히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소풍과 체험학습, 수학여행을 줄이거나 없애는 학교가 늘고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혹시라도 사고가 나면 감당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작은 사고 하나에도 민원이 발생하고, 교사는 법적·정서적 부담을 떠안는다. 결국 학교는 점점 더 안전만 추구하게 된다.
하지만 생각해 보자. 위험이 완전히 제거된 환경에서 자란 아이는 과연 단단해질 수 있을까. 인간은 원래 넘어지고 실패하면서 성장한다. 운동을 배우는 아이도 수없이 넘어지며 균형감각을 익힌다. 실패를 경험해 본 사람이 다시 일어서는 법도 배운다. 그런데 지금 사회는 아이가 상처받을 가능성 자체를 없애려 한다.
문제는 그렇게 자란 세대는 작은 충격에도 쉽게 흔들릴 수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대학과 직장에서도 갈등과 비판을 견디지 못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불편함을 견디는 힘 자체가 약해지고 있는 것이다.
이 현상은 군대에서도 나타난다. 군 복무 중인 아들의 문제를 두고 부모가 직접 부대 지휘관에게 연락해 항의하는 일이 이제는 낯설지 않다고 한다. 부당한 일은 개선돼야 하지만 군대는 공동체 규율과 책임을 배우는 공간이기도 하다. 그 공간마저 “우리 아이를 힘들게 하지 말라”는 요구가 우선되기 시작하면 조직은 점점 약해질 수밖에 없다.
얼마 전 타이포그래피 상점에서 본 문구는 더욱 충격적이었다.
“안 되면 되는 거 해라.”
순간 눈을 의심했다. 우리가 익숙하게 들어온 말은 “안 되면 되게 하라”였다. 특히 군조직에선 불가능에 도전하는 정신을 상징하는 문장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아예 방향이 달라졌다. 어려우면 포기하고 쉬운 길을 찾으라는 의미처럼 느껴졌다.
현실감각은 중요하다. 무조건 버틴다고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되는 것만 하면서 성장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사업도 그렇고, 공부도 그렇고, 인생도 마찬가지다. 대부분의 성취는 처음엔 ‘안 될 것 같은 일’을 견디는 과정에서 만들어진다.
특전사가 강한 이유를 체력에서만 찾지 않는다. 그들의 진짜 힘은 생각의 디폴트 값에 있다. 일반인은 ‘안 될 것 같다’고 생각하는 순간에도 그들은 ‘어떻게든 되게 만든다’고 사고한다. 바로 그 기본 값의 차이가 조직의 수준을 결정한다.
미국의 사회심리학자 조너선 하이트도 비슷한 지적을 했다. 그는 젊은 세대를 지나치게 보호할수록 오히려 불안과 취약성이 커질 수 있다고 분석했다. 면역체계가 세균과 싸우며 강해지듯이 인간의 정신도 적당한 실패와 긴장을 통과하며 단단해진다는 의미다.
우리는 아이를 사랑한다는 이유로 너무 많은 것을 대신 제거해 주고 있는 건 아닐까. 넘어질 돌부리도 치우고, 실패의 경험도 없애고, 상처받을 가능성마저 차단하려 하는 것은 아닐까.
인생은 원래 녹록지 않다. 결국 사람을 성장시키는 것은 보호만이 아니라 견디는 힘이다. 사랑의 본질은 모든 장애물을 없애 주는 게 아니라 장애물을 넘어설 힘을 길러 주는 데 있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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