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수열
독립·민주·애국의 길을 걷다 - 광주
일제에 항거 “대한독립만세” 외친 학생들
다리 폭파하며 북한군 저지한 국군 5사단
민주주의 지키기 위해 목숨 건 시민들
광주의 핏빛 결기, 시대의 어둠을 넘어
역사의 그 자리에 다시 푸르게 빛나다
조금 시야를 넓혀 보자. ‘호국’의 개념은 어디까지 확장할 수 있을까. 지금의 대한민국 가치를 지키기 위해 우리는 얼마나 치열한 노력을 했을까. 광주광역시는 호국은 물론 자유, 민주주의라는 대한민국 가치를 지켜 내기 위해 치열하게 싸워 온 역사의 현장이다. 시내 곳곳에 남아 있는 독립운동과 참전, 민주화의 흔적은 수십 년의 세월이 지나도 그 빛을 잃지 않고 오히려 찬연히 빛나고 있었다. 글=맹수열/사진=한재호 기자
학생독립운동의 시작점에서 ‘피 끓는 학생’을 보다
“우리는 피 끓는 학생이다! 오직 바른길만이 우리의 생명이다!”
일제시대 광주고등보통학교(광주고보)로 불리던 광주제일고등학교에는 학생들이 아침 조회 때마다 이 구호를 외치는 전통이 있었다고 한다. 일제에 항거해 분연히 나섰던 광주고보 선배들의 정신을 잊지 않겠다는 후배들의 의지 표현이었다.
광주고보는 1929년 11월 광주학생독립운동을 주도한 학교다. 민족 차별 교육에 반발해 인근 학교들과 연대, 독립 만세를 외치며 일제에 항거했던 광주학생독립운동은 1919년 3·1운동 이후 축적된 학생들의 독립의식이 결집된 결과물이란 평가를 받고 있다. 광주에서 시작된 학생들의 작은 날갯짓은 이후 전국, 나아가 해외로까지 퍼져 나가는 결과로 이어졌다.
광주제일고 앞에는 선배들의 헌신을 기억하기 위한 기념관이 자리 잡고 있다. 이곳에선 광주지역은 물론 일제시대 학생독립운동의 역사를 한눈에 살펴볼 수 있다. 특히 1929년 시위 당시 실제로 사용했던 태극기 등 귀한 자료도 상당수 있어 눈길을 사로잡는다.
수피아여학교(현 수피아여중·고)는 광주학생독립운동의 또 다른 축이다. 1919년 ‘양림동 3·1 만세운동’을 주도한 이들이 바로 수피아여학교 학생이었다. 3·1 운동의 열기를 이어받아 3월 10일 학교가 있던 양림동 일대에서 거행된 만세운동은 당시 일본 헌병의 칼에 맞아 왼팔이 잘리고도 항거를 이어 갔던 윤형숙 열사 등 수많은 학생 희생자를 낳았다. 당시 연행된 이만 교사 2명, 학생 21명이었다. 이후에도 학교는 일제의 신사참배 요구를 거부하다가 1937년 9월 폐교의 아픔을 겪기도 했다.
수피아여고 담벼락에는 이런 역사 속 인물들을 잊지 않기 위한 사진과 연혁이 그려져 있었다.
독립·민주화운동의 대모인 조아라 여사, 신사참배를 거부하는 단호한 결정을 내린 유화례 당시 교장, 수피아여학교 설립자 유진 벨(배유지) 선교사 등이 대표적인 예. 마침 학교를 마치고 지나가는 학생들의 얼굴과 수피아여학교 학생들의 얼굴이 오버랩되면서 숭고한 가치를 지키기 위해 앳된 나이에 일어섰던 호국영령의 용기에 경외감이 들었다.
인근 광주양림교회 앞에는 이곳이 3·1 만세운동의 발상지임을 알리는 조형물이 세워져 있었다. 양림교회는 신도들이 수피아여학교 학생들과 함께 만세운동을 준비했던 중요한 장소다. 공교롭게도 양림교회 역시 유진 벨 선교사가 사역하던 곳. 만세운동이 절대 우연히 일어난 것이 아님을 방증하는 근거다.
다리까지 폭파하며 ‘필사의 각오’…광주서 만난 6·25전쟁 영웅들
광주·전남은 사실 6·25전쟁 국면에서 그리 부각되지 않은 지역이다. 하지만 이곳 역시 대한민국의 자유와 평화를 지키기 위해 싸운 이가 다수 잠들어 있다.
광주공원 정상에는 전쟁 당시 장렬히 산화한 호국영령의 충의와 희생정신을 기리기 위한 현충탑이 서 있다.
현충탑으로 향하던 길, 탑 바로 옆 그늘진 곳에 자리 잡은 독수리 모양 부조가 눈에 띄었다. 지금의 현충탑이 세워지기 전 만들어졌던 ‘우리 위한 영의 탑’ 흔적이었다. 낡은 조형물을 대체하기 위해 지금의 탑을 건립하면서 부조만 따로 떼 재설치한 것이다. 어찌 보면 작고 사소하지만 보훈의 역사를 잊지 않겠다는 광주시민들의 의지를 느낄 수 있었다.
광주·전남지역은 북한군 주력이 대전을 공격하던 1950년 7월부터 전화(戰火)에 휩싸였다. 7월 22일 전북 고창을 점령한 북한군의 공세가 계속되자 당시 광주에서 예비군으로 재편성된 국군 5사단 26연대는 다리를 폭파하며 필사의 각오로 적을 저지했다. 치열한 접전이 이어졌지만, 결국 병력과 화력의 우세를 앞세운 북한군은 광주·전남을 차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같은 해 9월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으로 국군은 다시 호남을 수복했다. 이후 광주·전남지역에선 지리산을 중심으로 한 적 게릴라를 저지, 토벌하는 작전이 계속됐다.
현충탑은 이렇게 광주·전남지역 전투에서 전사한 1만5867명(군인 1만745명, 경찰 5122명)의 호국영령 위패를 봉안하기 위해 세워졌다. 25m 높이의 현충탑에는 호국영웅들이 목숨과 바꿔 지킨 이 땅에 살면서 역사의 교훈을 거울 삼아 고귀한 희생정신을 계승하고 충의와 애국심을 영원히 추앙하며 후세에 나라사랑 정신을 고취하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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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얼굴이 지켜 낸 가치…‘5월의 광주’에서 푸르름을 엿보다
매년 ‘5월의 광주’는 민주화 열기로 가득하다. 지난 12일 찾아간 국립5·18민주묘지는 다가올 5·18 민주화운동 기념일을 앞두고 손님 맞을 준비가 한창이었다.
국가보훈부는 5·18 민주화운동을 ‘민주화를 요구한 시민 스스로가 역사의 주체임을 선언하고 자신의 권리를 지키려는 강한 염원이며, 한국 민주주의 발전사에 불멸의 금자탑을 세운 민권 투쟁’이라고 정의한다.
묘지는 현재 16만6000여 ㎡ 부지에 건축물 10동, 추모탑 등 상징 조형물 4개 등으로 구성돼 있다. 한복판에 자리 잡은 40m 규모의 5·18 민중항쟁추모탑은 찾는 이들의 마음을 웅장하게 한다.
5·18 민주화운동은 광주시민들에게 평생 기억해야 할 소중한 가치로 남아 있었다. 추모탑 앞에 마련된 단상에서 분향을 마친 서민호 씨는 “아주 어린 시절이라 5·18을 직접 기억하진 않지만 광주 사람이라면 누구나 떠난 분들에게 부채감을 갖고 있을 것”이라며 “꽃이 만연한 봄이 되면 먹먹한 마음에 꼭 한 번씩 방문하게 된다”고 덤덤히 말했다. 서씨의 말을 듣고 이들의 희생을 다시 생각하며 기자 역시 경건한 마음으로 분향했다.
추모탑 뒤로는 묘역이 펼쳐져 있었다. 이미 놓여 있는 수많은 국화에는 떠난 이를 기억하는 가족의 그리움이 듬뿍 묻어 있었다. 평일 낮 시간인데도 꽤 많은 유족이 찾아와 묘비 옆을 지키고 있었다. 비석을 어루만지며 그리워하는 사람, 그 시절을 겪지 않은 아들에게 가족의 역사를 말해 주는 사람 등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추모를 이어 가고 있었다. 비석 옆에는 영령들의 흑백 영정사진이 놓여 있었다. ‘이 평범한 얼굴들이 지켜 낸 가치가 지금의 대한민국을 지탱하는 힘이 되고 있다’는 생각에 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묘역을 걷던 중 묘비를 닦는 학생들을 볼 수 있었다. 자원봉사를 나온 대학생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신유승 씨는 “광주 출신은 아니지만 이곳에서 공부하며 5·18 민주화운동의 의미를 배울 수 있었다”며 “이들의 정신을 이어받아 대한민국 발전에 이바지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5·18 기념공원에서도 추모와 계승의 흔적을 살펴볼 수 있었다. 이곳에 세워진 5·18 민주화운동 관련 조각과 지하의 추모승화공간은 숭고한 정신이 예술로 형상화된 현장이었다. 민주주의를 지킨 이들에게 예를 표시하기 위한 ‘제기’, 민주화운동에 참가한 이들의 용기와 민주주의에 대한 사랑을 표현한 ‘지상인물상’, 오월 정신의 영속을 바라는 ‘지하횃불’, 하늘로 솟구치는 정의를 표현한 태극 모양의 스테인리스 조형물 등 여러 예술작품이 ‘5월의 정신’을 기억하는 이들을 맞고 있다.
이른 저녁 5·18 민주화운동의 아픔을 뒤로하고 이제는 시민문화시설로 거듭난 전일빌딩245 옥상에서 옛 전남도청(현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을 내려다봤다. 기록사진으로 남은 그날의 비극이 입체적으로 펼쳐졌다. 이제는 번화가가 됐지만 민주주의를 지키겠다는 광주시민들의 결기는 아직 도청 근처 골목골목에 묻어 있는 듯했다.
도청 앞 로터리의 중심이었던 분수대 앞에서 봄날의 저녁을 즐기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울렸다. 어스름한 땅거미를 몰아내는 그 말간 음색은 40여 년 전 그날 이곳을 내려다보던 하늘을 닮은 듯했다. 국가 정체성과 자유, 민주주의란 대한민국을 지탱하는 핵심 가치를 지켜 낸 광주는 여전히 푸르른 빛을 발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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